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콩나물이 반찬으로 나왔습니다. 한 젓가락 집어먹는데 참 고소합니다. 다시 콩나물로 젓가락이 갔습니다. 함께 먹던 이들도 콩나물이 맛있었나 봅니다. 우리는 두 접시를 비웠습니다.
콩나물은 참 흔합니다. 시장이건 마트건 흔히 볼 수 있고 반드시 볼 수 있는 야채가 바로 콩나물입니다. 콩나물은 한국인의 식탁에 빠지지 않는 야채지요. 조리법도 간단해서 그저 데쳐서 무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가 하면 물에 넣어 국으로도 끓입니다. 어제는 콩나물로 먹었지만 오늘은 국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이지요.
빈 스프라우트라고 하는 이 콩나물은 여러 나라에서 먹습니다. 숙주나물은 동남아에서 흔하게 먹는 나물이지요. 베트남에서는 숙주나물을 쌀국수에 얹어서 먹습니다. 이처럼 맑은 콩나물국을 먹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그러나 콩나물은 쉽게 무릅니다. 냉장고에 넣어두어도 일주일을 가지 못합니다. 콩나물을 사서 이내 먹지 못하면 버리기 일쑤입니다. 특히 여행을 갔다 오면 물러서 버려야 하지요. 모두가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요.
얼마 전에도 그랬습니다. 여행을 간 건 아닌데 냉장고에 넣어놓고 이런저런 먹거리가 많아서 다음에 다음에 하고 미루었습니다. 어느 날 어느새 뒤로 물러난 콩나물 봉지를 꺼냈더니 비릿한 냄새가 났습니다. 모두 버리려다가 열었더니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성한 콩나물이 제법 되었습니다.
식탁에 앉아서 일일이 골라냈지요. 무른 나물은 버리고 성한 나물은 따로 담아 물에 씻었습니다. 냄새가 가신 투명한 콩나물로 국을 끓였습니다. 손에서는 콩 비린내가 났지요. 그 콩나물국은 골라내는 노동이 담겼고 골라내는 시간이 담겼고 따로 씻는 노동이 담겼습니다. 한 봉지에서 나왔지만 어떤 것은 버려야 했고 어떤 것은 씻어야 했지요.
사진: 나무위키
맑은 콩나물국을 끓였습니다. 그 국을 남편이 먹었습니다. 딸이 먹었습니다. 나도 먹었습니다. 아들은 먹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식탁에 같이 앉아 먹고 딸은 혼자 앉아 먹었습니다. 시간이 맞아 함께 먹거나 맞지 않아 혼자 먹거나 같은 냄비에서 나온 콩나물국을 먹었습니다.
같은 시루에서 자랐지만 어떤 콩나물은 버려지고 어떤 콩나물은 국이 되었습니다. 가족을 이루고 더불어 사노라면 상한 것들이 많아집니다. 하마터면 버려질 것들을 골라 씻어냈던 것처럼 서로 씻어냈던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을지.
같은 봉지에서 같은 냄비에서 같은 식탁에서 편의에 맞추면서 우리는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것들을 골라내 버리고 씻어 냄새를 없앴던 일들이 얼마나 많으지요. 함께 산다는 것은 상한 마음을 버리고 서로가 아픈 일을 씻어 내는 일,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은 일들을 안고 있는 일일 겁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이런저런 일을 함께 겪으며 살아온 우리는 지금 어디쯤에 와있을까요?
맑은 콩나물국/심재휘
여행에서 돌아오니 냉장고의 콩나물이 물러 있다
무른 콩나물은 버리고 먹을 만한 콩나물은 골라 그릇에 담는다
버려야 할 것들까지 버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가
새벽의 노동 속에서도 계절이 흐르고 나는 가족을 이루었구나
좁고 기다란 식탁에는 김이 나는 콩나물국
고춧가루도 치지 않아 얼굴이 비치는 어느 아침
한 식구는 건더기를 모두 남기고
한 식구는 국의 절반을 버리고
국이 식도록 방에서 나오지 않는 식구도 있는데
맑은 국물 위의 떠도는 얼굴들은 모두
매운 점심을 지나 어느 무른 저녁으로 갈 터이니
버리려던 콩나물의 절반을 얻은 것이 기쁘고
오늘은 가족이 모두 콩나물국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서 있던 그 새벽의 고요가 기뻤으므로
손에 가득한 콩 비린내로 얼굴을 쓸며
해가 어디쯤에 가고 있는지 창밖을 내다본다
『두부와 달걀과 보이저』,문학동네,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