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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승빈 Jan 14. 2021

두 번 다시 맛볼 수 없는 맛

1월 14일. 열네 번째.

하지만 드로잉은 우육탕.


초등학교 때 외삼촌은 부산의 서동이란 곳에서 구둣방을 했었다. 두어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도 좁은 골목의 구둣방 맞은편에는 한 할머니와 가족이 운영하는 칼국수 집이 있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임에도 그 가게는 부근에서 맛집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곳이었는데, 지금의 내 기억에도 그 맛은 가히 일품이었다. 외삼촌의 가게까지 버스를 타고 25분 정도 가야 하는 거리였지만, 그 칼국수를 먹기 위해 종종 심부름을 가곤 했었다.


당시 어른들의 말로는 할머니는 북한에서 왔다던데, 아마도 피난길을 따라 여기에 정착을 하게 된 것 같다. 칼국수는 항상 연두색과 흰색 무늬가 있는 그릇에 담겨 나왔는데, 밀가루 전분끼가 있는 걸쭉함이 아닌 적갈색의 다소 맑은 국물이었다. 그다지 많은 재료가 들어간 것 같지는 않았지만, 한번 먹고 나면 계속 생각나는 맛이라고 해야 할까. 말과 글로 형용할 수 없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그보다 맛있는 칼국수를 먹어보지 못했다.


얼마 되지 않아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가게문은 더 이상 열지 않게 되었다. 성인이 되고 당시의 맛이 그리워 이름 있는 칼국수집을 몇 군데 다녀보긴 했지만, 어느 한 곳도 그 맛이 아니었다. 어쩌면 북한식 면요리 방식으로 칼국수를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소위 칼국수라 하면 연상되는 그 모양과는 남다른 데가 있었거든. 어쨌거나 맛있었던 음식을 두 번 다시 맛볼 수 없다는 것도 꽤나 슬픈 일이다.





하루 한 장의 드로잉, 하나의 단상.

1장 1단. 열네 번째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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