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슈퍼에 다녀왔습니다. 출근하느라 바삐 걷는 사람들 사이를 거슬러 오다가 붓꽃을 만났습니다.
사실 이 붓꽃은 며칠 전에도 피어 있었습니다. 늦은 시각 귀가하면서 발견하고 밝을 때 들여다보아야지 했는데 며칠 뒤 가보니 이미 시들었더군요. 그러다가 오늘 아침 다른 한 송이가 활짝 핀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반가웠습니다. 며칠 안 되는 새 붓꽃은 이미 저를 길들여놓았던 것이지요. 어린 왕자의 장미처럼 말이지요.
꽃이 없을 때 붓꽃은 그저 키가 큰 풀처럼 보입니다. 무성한 잎은 거의 60센티미터까지 자라니까요. 그러나 일단 꽃이 피면 그 대담한 자태로 시선을 사로잡지요. 꽃봉오리는 지름이 5센티나 될 정도로 큼직하고 꽃은 보랏빛입니다. 꽃이 피기 전 봉오리의 모습은 마치 먹물을 묻힌 붓끝처럼 뾰족합니다. 그래서 ‘붓꽃’이라는 이름이 붙었겠지요.
이 꽃은 화곡역으로 가는 골목길에 있습니다. 아주 오래된 여인숙, ‘제일 모텔’ 화단 한켠에 자리하고 있습지요. 여인숙이 오래된 만큼 식물도 여러 해 동안 보아왔습니다. 잎사귀는 사계절 내내 푸릅니다. 덕분에 그 자리에는 항상 생명의 기운이 감돌지요.
하지만 이처럼 고운 모습을 한 꽃은 며칠 지나지 않아 시듭니다. 사흘이나 갈까요. 쉽게 지는 만큼 꽃잎도 얇고 부드럽습니다.
에이미 로웰은 이 붓꽃의 연약함에 주목해 다음과 같은 시를 씁니다.
뉘앙스/에이미 로웰
나비는 사뿐 내려앉지만 붓꽃은 고개마저 숙인다 (필자 역)
Even the iris bends when a butterfly lights upon it.
짧은 한 줄이지만, 이 시는 붓꽃의 고요한 섬세함을 정확히 포착합니다.
붓꽃은 당당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꽃은 우아하고 크며 짙은 보랏빛입니다. 그러나 그 꽃잎은 얼마나 섬세한지, 나비가 살며시 내려앉는 것만으로도 고개를 숙일 정도입니다. 한편으로 잎사귀들은 사계절 내내 푸른빛을 유지합니다. 그렇기에 우리 조상들은 문인들이 사용하는 필기구인 붓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존중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 꽃잎은 얼마나 섬세한지 나비가 내려앉아도 고개를 숙일 정도입니다. 붓꽃과 나비는 강함과 약함의 조우입니다. 붓꽃은 나비가 내려앉자 휘어집니다. 그 모습이 마치 고개를 숙여 존중하는 듯합니다. 아무리 가벼운 존재라 해도 움직임은 주변에 파문을 일으킵니다.
어떤 시는 아무렇지 않은 일상의 장면 속에서 문득 삶의 진실을 건넵니다. 에이미 로웰의 시도 그런 순간을 포착해 조용히 우리를 멈춰 세웁니다. 당신에게도 그러한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 화곡동 제일 모텔 앞에서 제가 멈추었던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