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전체가 이주한 것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오르막길을 따라 대문마다 철거 스티커와
바닥에는 깨진 유리창과 부서진 잔해가 좁은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마치 어느 순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마을의
한가운데 있다는 기분이 듭니다.
자그락대는 깨진 유리 더미를 밟고 옥상이 있는 빈집에 들어가 봤습니다.
혹시나 누군가 있을까. 빈 집이라 노숙자나 불량한 사람들이 있지는 않을까
조심조심 소리 없이 계단을 오르지만,
발에 밟혀 깨지는 유리 조각들은 내 무게만큼 짧고 날카로운 소리를 만들어 냅니다.
여기저기 커다란 장독이 널브러져 있고,
부수다 만 시멘트 조각들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고개를 돌려 올려다보니 멀리 눈에 들어오는 집들은 이미 이주가 끝났는지
유리 없는 창문엔 회색 비닐만 이따금 펄럭입니다.
이 집엔 누가 살았을까.
가을의 서늘한 바람에 오랫동안 살아왔을 사람들의 온기는 하나도 남아있질 않습니다.
노랗게 비치는 가을 햇빛에 을씨년스러울 풍경이 조금은 따스하게 느껴집니다.
어쨌거나 저는 아무도 없는 이 집의 마지막 손님이 되었네요.
이 동네는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랍니다.
골목길 어디를 걸어도 길은 다시 이어지고
창밖으로 희미하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계단 끝에 올라서면 어떤 모습이 펼쳐질까 궁금하고
골목길 사이로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이런 동네가
저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좋습니다.
여기도 아파트가 들어서고,
저마다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겠지만요.
염리동,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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