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짬 순이 아니라 호기심 순이다

by 고대영

2020년 8월,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매일 12시간 가까이 보내던 나는 몹시 지친 상태였다. 누가 들으면 몇 년은 그곳에 있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출입 등록한 지 고작 두 달째였다.


출입은 두 달이었지만, 증권사와 회계법인을 거치면서 쌓인 시장 피로감이 있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주식, 채권, 환율.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말이 늘 목구멍을 맴돌았지만, 겨우 참아내고 쓰던 그때의 기사들이다. 제일 일찍 출근해 제일 늦게 퇴근했지만, ‘노잼’이었다. 회사에서 상을 받아도 그때뿐이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그렇게 시장부에서 2년을 버틴 나는 마침 인사권자인 편집국장이 교체되자마자 소원수리서를 냈다.


“국제부에 가고 싶습니다.”


국제부는 어린 시절 줄곧 외교관이 되겠다고 말하던 내게 호기심의 영역이었다. 외교관은 되지 못했지만, 분명 국제부에서 내 역할일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추석 직전 인사가 났고, 연휴가 끝나는 대로 나는 국제부 기자가 됐다.


첫 단독 기사는 인사 발령과 함께 나왔다. 추석 연휴 딱히 할 게 없던 나는 홍콩 민주화 운동가 조슈아 웡을 컨택했다. 당시 조슈아는 홍콩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내가 그에게 처음 연락했을 땐 마침 그가 경찰에 체포, 구금된 후 풀려난 상태였다. 그에게 이메일을 통해 이것저것 물었고, 3일이 지나 그는 음성 파일을 보내줬다. 그렇게 나름의 ‘신고식’을 하면서 국제부 취재를 시작했다.


이후로도 해외에서 이슈가 터질 때마다 약간의 운이 따르면서 몇 개의 단독 보도를 한 나는 2021년 5월경, 회사로부터 새로운 제안을 받았다.


“고대영의 세계의창, 어때?”


코로나19가 터지고 회사에 들어갈 일이 거의 없던 나는 모처럼 볼일이 생겨 회사에 출근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던 편집국장이 내게 와서 한 말이다. 전문기자 선배 한 명이 퇴사하면서 난 자리에 나를 넣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내심 좋았지만, 약간 얼버무렸다.


“짬이 안 돼서…”


그러자 돌아온 답은 이랬다.


“짬 순이 아니야. 이건 호기심 순이지.”


생뚱맞게 이등병 시절 군단장이 내게 악수를 건네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간첩은 긴장한 이등병이 잡는다. 병장이 아니라.”


정확한 비유는 아니겠지만, 이상하게 국장에게서 군단장이 떠올랐다. 나는 복무 시절 군단장을 존경했다.


그렇게 나는 국제전문기자가 됐다. 국제를 전문한다. 말이 좀 이상하다. 일반적으로 언론사 국제부엔 국제분쟁 전문이나 국제경제 전문이 있다. 내가 그동안 써온 기사를 볼 때 나는 전자가 맞겠다. 분쟁을 붙이지 않은 이유는 우리 회사가 경제지인 탓에.


내가 알기로 우리 회사에서 국제전문기자는 내가 처음이다. 우리 회사는 국제부에 전문기자를 둘 만큼 큰 회사는 아니다. 좋게 말하면 10대 경제지, 삐딱하게 말하면 마이너 경제지이니 말이다. 기존의 전문기자들도 하나같이 금융이나 산업 관련 기자들이다. 국장의 권유가 내게는 기회가 됐지만, 국장과 회사엔 모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렴 어떤가. 어쨌든 나는 5년 차에 전문기자가 됐는 걸.


그냥 증명하면 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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