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버의 「대성당」: 담담함 속에 잠긴 소용돌이

by 이강선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은 1981년 작품이다. 작품의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화자의 아내는 십 년 전 시애틀에서 어떤 맹인에게 책과 서류를 읽어주는 일을 했고 그 맹인과 계속해서 연락을 취해왔는데 그 맹인이 집을 방문하러 온다. 화자는 티브이에 나온 대성당을 맹인에게 설명해 주다가 그의 손을 잡고 대성당의 그림을 그린다.



「대성당」은 그냥 읽으면 싱겁다. 이게 뭐야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내용이 없고 그저 일상적인 일을 묘사한 글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내가 초대한 친구인 맹인이 집에 오고 화자는 그와 무엇이든 소통하려는 마음에서 티브이 나오는 대성당을 설명해 주려다가 눈을 감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전부다.



왜 이 작품이 그토록 유명한지는 우선 그의 문체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그의 문체에는 생각을 드러내는 거이라고는 없다. 오직 있는 그대로를 묘사할 뿐이다. 그렇기에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오히려 상상할 수 있는 여백이 생겨난다. 아내의 전 남편을 묘사하는데 그토록 감정이 없을 수 있는가, 아내와 맹인의 관계를 묘사하는데 그토록 건조할 수 있는가가 우선 생각해 보아야 할 지점이다.



아내는 첫사랑인 전 남편과 결혼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고 그래서 맹인을 위해 일을 했다. 그들은 친구가 되었고 일 년후 그들이 헤어질 때 맹인은 아내를 알고 싶다면서 아내의 얼굴과 목덜미를 만졌다. 여기서 독자는 멈칫하게 된다. 생김새를 알고 싶어 얼굴을 만지는 건 그렇다 치고 목까지 만진다고?



게다가 아내는 이 일에 대해 시까지 쓰려고 했다. 화자의 어조는 지극히 담담해서 그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다음 문장이 이 일에 대한 아내의 태도를 말해준다. 아내는 무언가 정말 중요한 일이 일어난 후에 시를 썼는데 바로 이 일로 인해 그녀는 시를 쓰려고 했던 것으로 이 일은 무엇 때문인지 그녀에게 그토록 중요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힌트를 놓치면 이 글은 정말 담담해진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수많은 중요한 일들이 일상에서 일어난다. 훗날 뒤돌아볼 때에야 아주 중요한 것을 깨닫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에게도 그러했다. 중요한 여러 가지 일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나쳤다. 어디 나의 경우뿐일까.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치는 수많은 일들이 오랜 시간 후에야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도 그럴지 모른다. 그러므로 현재를 충분히 누리고 깨어있으라고 말하는 것이다. 책임을 지닌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깨어 있어야 한다. 상황이 변하는데 늘 하던 식으로 하면 되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얼마나 많은 회사가 쓰러지는가.



카버가 이 소설을 쓸 당시는 냉전이 지속되던 시기, 두 개의 힘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밀어붙이던 시기였다. 세상이 두 극단으로 나뉘어 있을 때 우리는 어떤 하나의 편을 들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나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면 상대의 모든 것이 적대적으로 보인다. 그것이 편견이다.



화자는 눈으로 보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다. 그는 맹인의 세계는 생각해 본 적조차 없다. 그런 그가 맹인을 만남으로써 이해해 보려고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어떤 깨달음을 얻는다. 화자가 자신의 좁은 세계에 갇혀 있다가 맹인과의 만남을 통해 이해를 시도하고 소통하려는 모습은, 냉전 시대라는 배경 속에서 서로 다른 세계에 갇혀 있던 두 세력이 겪었던 갈등과 화해의 가능성을 은연중에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일상이다. 냉전이 일상일 때는 편견임을 전혀 깨닫지 못하다가 후에야 그것이 편견임을 알게 되는 그런 것이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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