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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영 Jul 07. 2019

박서보; 자세히 보아도, 그렇지 않아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사진=고데영]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를 열고 단색화가로 유명한 작가의 일대기를 풀어 놓았다.


전시는 작가의 초기 활동이 그려졌던 1960년대부터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준비된 신작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했다. 눈에 띄는 점은 작품들이 작품 연대기의 역순으로 전시됐다는 점.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최근 작품을 비롯해 이른바 ‘후기 묘법 시기’가 전시돼 있다. 단색화 열풍에 주목했던 관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보았을, 눈에 익숙한 작품들이다.


다소 단조로워 보이는 그의 후기 묘법 시기는 일정 간격을 두고 뻗어가는 직선과 그 직선을 가로 막는 듯한 또 다른 직선의 조화가 돋보인다. 특히 통일된 색채로 나열된 그의 작품들은 한 걸음 물러서서 보았을 땐 일종의 질서정연함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을 땐 선 하나 하나의 힘줄과 확실한 끝맺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떻게 바라보든 관람객으로 하여금 몰입도를 높이기 충분하다. 촌스럽지 않은 색채감 역시 그의 후기에서 볼 수 있는 하나의 매력이다.

후기 묘법 시기 [사진=고데영]

중기 묘법 시기의 경우 마르지 않은 한지를 긁거나 문지르면서 탄생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후기의 직선 위주의 작품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마치 후기로 넘어가기 전 극적이고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인상을 심어준다. '좀 더 그림같은' 작품을 원하는 관람객이라면 중기에 손을 들어주는 경우도 더러 있다.


초기는 반복된 연필 작업이 눈에 띈다. 마르지 않은 색 밑칠 위에 거침없이 연필 드로잉을 이어간 초기 작품들에는 중기에서 표현하려한 종이의 질감이나 후기에서의 정형화된 패턴이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이 시기는 묘법의 완성으로 가는 시작이면서 동시에 이미 예견된 작가의 미래였을는지 모른다.


작가의 초창기라 할 수 있는 유전질 시기와 원형질 시기는 그간 우리가 보아 왔던 작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다소 기이하고 파괴적인 그의 작품들은 작가 박서보보다 인간 박서보에 가까운 모습을 띄고 있다.


이로 인해 묘법의 변화 양상과 달리 다소 짧은 기간에도 눈에 띄는 변화들을 확인할 수 있다. 생존과 다양성이 깃든 시기다.


시대 역순으로 전시가 진행되는 만큼 뒤로 갈수록 익숙하지 않은 작품들을 만나 수 있다. 그것이 미술관 측의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다소 동선의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각 시기에 대한 설명만 충분히 인지하면 작품의 연도를 보지 않아도 쉽게 시기를 구분할 수 있다. 전시장을 나오면 작가에 대한 추가적인 역사적 자료들도 준비돼 있다.


전시는 9월 1일까지 진행된다.

유전질 시기 [사진=고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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