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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길

by 김영자

아침에 커튼을 제치니 하얀 동화의 나라가 나를 반긴다. 나도 모르게 환호성이 터졌다.

단풍축제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밤새 많은 눈이 내렸다. 바라보는 풍경이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답다. 기상 캐스터는 17년 만의 폭설 이란다.눈 오는 풍경은 우리에게 잠시나마 여유를 갖게하고 낭만에 젖는 시간을 선사한다. 그러나 한없이 쏟아지는 폭설이 현실에선 무기만큼 무서운 양상으로 변하기도 한다. 낭만의 눈도 생명의 비도 넘치면 감당하기 어려워 걱정거리로 변한다.

병원 예약일이라 중무장 하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니 화단은 두툼한 솜이불을 덮고 있다. 미련의 끈을 놓지 못해 마른몸으로 바람을 견디던 기랑잎들이 퍼붓는 폭설에 놀라 눈이불 위에 널브러져 있다. 주차장의 차들은 형체가 분간되지 않아 큰솜뭉치 같다. 내딛는 발걸음에 절로 힘이 들어가고 주위는 온통 하얀색으로 변해 버렸다. 건널목에도 발목이 잠길만큼 쌓인 눈은 그칠줄 모르고 계속 내린다.사람들과 자동차 모두 엉금엉금 속도를 낮추고 거리의 상가들은 눈을 치우느라 분주하다. 많은 눈이 쌓인 터에 계속 내리고 있어 눈을 치우는 일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지나는길 신장개업한 상가 앞에 커다란 화분 몇개가 눈을 뒤집어쓰고 기절한듯 서있다. 안타까운 마음에 잎을 만져보니 얼어서 소생할 기미가 없어 보인다. 전에도 가끔 초겨울날 상가앞에서 얼어죽은 식물들을 보곤했다. 누군가 개업을 축하하며 돈을 들여 사왔을 화분이다. 누군가의 마음이 무시되는건지 식물의 존재가 하찮게 여겨지는건지 보기가 안쓰럽다. 상가의 주인은 마음의 여유가 없었나 보다.

처음 시작할때는 구석까지 빛이나고 활기차 보이던 상점들도, 시간이 지나며 지친 기대감과 고단함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그럴때마다 생활전선의 군상들이 작은것들을 하나씩 포기하는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생업을 위해 수고하는 모든 사람들의 업소마다 눈송이 같은 축복이 소복소복 쌓이길 바라본다.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들의 모습이 버거워 보이고 앰블런스의 뒷모습도 뒤뚱거리는것 같다. 설경에 취하고 낭만에 젖는 이들 뒤에 수고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도 생각한다.


아파트 사잇길로 들어서니 습설의 무게로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보인다. 미니 크리스마스 츄리로 제격일것 같아 소나무가지 몇개를 주웠다.

오후시간 임에도 아파트 단지에는 눈을 치우는 경비아저씨 외에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우리가 어릴적엔 눈이오면 모두 나와서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면서 얼굴이 벌게지도록 뛰놀며 즐거워 했다. 요즘엔 아이들도 웬만한 어른보다 바쁘게 지내다보니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수 없어 보인다. 미끄러운 눈길을 한바퀴 돌아 집에와서야 비로소 안도감이 든다.

TV를 켜니 여기저기 크고작은 눈사태와 사고의 소식들이 들려온다. 우리의 삶이 눈오는 풍경처럼 아름답지만 않다는걸 느끼게 한다. 갑자기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생각하니 눈오는 모습을 보며 낭만에 젖기도 민망하다. 삭막한 겨울의 시작이다. 올겨울은 우리 모두의 마음이 흰눈처럼 깨끗하고 따듯하기를 바라본다. 끝없이 내리는 눈처럼 모든이들의 마음에도 한없는 은혜와 축복이 내리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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