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승빈 Jan 15. 2021

도를 아십니까?

1월 15일. 열다섯 번째.

그림은 신촌 스벅


누구나 길거리에서 한번 정도는 만났을 법한, 도를 아십니까의 그들. 사람들은 그들을 도인이라 한다. 홍대 거리에는 그런 도인들이 많다. 한 번은 홍대 정문의 스타벅스에서 작업 중 옆자리의 여자분이 말을 걸어온 적이 있었다. 그녀 또한 도인이었는데, 폰의 배터리를 충전하러 왔단다. 멀끔한 정장 차림에 평소 마주치는 여느 때의 도인들과 달라서 마침 작업도 잘 되지 않던 차에 그녀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상대방과 대화를 하다 보면 때때로 그 사람이 공부한 학문의 깊이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방대한 영역을 아우르는 해박한 지식과 노트 한 면을 가득 채우며 논리 있게 설명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제법 놀랐다. '이렇게 설명을 잘하시니 소위 도인분들의 간부 정도 되시나 봐요?'라는 내 질문에 그녀는 그저 회사원일 뿐이며, 자발적으로 하는 거라 했다. 한참 동안 의견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핸드폰 충전이 다 되었다며 그렇게 그녀는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그녀는 일주일 동안 네 번이나 길에서 마주쳤고, 마지막 한 번은 자기도 무안했는지 모른 척 지나치더라.


살고 있는 이 홍대라는 곳은 하루에도 몇 번을 마주칠 정도로 도인들이 많았다. 지하철역, 길거리뿐만 아니라 카페 안에서도 종종 말을 걸어왔다. 그 방법도 아주 다양한데, '얼굴에 불의 기운이 가득해요', '조상님 덕을 많이 보시네요'는 이젠 식상하다. 이번에 새로 개발한 사탕이 있는데 한번 먹어봐 주시고 어떤지 말씀 좀 해주세요. 방향제 매장을 열려고 하는데 어떤 향기가 좋은지 하나만 골라주세요라던가, 미술치료를 공부하는 학생인데 나무를 하나만 그려주세요 등.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그들의 방법도 다양해지는 것 같다. 나는 종교에 특별한 편견은 없지만, 강요를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


며칠이 지나 같은 카페. 누군가 슬쩍 옆에 앉아 수줍은 듯 인사를 건네며, 자신은 만화를 그리는 학생이라 했다. 괜찮다면 잠깐만 부탁을 해도 되겠냐고, 자기가 그린 캐릭터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 두 개만 골라 달라며 두꺼운 바인더 북을 펼쳐 보였다. 전에도 비슷한 방법의 도인을 만나 본 적이 있어 못 들은 척하려 했지만, 마침 무료하던 차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하나만 골라주었다.


“그냥 이게 제일 나아 보이네요”


내 시큰둥한 반응에 더 이상 말을 잇기가 멋쩍었는지 그는 천천히 일어나 카페를 나가버렸다. 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만화를 공부하는 학생이었나 봐. 그림체를 보니 이제 시작한 것 같았는데, 나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 그 심정이 어땠을까 갑자기 너무 미안했다. 



P.S. 사실 가장 괜찮은 하나의 캐릭터보다도, 한 장 한 장 정성이 느껴지는 그림들이어서 좋았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지금도 꿈을 이루고 계시길 진심으로 바랄게요.





하루 한 장의 드로잉, 하나의 단상.

1장 1단. 열다섯 번째 단상.




매거진의 이전글 두 번 다시 맛볼 수 없는 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