가슴으로 시읽기/엄마 걱정/기형도

by 이강선


가슴으로 시읽기: 내 안의 어린아이를 위로하며



엄마 걱정/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벚꽃이 피는 때입니다. 열무 가격이 내렸습니다. 이른 봄 5,000원이 넘던 열무는 이제 그 절반에 가까운 가격으로 사 먹을 수 있습니다. 슈퍼에서는 "맛 좋은 열무, 시원한 열무"라는 문구로 지나는 이의 시선을 붙들고 있습니다. 시원한 열무는 김치를 담았을 때 그 국물이 시원하다는 의미일 겁니다. 지금이야 열무는 일 년 내내 나오지만 이전에는 달랐습니다. 여름철에만 먹을 수 있었지요. 그렇기에 열무 국수, 열무 비빔밥 메뉴가 있습니다. 열무김치 국물에 국수를 넣어 말거나 열무김치를 밥 위에 얹어 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비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습니다. 그 열무를 입안에 넣고 씹으면 아삭아삭 씹히는 소리가 일품이지요.





OIP.TFs6D8zZj0rz49wTvz5sJQHaHa?pid=ImgDet&w=184&h=184&c=7&dpr=1.3




그러므로 이 시를 읽는 이는 자연스럽게 이 시의 계절이 여름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화자는 지금 빈 방에서 혼자 엄마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화자의 엄마는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가셨지요. 열무가 아무리 가볍다고 해도 삼십 단이나 되다 보니 무게는 상당할 겁니다. 그러나 열무 삼십 단은 리어카로 나르기에는 적은 분량입니다. 그러니 엄마는 그 삼십 단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머리에 똬리를 이고 그 위에 올려놓았을 겁니다. 아마도 집 옆 밭에서 재배한 열무겠지요.




머리에 인 열무 삼십 단은 가난의 무게입니다. 가벼운 주머니의 무게입니다. 그 열무를 이고 가야 하는 시장까지는 얼마나 멀까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장은 해가 지면 파합니다. 그러니 엄마는 아마도 시장이 파해서 집으로 오시는 중일 겁니다. 집에 오는 시간이 꽤 걸리는 모양입니다. 열무를 다 팔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삼십 단을 다 팔기 위해 시장이 파할 때까지 손님을 기다렸겠지요.




열무를 팔아야 하는 가정이라면 그다지 형편이 좋은 건 아닐 겁니다. 심심풀이로 시장에 가서 물건을 파는 이는 없으니까요. 게다가 창에 금이 갔지만 그걸 바꾸어 끼울 수 없을 정도니까요. 어쩌면 이번에 열무를 팔아 창문을 바꾸어 끼우겠다는 희망으로 가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형편을 아는 아이는 얌전히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화자가 택한 방법은 숙제하기입니다. 알다시피 숙제는 하기 싫습니다. 그래도 참고 하는 거지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숙제를 합니다. 숙제를 하면서 귀는 연신 창밖으로 향합니다. 타박타박 배춧잎 같은 발소리가 들리기를. 열무를 다 팔고 가벼워진 그 발소리가 언제 들려오나 기다리는 것이지요. 어쩌면 엄마 손에 들려있을지도 모르는 간식을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긴 숙제가 다 끝나도록 엄마는 오시지 않습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밖이 컴컴합니다. 아이는 이제 무서워지기 시작합니다. 시장이 먼데 그 어둡고 먼길을 엄마가 어찌 오시나 싶어 걱정이 되는 것이지요.




그건 아주 오래전 이야기였습니다. 이제 화자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아도 엄마를 기다리던 그 여름날은 여전히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내용은 달라도 엄마를 기다리던 때가 있습니다. 아파서 학교에 못 갔거나 가족이 모두 외출했거나 홀로 남겨진 경험이지요.




혼자 고스란히 겪어야 하는 그 경험은 첫 아픔이었을 겁니다. 그 아픔을 통해 혼자라는 것을 사무치게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아픔을 통해 우리는 천천히 성장해왔을 겁니다. 그 순간에 머무르지 않고 더불어 성장해왔겠지요. 오늘 그 시절을 돌아보는 것은 단지 가난했던 시절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 가난이 나로 하여금 훨씬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지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카버의 「대성당」: 담담함 속에 잠긴 소용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