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생명들과의 동행

by 김영자

밍크코트보다 더 좋은 비닐코트를 입은 제라늄들은 기분이 한창 좋아 보인다.

이겨울, 아파트 발코니에서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주먹만한 송이꽃을 피우고 있다.

그동안 많은 식물들을 키워왔으나 나이드니

관리 하기가 쉽지 않았다. 너무 큰 화분은 무거워서 옮기거나 분갈이 하기가 버거웠고

계절따라 실내로 들여놓고 내놓고 하는것도

쉽지 않은 노동 이었다. 정들여 키워온

화초들을 버릴수도 없었다. 어느날 큰 결심을 하고 화초들을 입양 보내기로 했다.


아파트 1층 현관에 화분들을 내려다 두고 큰

종이에 "저를 입양 해주세요" 라고 써서 감싸 놓았다. 우선 경비 아저씨가 한화분 챙기셨다.

몇시간후 내려가보니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나보다 건강한 사람들이 잘 키우리라 생각하며

안심했다.

집에는 발코니에 제라늄 화분 몇개를 남겨 두었다. 제라늄은 고온 다습한 환경을

싫어한다. 겨울에 실내로 들어 가는것 보다 발코니 에서 지내기를 좋아하는 식물이다. 제라늄은 김장용 비닐봉투를

입혀주면 맹렬한 한파에도 굴하지 않고 겨우내 탐스런 꽃이 피고지는 효자식물 이다. 제라늄은

큰 화분을 차지 하지도 않고 추위에도 강해서

나와 함께 하기에 안성맞춤인 식물이다. 나는 볼품있고 값나가는 큰 식물보다 작고 오밀조밀한 식물을 좋아한다. 어느 지인이 내게 "간신 수염같은 화초를 심어놓고 좋아한다"고 웃었다. 그렇다. 나는 풍채좋은 식물보다 작고 여린 식물을 키우며 수줍게 움트는 새순과 나날이 활기차

보이는 초록잎 들여다 보는걸 좋아한다. 성장하며 보여주는 미묘한 표정과 변화를 지켜보며 감격하고 기뻐한다. 내관심에 반응하는 작은 생명의 성장과 그 예쁜짓이 게 촉촉한 마음을 일게한다.

화초들을 입양 보내고 확 줄어든 초록이 가족이 쏠쓸해보여

웬만한건 모두 물꽂이를 해본다. 아끼던 머그컵이 이가 빠져 물꽂이 용기로 이용했다. 당근머리부분을 여유있게 잘라 컵에 서너개 꽂으니 얼마후에 뿌리가 내리고 삐죽삐죽 싹이 돋았다. 차츰 잎이 풍성해져서 양치식물 화분 하나 들여 놓은듯 운치가 제법이다.

언젠가는 콜라비를 뿌리 내려 작은 화분에 심고 근사하게 꽃도 피웠다. 작은 물꽂이들이 쑥쑥 자라는걸 보며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낀다. 여기 저기 놓인 물꽂이들이 겨울철 실내분위기를 돋운다.

아침에 일어나면 커튼을 제치고 식물들과

눈맞춤을 한다. 밤사이 움이튼 새순은 없는지

초록잎의 기운은 어떤지 살핀다.

고층 아파트 에서도 꽃을보고 식물의 잎을 관찰 하는건 푸른것들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다. 살아가는 작은 생명들의 기특함

때문이다. 작은 생명들은 말한다. 산다는건 제자리에서 나답게 열심히 내일을 하는 거라고. 볕이 좋은날은 발코니가 아늑하고

따듯하다. 소담스럽게 핀 제라늄 꽃들을 바라본다. 발코니에 자리잡은 제라늄은 추위를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간다. 이렇게~이렇게 살아 가자고 한다. 풍성한 제라늄 송이꽃위에 내 작은 소망 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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