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비우기 - 책, 의류
요 며칠 전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낸 내 단짝 친구를 만났다.
(이제 4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는) 그 친구는 그날 엄청 화려한 청바지를 입고와서 내 시선은 그 친구의 바지로 고정되었고, 멀리서 봐도 눈에 띌만한 알록달록한 청바지...
근데 어디서 많이 본듯한 익숙한 청바지이길래 친구에게 물었다.
"헤이 브로,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청바지 같은데?"
"이거 예전에 네가 준 바지잖아 너 만나기로 해서 입고 왔어"
어 그래, 마음은 고맙다만... 좀 화려하다, 아니 내가 이 바지를 입고 다녔다고? 민망함과 친구가 고마운마음으로 입고 나와준것과 그리고 창피함과 잠시 만감이 교차 했다.
화려한 청바지를 입고 나타난 그날 친구에게 이 옷 버려라라는 잔소리를 엄청하며 난 친구에게 비교적 화려하지 않은 점잖은 내 옷들을 선물하겠노라며 약속을 하고 주말 옷장을 정리하려고 열였는데...
체격이 비슷한 친구라 내가 잘 입지 않는 옷을 줘야겠다 싶어 주말 아침 옷장을 정리하려고 열었는데...
뭔 옷이 이렇게 많은 거야???
그렇다.
난 옷 욕심이 좀 있다. 아니 많았다.
16년간 의류 회사에 재직하며 애사심에 매 시즌마다 신상품을 입어봐야 우리 상품의 좋은 점과 개선해야 할 점을 알 수 있다는 핑계로 봄, 여름, 가을, 겨울 16년 동안 쉬지 않고 새 옷을 구매했다.
에이~ 어떻게 우리 회사 옷만 입어?
장소와 분위기에 맞게 옷도 입어야지 하는 핑계로 옷은 계속~ 쭉 ~ 구매해 왔다.
그럼 난 패션리더니깐! (와이프와 딸은 패션 테러범이라... 한다.)
옷을 구매할 때... 특이한 버릇이 좀 있다. 티셔츠가 될 수도 있고, 바지가 될 수도 있고, 자켓이 될 수도 있고... 난 마음에 드는 아이템은 색상별로 다 구매하는 이상한, 매우 이상한 습성이 있다.
특히 한번 이거다 싶은 아이템은 주저 없이 색상별로 구매하는 바람에 와이프한테 많이 혼난 기억이... 한번 혼나지 뭐 하고 다시 색상별로 구매하고 있는 내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와이프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과 말로 나에게 이야기한다.
"아니, 똑같은 옷을 왜 몇 개씩 사는 거야?, 차라리 좋은 거 하나를 사~ 오래 오래 입게"
"여보님, 이 옷들은 다른 옷이야. 봐봐~ 원단이 색상별로 틀리기도 하고, 그래픽, 이 디테일 봐봐 이건 다른 옷이야~"
이렇게 옷을 구매하는 날에는 와이프를 어떻게 설득하지? 하는 걱정과 고심을 하고 귀가를 한다.
"뭘 또 사셨어요?" 싸늘하다.
머릿속에는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선의의 거짓말은 한다.
"아 이거 후배가 고맙다고~ 선물해준거야","아 이거 그 있자나 oo 형님, 옷 사셨느데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고 주셨어~ 나중에 쐬주한잔 사기로 하고""
이건 누구한테 선물 받은 거고, 이건 누구한테 받은 거고... 친한 친구 선후배를 참 많이 팔기도 했다. 와이프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알면서 모르는 척해준 거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와이프의 너그러움에 매우 큰 감사를 드린다.
명절이 되면 남동생과 주변 친척분들께 잘 입지 않은 옷, 충동구매로 구매했지만 한 번도 착용하지 않은 상품들은 선심 쓰듯 지인분들께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그것도 잠시... 내 옷장 안의 옷들은 날보고 이야기 한다.
" 좀 봐주세요, 주인님 저 언제 입으실 건가요?, 저도 밖에 나나고 싶어요." 옷들로 한 가득이다.
이런 나의 구매 행태는 비단 의류뿐만 아니라 서적과 다른 아이템 구매할 때에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책은 전집이지 ~ 읽은 자신이 없는듯한 책이지만 꽉찬 책장에 있으면 뿌듯함에 구매
"책이 관상용이냐" 하는 와이프의 타박에 "아냐~ 다 읽을 거야" 오늘도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면서 위기를 모면한다.
어느 순간 무언가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좀 줄기는 했다.
줄었다는 표현보다는 필요한 건 다 가지고 있어서 그런듯 싶다. 나의 소비욕구는 앞으로도 쭉 소강상태이기를 희망한다.
사실 내 생활 패턴에 필요한 건 다 가지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그게
내면의 아름다움, 깊이를 논하기엔 내가 깊이가 없어서 논하기가 어렵고
첫인상? 중요하지. 상황에 맞는 옷들만 챙겨 입어도 되잖아.
적극적인 자연보호, 환경운동은 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쓰레기는 양산 시키지 말자라고 다짐중이다.
책은 좀 욕심이 나긴 하지만, 집 앞에 도서관을 지금보다 더욱더 많이 이용해야겠다. 저 도서관에 있는 책들이 다 내 책인데 하는 맘으로.
비우자
비울수록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음을 느낀다.
비운 곳에 어떤 걸 채워 넣어야 하나?
그냥 비워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