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골마을에 가난한 할머니가 홀로 살고 있었다. 추운겨울날 방안은 냉기가 가득했고 구멍난 이불을 덮고 누운 할머니는 스며드는 한기에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곰곰 생각에 잠겼던 할머니는 벌떡 일어나 가위로 이불구멍을 도려냈다. "이구멍만 없으면 이불속으로 바람이 들어올수 없을거야". 어릴적 동화를 읽으며 나는 한참이나 웃고 또 웃었는데, 아마도 동화속 할머니는 치매에 걸렸던 모양이다.
대화중에 단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익숙한 멜로디인데 무슨곡인지 모르겠고, 분명 무엇을 꺼내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생가나지 않아 멍하니 바라보다 문을 닫을때도 있다. 때론 TV리모컨으로 에어컨을 켜려다 실소를 터트리기도한다.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떨며 연신 스마트폰을 찿거나 아무리 찿아도 없던 물건이 아주 엉뚱한 곳에서 나타나는 일도 있다.
나는 친구들보다 기억력이 좋은듯, 오래전 일들을 비교적 세세하게 기억한다. 6.25때 화물기차 지붕에 앉아 피란가던일, 엄마가 동생을 업고 내손을 꽉 잡은채 필사적으로 달려서 방공호로 뛰어들던 일도 생각난다. 그때 나는 다섯살 꼬마로, 죽을힘을 다해 달리는 엄마의손에 잡혀 있었으 므로 서부영화의 한장면처럼 땅에 배를 깔고 엎드린채 끌 려가고 있었다. 어릴적에 있었던 여러상황들의 장면들도, 학교다닐적 친구들과의 생활도, 대부분 또렷이 기억한다. 그러나 노년에 들어 내건망증으로 벌어지는 여러상황들은 나를 당황하게 하며 어이없게 한다. 은근 염려되어 친구모임에서 하소연을하니 모두들 공감하며 한술 더뜬 경험들을 이구동성으로 자랑(?)한다.
주위에서 치매로 가족들에게 걱정과 긴장을 안기는 사람들도 여럿 보아왔고 나이도 나이인지라 몇년전 치매검사를 받았다. 의사의 말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겪는 건망증이 곧 치매로 이어지는건 아니란다.
기쁜 일이든 슬픈일이든 세월이 지나면 기억은 추억이 된다.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애잔하게
그리고 마음아프게 남는 추억도 있다. 80이 되니 아팠던 기억도 젊음과
함께했기에 더없이 애틋한 추억으로 남는다.
기억속에는, 그렇게 좋은 시절을 좋은줄도 모르고 지냈던 철부지시절의 일들부터 아쉬움과 후회로 마음이 슬퍼지는 일들도 있다. 잊고싶어도 잊지못하고 마음의 상처로 따라다니는 기억들도있다.
지난세월속의 모든 기억과 아름다웠던 추억들,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과 존재를 모두 망각해버리는 치매는 무섭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노년의 적당한 건망증은 축복일수도 있을것 같다.
슬픈일 서운한 일들은 지나간 세월에 묻고 기쁜일. 고마운일만 기억한다면 얼마나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살수 있을가? 나는
나쁜기억 슬픈기억만 잊혀지는 건망증에 걸리고 싶다. 치매없는 건강한 노년을 살며
기억속에 남아있는 나쁜추억 슬픈추억만 지우는 건망증을 선물로 받는, 건강한 노인이면 좋겠다. 이세상을 떠날때에도 항상 행복했고 고마웠노라고 말할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