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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승빈 Jan 12. 2021

하노이에서 길을 건너는 방법

1월 12일. 열두 번째.

하노이 풍경


언젠가 네가 하노이에 가게 되면 나처럼 당황하지 않게 그들의 길을 건너는 법을 알려줄게. 


내가 하노이의 한 거리에 도착했을 때, 오토바이로 가득 찬 도로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

빠른 속도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달리는 오토바이의 행렬은 마치 아쿠아리움에서 보았던 멸치 떼처럼 일사불란했지. 그런 도로를 가로질러 건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신호등이 있는 곳까지 한참을 돌아가야만 했었어. 


그런데 어느 날이었어.

한 아주머니가 자녀로 보이는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아무렇지 않게 길을 건너는 거야.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사람들이 지나는 모습을 지켜보았어. 여행자인 우리가 모르는 그들만의 룰이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 그렇게 한참을 지켜보다 길을 건너려는 한 남자의 옆에 서서 그의 보폭과 시선을 따라 하며 길을 건넜다. 그러고는 다시 뒤돌아 이번엔 혼자 길을 건너는 데 성공했지.   

  

달려오는 오토바이의 운전자와 눈을 맞춘다. 천천히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결코 뛰어선 안돼.

오토바이 운전자와 시선을 맞추는 일은 내가 지금 여기서 천천히 길을 건너고 있으니 알아서 잘 비켜가라는 서로 간의 신호. 무서워서 뛰었다간 나를 피해 가려는 오토바이와 부딪히기 십상이지. 왠지 그들의 일상 속으로 한걸음 다가선 기분이었어. 


서두르지 않음, 양보와 배려.

이것이 하노이의 길을 건너는 방법이야.





약 10년 전에 트래비라는 여행잡지에 짧게 기고했던 글이네요.

제게 2007년 첫 번째 하노이 여행은, 첫 어반 스케치의 시작이 된 장소이기도 합니다.



하루 한 장의 드로잉, 하나의 단상.

1장 1단. 열두 번째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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