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의 텃세

by 김영자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디던 어느날, 둘째가 노란 병아리 한 마리를 들고 왔다. 아이 손에 쏙 들어 갈만큼 작은 병아리를 거실 바닦에 놓으니 잠시 낯설어 하던 병아리는 곧 삐약 거리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좁쌀을 구해 먹이고 물그릇도 장만해 주었다. 한 순간에 가족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병아리를 서로 만져보려고 아이들이 따라 다니고, 둘째는 제 병아리 라고 만지지도 못하게 한다. 샘이 난 막내도 다음날 학교앞에서 병아리를 사왔다. 어리둥절한 막내의 병아리를 거실바닥에 내려 놓자 둘째의 병아리가 달려들어 마구 쪼아 대더니 아예 날개를 물고 질질 끌고다녔다. 막내의 병아리는 꼼짝 못하고 그 수모(?)를 다 당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진풍경에 가족 모두 배를 잡고 웃었다. 그 조그만 병아리에게 무슨 생각이 있는건지 신기 했다. 먼저 입주 했다는 기득권(?) 주장인지 서열을 위한 투쟁인지 모를 일이었다. 막내가 얼른 들어올려 일방적인 싸움은 끝이 났으나 예측하지 못한 대단한 기세의 텃세였다. 내 영역에 침입한 칙략자에 대한 응징이며 본능적인 방어행동 이었을 것이다.

동물의 세계는 모두 텃세가 있으며 바닷속 물고기들의 세계에도 해당 된다고 한다. 동물의 텃세는 웃음을 선사하고 때론 귀엽기도 하다.


사람의 텃세는 슬프고 안타깝다.

사회 곳곳에 서 기득권과 텃세로 크고 작은 갈등이 일고 있고 마음아픈 소식이 들려오기도 한다.

고대 인류가 수렵생활을 할때나 씨족사회를 이루고 농경생활을 할때에는 공동체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기득권을 위한 투쟁이 있었을 것이다. 대가족 생활을 할 때에도 질서 유지등을 위해 텃세 같은것이 있을수도 있었다 생각된다.

아직도 기득권이니 텃세니 하며 논란과 갈등이 불거지는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일이 아다. AI가 사람을 대신하는 고도의 문명사회와는 맞지 않는 일이다. 안타깝지만 우리사회에는 사람이 모인 곳이면 어디든 알게 모르게 기득권과 텃세가 존재한다.

사회 계층간의 기득권 주장, 직장내의 텃세등을 방송보도를 통해서도 심심찮게 접하곤 한다. 타인을 배려하고 너그러운 인품을 지닌 사람들도 많은 면, 텃세를 부리는 사람들도

있으니 안타깝다. 자신만의 약점과 열등감이 있고 무언가에 결핍을 느끼는 사람들이 텃세를 부리는게 아닐런지 모르겠다. 세를 하는 사람들은 새 사람을 견제하며 표면상 전혀 문제되지 않는 방법으로,상대에게 눈치 채이지 않는 교묘한 방식으로 텃세를 부린다. 그러나 그걸 모를 상대는 없다. 텃세를 부리는 사람들의 치졸하고 옹졸함은 스스로의

인격을 끝없이 추락 시킨다. 기득권 유지를 위한 다양한 편법이 여러 양상의 문제를 야기하고 크고작은 텃세는 불필요한 감정소모와 갖가지 부작용을 초래하며 서로의 발전도 저해한다.

예측불허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기득권이란 얼마나 허황된 권리인가.

불완전한 사람들의 미숙한 인격에서 생겨나는 텃세는 얼마나 어리석은 행태인가. 이제는,

본능적이고 미숙한 심리에서 벗어나 서로를 배려하며 정당하고 예의바른 생활인들이 많았으면 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화이트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