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언급했듯이 나는 국제부에 정식 출근하기 전 취재를 시작했고, 건수를 잡았다. 홍콩 민주화 운동가 조슈아 웡과 인터뷰를 하게 된 것. 물론 화상 인터뷰면 더 좋았겠지만, 현지 사정이 여유롭지 못했다.
내가 이메일을 통해 연락을 했을 때 그는 이제 막 경찰서에서 풀려난 상태였고 또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내가 알기론 독일을 비롯한 몇몇 유럽 매체도 그와 접촉 중이었다.
조슈아는 홍콩의 국가보안법 제정에 반대하며 투쟁 중이었다. 해당 법안은 홍콩에 대한 중국의 통제권을 강화한다는 이유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조슈아는 이 과정에서 당국으로부터 불법 집회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미 운동가 몇몇은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로 망명을 했거나 시도 중일 정도로 당국의 탄압 강도는 나날이 세졌다. 국가보안법 뒤엔 중국이라는 거인이 있었기에 이 젊은 친구가 버티기란 쉽지 않았을 터.
사실 내가 그를 컨택하게 된 건 추석 첫날 밤 넷플릭스의 ‘두둥’ 소리를 수십 번을 듣고서야 고르게 된 다큐 ‘우산혁명: 소년 vs. 제국’ 때문이다. 다큐 속 조슈아는 어렸지만,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자유를 갈망했고 그러다 다칠 수 있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 잠자던 홍콩을 그가 깨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조슈아에게 현지 상황과 앞으로의 미래 등 여러 가지를 물었다. 한국에 하고 싶은 말도 해달라고 했다. 이메일을 보낸 지 하루 만에 답이 왔다.
“데드라인이 언제일까요”
짧게 돌아온 답변에서 희망을 봤다. 답을 해주겠구나. 나보다 바쁜 그에게 ‘ASAP’을 외쳤다. 기자 놈들이 늘 이렇다. 자기가 제일 바쁜 줄 안다. 그렇게 이틀 밤이 더 지나고 새벽, 음성 파일이 하나 도착했다.
새벽 3시가 넘은 시각. 선잠에서 잠시 깬 나는 며칠간 그랬듯 이메일을 열어봤다. 음성파일 하나가 도착했다. 잠결에 파일을 들었지만, 홍콩인 향기 물씬 나는 영어 엑센트는 흘려들을 수 없었다.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몇몇 단어는 놓칠 법한 그의 목소리. 그렇게 나의 첫 단독 인터뷰가 완성됐다.
기사가 나가기 전 조슈아는 내게 '기사가 나가면 링크를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기사가 나간 날 퇴근길에 그렇게 했다. 지하철에 내려 환승을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면서 그에게 앞으로도 내가 도울 게 있다면 돕겠다고 말했다. 필요하면 뭐든지 말하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함께. 몇 분 후 그는 기사를 자신의 트위터에 공유했고 많은 홍콩인들은 반응했다. 세계적인 유명 인사의 흔하디 흔한 인터뷰 기사지만, 그들에게 한국 언론이 주는 의미는 또 달랐다.
그날따라 버스는 오지 않고 정류장엔 사람들이 가득했다. 자연스럽게 생각에 잠겼다. 난 기사를 털어내 후련했지만, 조슈아는 여전히 지옥에서 버티는 중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잘했다고, 놀랍다고 했다.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뭔가 불편했다. 난 그저 내가 원했던 기사를 쓰고 털어내면 그만인 건가? 아직 그들은 그곳에서 아우성인데, 난 이제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가면 되는 건가? 이게 내 역할이란 말인가?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내 역할인지 묻는 게 아니었다. 내가 그들의 삶에 어디까지 관여해야 하고, 또 관여할 수 있을지에 관한 물음이었다. 내가 국제부에서 기사를 쓴다고 세상이 갑자기 바뀌진 않는다. 물론 내 기사가 한국에 사는 홍콩인들의 결집을 도모할 수 있고 홍콩 사태를 몰랐던 한국인들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너무 돌고 돈 미래다. 난 작지만, 당장의 변화를 원했다. 그날만큼 무기력했던 적도 없다.
나조차 믿기 힘들지만, 그날 난 정류장에서 울었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울었다. 울고 싶었다.
여담이지만, 영국으로 피신해 망명 허가를 기다리던 네이선 로에게도 같은 질문지를 보냈다. 네이선 역시 조슈아와 함께 홍콩 민주주의를 외치던 인물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답해주지 않았다. 다행히 시간이 흘러 중국 전인대가 끝나고 그와 얘기 나눌 수 있었다. 그때 왜 답하지 않았는지는 묻지 않았다. 바빴을 거다.
조슈아와의 대화는 국제부에서의 첫 인터뷰라는 것도 중요했지만, 훗날 내가 전문기자 타이틀을 달게 된 계기가 됐다. 국제부를 자원한 나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들도 꺾을 수 있었다.
보통 경제지 기자들(영문과가 아닌)은 국제부 발령이 나면 좌천됐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 살피곤 한다. 흔히 말하는 ‘필드(외부)’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들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대신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외신을 번역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 발령 소식에 전 편집국장과 경영실의 모 부장께서 직접 “네가 지원한 게 맞냐”고 물은 것도 이 때문. 그래서 난 최대한 빠르게 성과를 보여줘야 했고, 조슈아가 그런 나를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