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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낙서

by 김영자

가지 사이를 흔드는 바람에 나무들이 바빠졌다. 가을햇살에 몸을 추스린 나뭇잎들이 물감을 풀기 시작 하더니 어느새 단풍이 절정에 이르고 길섶에 쌓인 은행잎 곁에서 추억들이 서성인다.

아파트 정원의 나무들도 공원의 나무들도 모두 가을옷을 갈아입고 단풍축제의 폐막식을 준비 하나보다. 가을은 곳곳에 거대한 미술관을 차리고 , 만추의 풍경화는 최고의 걸작품이 돼었다.

황금빛 옷으로 갈아입은 은행나무의 우람한 자태앞에 알량한 모든것은 빛을 잃는다.

세월의 두께만큼 인내하며 자리를 지켜온 은행나무에 기대어 가을의 소리를 듣는다.

눈을들어 아름드리 은행나무의 수관을 올려다 보니 많은가지와 잎이 어우러져 그 다발이 풍성하고 그안에 보물을 숨긴 방을 두었다.

스산한 바람에 나뭇잎이 떨어지고 상념의 조각들은 마음에 내려 앉는다.

못다한 말들은 낙엽위를 맴돝다 떠나가고

가랑잎 날리는 바람따라 아름다웠던 날들도

아주 가려나 보다.

코트깃을 세워도 주머니에 손을 넣어봐도

가을엔 가슴이 너무 시리다.

고목의 단풍은 화려하고 신비로우며 장엄하고 슬프다.

까치가 다녀 가던날의 가을은 충만한 감성으로 가득하여 봄비맞은 새싹처럼 설레었다.

꿈꾸던날의 가을은 높은하늘과 고운단풍을 보며

가슴이 뛰었다. 황혼녘의 기을엔 낙엽 떨어지는 길을 걸으며 비움의 미학을 생각한다.

가을은 여물지 않은 쭉정이를 움켜잡지 않고

남루한 옷을 입지 않는다.

가을은 옹골찬 결실에 기뻐하며 찬란한 옷을 갈아입고 우아한 손짓을 한다

겸손한 마음으로 깊이 사색하라 일러두고

고운그림 두고 떠나는 가을을 사랑한다.

나도 가을엔 이젤을 펴고 하얀 캔버스위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

단풍이 고운 숲과, 속이찬 알곡이 고개숙인 황금들판을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지는 노을도 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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