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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초밥

by 김영자

나의 아버지는 미식가이며 애주가셨다. 내가 어릴적, 아버지께서 술을 드시고 오실때는 항상 초밥을 들고 오셨다. 생선회를 좋아 하시는 아버지는 술이 얼큰하면 초밥을 사오시는 습관이 있었다.저녁식사후 궁금할 시간에 초밥은 반가운 별미가 되었다. 아버지는 전기공학을 전공하시고 공보부 여러부서를 거쳐 지방의 기관장을 지내셨다. 개를 좋아 하셔서 집엔 언제나 개가 한두마리씩 있었다. 사진찍기를 즐기시고 자주 낚시도 다니셨다. 겨울엔 개를 데리고 사냥을 가서 꿩이나 토끼, 산비둘기를 잡아오셨고 노루를 잡아 오실 때도 있었다.

우리는 4남매인데 모두 아버지를 어려워 했다.

아버지가 오시면 습관적인 인사를 하고 제방 찾기 바빴다. 폭력적인 분도 아니고 크게 꾸중을 하신적이 없음에도 아버지를 어려워 했다. 아마도 말씀이 적은 아버지 성격 때문 이었을것 같다.

우리는 아버지를 어려워 했지만 아버지는 가정적인 가장이 되려고 노력 하셨던 것 같다. 주말이나 휴일에 자주 외식을 했다. 명동이나 종로에서 그때 유행하던 경양식 집을 찿아 함박스테이크나 오므라이스를 먹었다. 여름 방학 이면 강이나 바다로 물놀이를 가곤 했는데 나와 동생은즐겁지가 않았다.


어느해 여름 송추 계곡에서 동생이 폭포를 거슬러 오르다 바위에 미끌어 지면서 앞니가 부러졌다. 물놀이는 중단되고 서둘러 치과로 향했다. 학년이 오를수록 물놀이 여행은 고역이었다.

나는 집에 혼자 있고 싶었고 가족과 어울리는것,특히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불편했다. 엄마가 계모라는건 그분의 인성과는 별개로 어린날의 내생활을 어둡게 했다. 내의지와 무관한 변화와 낯선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마음이 울적할때면 콩(우리집 진돗개)을 끌어안고 친구에게 하듯 이야기를 했다. 콩은 알아들은듯한 표정으로 킁킁거렸다. 그때 콩은 나의 절친중 하나였다.

우리들이 성장해서 각기 가정을 이루고 두남동생은 이민을 갔다. 부모님도 이민을 가실 계획 이었으나 미국에 몆번 다녀 오시더니 한국에 남기로 마음을 바꾸셨다.

얼마전 민정애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다정한 부녀상이 부러웠다.두분은 마음이 따듯한 분들 같았다.

책을 읽으며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마음이 착찹하고 너무 죄송했다. 아버지 만년에 함께 했던 시간들도 생각났다. 내가 아버지댁을 찿아가면 청하와 연두부를 준비 해놓고 나를 기다리셨다. 여자도 40이 넘으면 술한잔 해도 괜찮다는 아버지 지론에 따라 감히 아버지와 대작을 하곤 했다. 두남동생이 이민을 떠난후 아버지는 외로워 보이셨고 나와 청하 마시는 시간을 좋아 하셨다. 언젠가 청하를 드시면서 말씀 하셨다. 동물들은 자라서 부모곁을 떠나면

부모를 찿지 않는다고,사람만 부모를 찿는다고 하셨다. 타국에 사는 아들들이 보고 싶으셨는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았으나 노년에 이르러 회한과 허무함으로 외로우셨는지, 묻지도 못하고 대답도 못했다.

지금 내나이쯤에 아버지는 기흉 수술을 받으셨다. 수술후 폐기능이 회복되지 않아 입.퇴원을 반복 하시며 고생 하셨다.

방송통신 분야에서

인정받던 아버지,활발한 사회생활을 하시며 여러 취미생활을 즐기시던 멋쟁이 이버지 모습은 간곳없고 너무 야위고 숨쉬기 조차 힘든 노인으로 변하셔서 가족들을 안타깝게 했다.호홉곤란으로 고생하시던 아버지는

84세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나는 임종도 지키지 못했고 투병중에 손한번 잡아 드리지 못했다. 내나름의 핑계가 있다해도 마음에 맺히도록 후회 스럽고 죄송하다.

어릴때는 수없이 아버지를 원망했다. 세상 떠나신 후에는 따듯하고 자상한 딸이 되지 못했음을 후회하며 나를 원망한다.

내가 어릴적에도 노년이된

지금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슬퍼진다.

아버지 슬하에서 보낸 다사다난했던 세월동안 나는 혼자 삐뚤빼뚤한 생각들을 쌓아가며 스스로 이방인 같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나의 순탄치 못했던 세월도 흐르고 지나갔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마음은 어떤 것인지 지금도 표현이 않된다. 아버지도 힘드셨을거라고 이해하려는 마음과 서운하고 원망스러움이 함께 남아있다. 아버지가 보고 싶으리란 생각은 보지 못다.

그럼에도 세월이 많이 흐른후 나는 자주 아버지생각 한다.

떠나시기 전에 손한번 잡아 드리지 못함이 너무 죄송하고 마음아프다.

아버지가 사오신 초밥을 맛있게 먹던 기

아버지와 함께 청하를 미시던 때가 생각난다.

아버지와 나도 사랑하는 부녀사이 였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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