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의 입속에서 메마른 침이 한줄기 흘러나왔다. 그것이 전부였다. 엄마는 죽음 앞에서 꽤나 온순한 투항을 한 것처럼 보였다. 고통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던 엄마는 결국 죽음 쪽으로 자신의 몸이 기울었을 때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음을 알아차렸던 걸까. 고통이 잦아든 엄마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한 사람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았다. 그런 엄마의 얼굴을 보고 내 눈에서는 눈물 한 방울 흘러내리지 않았다.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심전도 계기판의 눈금이 0을 가리키자 날카로운 경보음이 병실의 적요를 조각냈다. 나는 그제야 엄마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플라타너스 나무에서 떨어진 잎사귀들이 거리의 이곳저곳에 수를 놓았다. 형형색색으로 물든 거리의 자수들을 형광색 조끼를 입은 미화원들이 검은색 아스팔트로 되돌려 놓는 동안 제법 쌀쌀해진 늦가을의 아침햇살은 병실의 하얀 시트들을 가을의 단풍처럼 노랗게 물들였다. 고작 아침 7시였다.
<운명하셨습니다.>
당직 수련의의 건조한 입술에서 겨우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짧게 토막 난 한마디의 말이 유일하게 엄마의 죽음을 실감 나게 해 주었다. 살이 너무 빠져버린 엄마의 골반은 불모지에 군데군데 튀어나온 편마암 모서리 같았다. 조선족 간병인과 함께 엄마를 씻겨줄 때 엄마의 몸은 뼈와 가죽만 붙어있는 신선한 미라처럼 보였고 까맣게 타들어가 말라버린 대음순은 습기라고는 한 점 없었다. 그렇게 뾰족하고 메말라버린 황무지 깉은 곳에서 내가 나왔다는 것이 믿기가 어려웠다. 엄마와 함께 욕실에 들어가는 날이면 엄마의 입에서는 항암치료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병리적 증상이 나타났다.
<미강아. 미안하다. 미안해.>
엄마의 입은 그 말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도 아랫도리에서는 얇은 실가닥 같은 똥이 비실비실 흘러나왔다. 다섯 가지의 약과 소화도 채 되지 않은 작은 밥알들이 삭지도 않고 체내에서 배설되었다. 목욕을 마친 후 마른 수건으로 엄마의 사타구니를 닦아낼 때 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 들뜬 음모가 모래알처럼 부서졌다. 그 검은 알갱이들은 엄마의 젖은 몸에 하루살이처럼 덕지덕지 붙었다. 악취는 금세 병실을 지배했고 손에 밴 냄새는 아무리 씻어도 좀처럼 휘발되지 않았다. 불과 며칠 전 일이다.
당직 수련의는 창 밖에 시선을 두고 있던 나에게 서두르는 기색 없이 말했다. 타성에 젖은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허울뿐인 음성이었다.
<시신은 더 이상 병실에 둘 수 없어서 냉동실로 모시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후에 수련의와 다른 직원 두 명이 병실로 들어와서 엄마를 데리고 나갔다. 엄마가 누워있던 자리와 욕실에는 소독분무액이 과할 정도로 뿌려졌다. 무색무취가 죽음의 명암과 지독한 냄새를 뒤덮는 동안 나는 병원 밖에 흡연실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엄마의 책상 서랍 속에 있던 골루아즈였다. 국어 선생님이었던 엄마는 카뮈를 동경했다. 아주 오래전 카뮈의 묘가 있다던 남프랑스의 루르마랭이라는 고원高原 마을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온 엄마의 캐리어에서는 골루아즈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었다. 몇 보루나 되는지 세어보지도 않고 엄마는 그것들을 장롱과 서랍 그리고 사람들 손이 닿지 않을 깊숙한 어느 곳에다 숨겨놓았다. 그리곤 낯선 이국이 그리워질 때마다 아니면 누군가가 그리워질 때마다 그 담배를 몰래 꺼내서 피우곤 했다. 마지막 남은 담배 한 갑이 내 손아귀에 있다는 걸 엄마는 알고 있을까. 푸르스름한 담배연기 사이로 2년간의 투병생활이 물 위에 비친 사물처럼 일렁거렸다.
주치의는 엄마의 병이 뇌종양이라고 말했다. 발병 초기에는 단순 편두통인 줄 알았지만 엄마는 2년 동안 세 번의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고 난 뒤면 병세는 더욱 악화가 되었다. 엄마는 발작적인 두통을 호소하며 푸른색 위액을 쏟아냈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정신을 잃곤 했다. 종양은 암의 계통이며 두개골 안에서 발생한다고 말했다. 입냄새가 심했던 주치의는 종양은 생명 속에서만 발생되는 또 다른 생명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즉, 죽은 조직 안에서 종양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종양의 번식과 팽창은 일종의 생명현상이라며 생명 안에는 생명을 부정하는 신생물이 발생하고 서식하면서 영역을 넓혀나간다라고 말을 이어가며 생명현상의 일부인 이 종양과 환자의 생명을 분리시킬 수는 없으니 치료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주치의는 엄마가 쏟아낸 위액과 비슷한 색깔의 머그잔을 들고 식어버린 커피를 입으로 가져가면서 고생할 각오를 하고 환자의 마음을 준비시키라는 말을 전했다. 의사라는 사람이, 심지어 주치의라는 양반의 말은 오해의 소지가 충분했다. 죽어가는 사람을 자신은 도저히 살려낼 재간이 없으니 당장 죽음을 감행해 달라는 말이었다. 환자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켜달라는 주치의의 발언은 결정권을 환자에게 떠넘기는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상 결정권을 상대방에게 쥐어준다는 것부터가 이미 결정권을 쥐고 있다는 뜻이었다. 냄새나는 입안에서 흘러나온 말을 해독하기 위해 나는 당시에 여러 각도에서 애를 썼다. 종양이 생명 속의 생명이라니. 이 무슨. 결국 죽은 자는 종양이 생기지 않고 산 사람 몸속에만 종양이 생긴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 무시무시한 종양은 뚜렷한 삶의 증거라도 된다는 말인가. 의사의 하나마나한 그 뻔한 소리는 알맹이 없이 텅 비어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텅 빈 공허한 소리에 두려움을 느꼈었다. 공허한 말이 상기시키는 죽음의 예감 속에서 나는 엄마의 명백한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의사가 뇌종양 판정을 내리던 날 나는 침대에 누워 수액을 맞고 있는 엄마의 눈이 아닌 가느다란 팔에 불거져있는 푸른 정맥을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죽음이 가까워진 사람에게도 죽음이라는 단어는 마땅히 숨겨야 할 성질의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기에는 언어로 태어나길 갈망하는 기갈이나 허기가 느껴졌다. 죽음은 가까이 있었지만 얼마나 가까워야 가까운 것인지 그때 나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부름과 이름 사이의 아득한 거리처럼.
<엄마. 뇌종양이래. 엠알아이 사진에 그렇게 나왔대.>
등압선처럼 굴곡진 엄마의 눈매 끄트머리에서 또르르 한 방울의 눈물이 힘겹게 떨어졌다. 창 밖에는 장맛비가 억수로 쏟아져내리던 6월의 오후였다. 엄마는 목이 메었는지 으으흠. 하면서 힘겹게 가래를 끓어올렸다. 그 힘겨운 소리가 길게 꼬리를 끌며 병실 안을 맴돌았다. 창 밖으로 무수히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나 역시 왈칵 눈물이 쏟아질 줄 알았지만 그때 역시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 두 모녀는 꽤나 무미건조했다. 담배연기를 머금은 가을햇살에 눈이 시려올 때쯤 절반정도 태운 담배를 끄고 원무과에서 가서 그동안의 병원비를 결제했다. 병원비는 4천만 원 정도 나왔다. 세 번의 수술과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정밀검사와 고액 처치가 많았다. 이미 죽은 사람의 살아있던 시절 병원비를 내놓으라는 병원 측의 요구가 썩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개인의 죽음이 거대한 의료시스템에 균열을 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 들었다. 통장의 잔고는 이미 충분했다. 오랫동안 운영해 온 개인방송의 후원과 엄마의 연금이 이미 통장 속 숫자들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카드를 꺼내 일시불로 결제했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하얀 종이쪼가리에 정직하게 인쇄된 검은색 글씨가 엄마의 죽음을 갈무리했다. 원무과 직원이 안내해 준 병원지하에 위치한 영안실로 걸음을 옮길 때 내 SNS 계정에 지인들의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R.I.P , 언니 힘내세요. 좋은 곳 가시길 빌겠습니다. 등등 수많은 위로의 글들이 내 피드를 도배했다. 나는 사생활을 보호받을 수 없는 현 시류에 탄식하면서 시대착오적 금기의 희생물이 된 소시민이 된 것 마냥 휴대폰을 무음모드로 바꾸고 잰걸음으로 지하로 내려갔다. 영안실 옆이 냉동실이라서 그런지 지하는 썰렁했다. 무표정한 영안실 직원은 사망진단서를 첨부해서 사망신고를 제출하는 일과 화장장 순번을 받아주는 일을 도와주었고 빈소를 안내해 주었다. 병원 지하에 자리 잡은 빈소는 사람의 온기를 압지처럼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미리 준비해 둔 영정사진을 영안실 직원이 들고 왔다. 사진 속 엄마는 하얀 이를 모두 드러내며 만개한 꽃처럼 웃고 있었다. 빈소의 바닥이 데워지기도 전에 조문객을 맞이할 준비를 마치고 나는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치마를 입어본지가 언젠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걸음을 뗄 때마다 치마 속으로 음흉한 남자의 얼굴처럼 찬바람이 들락거렸다. 어느새 영안실직원과 장례지도사는 빈소에 들어와 물품리스트를 건네주었다. 황량하기 짝이 없는 서류에는 빈소에 차려진 음식과 음료 그리고 발인 전까지 상주에게 필요한 물품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실제로 비치된 개수가 또박또박 쓰여 있었다. 그 둘은 다소 사무적인 어조로 확인 후에 사무실에 오셔서 결제를 하면 된다고 말을 하고는 서둘러 빈소를 빠져나갔다. 나는 엄마의 영정사진에 시선을 둔 채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가방에서 손때 묻은 졸업앨범을 꺼내서 펼쳐보았다. 하얗게 질린 벽에 덩그러니 걸려있는 낡은 시계의 초침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퇴적된 기억 속 해독되지 않을 이름들을 무심히 쳐다보았다. 그러다 어느 페이지에 새겨진 내 이름을 보았다. 이름 위에 내 사진은 없었다. 그것은 그 시절의 내가 도려냈기 때문이었다. 푸르스름한 연기가 네모난 좁은 공간을 메워갔고 코 끝을 스치는 향 냄새에서 쓸쓸함을 담은 분노와 환멸을 품은 고독 그리고 선명한 공허함이 느껴졌다. 죽은 자의 발치에서 산 자의 상처 따위는 무용하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웃고 있는 엄마가 다른 세계에서도 조금은 힘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이미 죽어버린 엄마도 삶이 고통이었던 어느 순간에 오랫동안 머물렀음을 바랐다. 상처 입은 사람에게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시간은 고여있는 것. 바람이 불면 잠시 출렁이며 가느다란 물길정도 만들다가 결국 한치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조금도 범람하지 못한 채 한 곳에서 아우성만 치는.
나는 차가운 바닥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덕에 눈은 슴벅거렸다. 형광등 불빛이 감은 눈 사이로 스며들었다. 은빛모래가 눈 안에 들어간 처럼 이물감이 느껴졌다. 은빛모래는 이내 파도에 잘게 부서져 어딘가로 흩어져버렸고 파도가 쓸고 간 자리에 엄마의 상여가 고스란히 놓여있었다. 건너편 바다는 내 남은 생애에 결코 갈 수 없는 곳처럼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파도가 손을 뻗어 엄마의 상여를 푸른 바다로 끌고 가 버렸다. 엄마의 상여는 그렇게 푸른 바다에 용해되어 버린 은빛모래처럼 내 눈앞에서 서서히 멀어져 갔다. 엄마의 상여가 보이지 않을 때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공복감이 심하게 몰려왔다. 밥을 먹어야 했다. 아주 오래전에 엄마 때문에 친구를 잃게 되었을 때 한동안 밥을 먹지 않았던 나에게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삶에서 중요한 건 대체로 한 글자로 되어있어. 눈, 코, 입, 피, 뇌, 몫, 숨, 물, 불, 밥. 밥도 한 글자니까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거야. 자, 이제 밥 먹자.>
나는 종이 그릇에 육개장을 푸고 밥을 말아서 우걱우걱 씹었다.
2.
덕영의 검은색 베일에 고춧가루가 튄 것은 마주 앉은 태랑의 웃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자아이의 그곳처럼 잔주름이 잡히지 않은 덕영의 입술은 보톡스와 필러를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스로 통제되길 꺼려하는 것처럼 보였다. 술안주로 한 숟가락 떠먹은 육개장 국물이 그 두툼한 입술 사이로 흘러내리는 줄도 모르고 덕영은 휴대폰으로 송출되는 라이브 방송으로 시청자와 소통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태랑은 맞은편에서 웃음을 터트렸다. 태랑은 종이컵에 소주를 한 컵 가득 부어서 절반정도 마시고는 티슈를 뽑아서 빨간 양념이 묻어있는 덕영의 베일을 닦아주었다. 태랑은 양념이 묻은 휴지를 다시 반으로 접어 자신의 술잔에 송골송골 맺혀있는 물방울들을 매끄럽게 닦아내었다. 이태원의 벨벳바나나라는 트랜스젠더 바에서 일하는 태랑과 덕영은 오래된 직업병을 가진 사람답게 능수능란하게 테이블 정리를 했다. 태랑이 술잔을 닦아내고 술을 따르는 동안 덕영은 쉴 새 없이 시청자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마취가 덜 풀린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삐뚤한 단어들을 교정하기 위해 덕영은 부단히 애를 썼다.
<네, 저 아는 언니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조문 왔어요. 네, 오늘 화장 잘 먹었다고요? 어머, 고마워요. 베일 때문에 얼굴이 잘 안 보인다고요? 자, 어때요 이렇게 하면 잘 보이죠? 가슴 수술 어디서 했냐고요? 당연히 강남이죠. 가슴 몇 컵이냐고요? 75 D이에요. 이쁘게 잘됐죠? 밑에는 수술했냐고요? 아, 이 오빠 내 방송 처음 보나 봐. 저 쉬멜이에요.(She Male) 뭐? 쉬 마렵냐고? 이 개새끼가 진짜. 그래! 나 서서 오줌 싼다. 새끼들아. 네네. 실컷 욕하세요. 난 미움받아도 전혀 상관없어요.>
건너편에 앉은 태랑의 입에서 머금고 있던 소주가 바닥에 뿌려질 뻔했다. 태랑은 가까스로 소주를 삼키고 킥킥거리며 숨죽여 웃었다. 방명록을 정리하고 있는 내 귓가에 태랑의 목소리가 서성거렸다.
<언니, 쟤는 진짜 난년이야. 트랜스 젠더들이 가진 약점이 없어. 원래 성별을 바꾸면 인정받고 싶고 호감을 얻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아주 큰 약점이 되거든. 근데 쟤는 그게 없어. 봐봐. 자기 방송 봐주는 시청자들한테 쌍욕 날리는 애는 쟤 밖에 없을 거야. 아주 대성할 년이야.>
덕영은 줄기차게 이어지는 채팅에 진저리가 났는지 급하게 방종을 했다. 방송을 끄고 모자와 베일을 벗은 덕영의 얼굴은 미세하게 그늘이 져있었다. 덕영은 시술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취도 채 풀리지 않은 뻣뻣한 입술에 립글로스를 흘러내릴 정도로 두껍게 발랐다. 입술은 함부로 드러낸 성기처럼 부풀고 축축하게 젖어 보였다. 우울한 덕영의 낯빛을 읽은 태랑은 오도카니 앉아있는 덕영의 새 종이컵에 소주를 가득 부어주었다. 일찌감치 조문을 온 사람들은 모두 빠져나간 뒤라 빈소는 썰렁했다. 방명록 정리를 마치자 새벽 두 시가 넘어가 있었다. 조의금을 가방에 넣자마자 호르몬 주사를 한동안 맞지 않아 걸걸해진 태랑의 목소리가 나를 향했다.
<미강 언니. 다 했으면 한 잔 하자.>
<그래. 그러자.>
미지근한 소주가 식도를 지나자 금세 얼굴이 불콰해졌다.
<워워, 상주는 적당히 마셔.>
태랑의 말에 나는 손사래를 치고 덕영에게 말했다.
<왜 그렇게 뚱하게 있어? 가브리엘 샤넬처럼 근사하게 입고 와서는.>
<언니. 얘 아까 쉬 마렵냐는 채팅에 긁혔나 봐. 얘. 상대 말에 긁힌 곳이 네 결핍인 거야. 그래서 사실은 너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는 거라고. 너 자신을 미워하는 게 얼마나 의미 없고 소모적인 일인데. 한잔 먹고 빨리 털어버려. 밑에 수술 까짓 거 빨리 하면 되지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
<너는 밑에도 수술한 거야?>
<언니. 나는 포경수술까지 다했어. 수술이란 수술은 다한 년이야.>
태랑의 입에서 포경수술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오자마자 나와 덕영은 뒤로 쓰러지면서 웃었다. 빈소는 신의 계시를 거부한 두 사내와 한 여자의 익살맞은 웃음소리로 뒤범벅되었다. 오랜 친구나 다름없는 그이들의 수다를 듣고 있으니 몸에서 비늘처럼 피로가 툭툭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근데, 언니 어머니 돌아가셨는데 안 울었어? 원래 딸들은 거의 실신할 때까지 울던데. 언니도 참 독하다 독해.>
<얘. 여자에게 눈물이 없다는 건 레즈비언의 징조야. 왜냐하면 여자의 눈물은 원래 남자를 위한 거거든. 그러니까 언니의 누선에는 굳은살이 단단하게 박혔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여자의 눈물이란 건 화액의 전갈 같은 거네. 남자를 위해서만 흘리는 눈물은 재앙과 다름없잖아.>
<그런 셈이지. 우리 같은 족속들에게 신이 내려준 일종의 형벌이랄까.>
<우리? 언니는 우리랑 다르잖아.>
<다르지. 우리는 아니마(Anima), 언니는 아니무스(Animus)>
<뭐야. 인서울 4년제 대학 나와서 가방끈 길다고 유세 떠는 거야?>
<어. 맞아. 킬킬킬. 그러니까 머리에 적당한 것들 좀 넣고 다녀. 매일 몸뚱아리에 보형물 넣을 생각 그만하고. 그러니까 우리 같은 애들이 인정 못 받는 거야.>
<쳇. 머리에 든 거 많아서 좋겠수. 남이사 얼굴에 필러를 맞든 가슴에 실리콘을 넣든 무슨 상관이래. 언니야 말로 양치질 좀 해. 언니 술 먹을 때 건더기 없이 국물만 먹는 거 그거 잘 때 이 닦기 귀찮아서 그런 거 내가 다 알아. 손님들이 언니한테 입냄새 엄청난다고 나한테 그러더라.>
<누가 그래. 어떤 상놈의 새끼가 그딴 말을 지껄여.>
<큭큭. 언니 왜 그래? 긁혔어? 상대의 말에 긁힌 곳이 언니의 진짜 결핍이야. 그러니까 자신에게 화 좀 좀 내지 마. 킬킬킬.>
<어쭈. 이 년이. 따라 할 줄만 알지 어휴. 속 터져.>
둘의 대화를 들을 동안 나는 말없이 소주만 마셨다. 이미 테이블 위엔 대 여섯 병의 소주가 뒹굴고 있었다.
<이 언니는 왜 이렇게 술을 좋아하는 거야. 상주가 취해서 널브러져 있으면 쓰나.>
<원래 인생에서 중요한 건 모두 한 글자로 되어있잖아. 눈, 코, 입, 돈, 몫, 밥, 술, 피. 등등.>
<어이쿠, 합리화 쩌시네.>
<얘. 합리화는 인간의 생존 본능이야. 본능을 거스르지 마.>
<언니. 우리들은 이미 신의 계시도 거스른 년들이야. 그까짓 본능 거스른다고 죽기야 하겠어?>
<놔둬봐. 오랜만에 미강언니 취한 모습 좀 보게. 언니 술 취하면 귀엽잖아.>
<미강언니 술 취하면 귀엽긴 하지. 언니 근데 그거 다 가면이야. 원래 사람은 자기 모습 그대로 말할 때 자기답지 않다구. 가면을 써야 진실을 말하는 게 인간이라구. 그러니까 평소에 테토남 같은 터프함은 언니가 만들어 낸 가짜의 모습이고, 술 취해서 가면을 쓴 이 여성스러운 모습이 언니의 진짜 모습이다 이거야.>
<그러니까 네 말은 술이 인간을 망친다 이 말이야?>
<아니, 술이 인간을 망치는 게 아니라 원래 망가져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술이 가르쳐줄 뿐이지. 킬킬킬.>
<우린 모두 신의 형벌을 받아 망가진 인간들이니까. 킬킬킬.>
사람들의 입김과 발바닥의 온도로 불쾌할 만큼 데워진 빈소의 바닥에 널브러진 우리 셋은 한 동안 천장의 희뿌연 할로겐 조명만 쳐다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덕영이 일어나서는 엄마의 영정사진 옆에 놓여있던 내 졸업앨범을 가져왔다.
<아니 근데 웬 졸업앨범을 거기다 놨어.>
<언니 중학교 때네. 언니 꽃다웠던 시절 얼굴 좀 볼까.>
덕영과 태랑은 자리에 앉아 낡은 졸업앨범을 뒤적였다. 낡은 종이가 스르륵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세월의 허물이 서서히 벗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라? 권미강. 이름은 있는데 사진이 없네. 누가 도려냈어. 이거 언니가 도려낸 거야?>
나는 눈을 감고 한동안 되뇌었던 어느 시인의 시를 읊었다.
<*가끔 꿈속에서 너를 보았을 땐 꿈이라도 꿈인 줄 몰랐는데. 이제 너를 보면 아, 꿈이로구나. 알아챈다.>
<뭐야. 언니. 시인이 꿈이야? 왜 이래. 어머니 상 중에 청승맞게.>
뾰족한 바늘로 한 땀 한 땀 새겨진 문신처럼. 기억에 진하게 새겨진 문장은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도리어 내 머릿속 깊숙한 곳에 교착되었다. 기억이란 이상한 습성을 가져서 잊어야 할 것은 끈질기게 붙들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매몰차게 걷어찬다. 잠에 들기 전 푸른 어둠 속에서 아스라이 배갯잎 소리가 들릴 때면 여전히 서글퍼지는 까닭이다.
사타구니 사이로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에서 생리대를 꺼내 화장실로 향했다.
<언니. 어디가?>
<신이 한 달에 한 번씩 여자에게만 주는 선물 받으러.>
<언니. 그거 선물이 아니라 여자에게만 주는 형벌이야.>
<우리 담배 피우러 나갈 거야. 언니도 나와. 언니 가방에서 담배 챙겨간다.>
화장실에서 나온 나는 흡연실로 바로 연결된 계단을 올라섰다. 늦가을의 새벽하늘은 암청색 심해처럼 깊고 아득해 보였다. 제 살을 절반쯤 파먹은 창백한 달 아래 검은색 옷을 입은 태랑과 덕영이 담배를 물고 서있었다. 푸르스름한 담배연기에 휩싸인 그 둘은 마치 베케트의 부조리극에 나오는 불가사의한 인물들처럼 보였다. 태랑은 시인지 노랫말인지 구분할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렸다.
<*나는 천당 가기 싫어. 천당은 너무 밝대. 빛밖에 없대. 밤이 없대. 그러면 달도 없을 거고. 달밤의 키스도 없을 거고. 달밤의 섹스도 없겠지. 나는 천당 가기 싫어.>
<언니는 나중에 죽어서 꼭 지옥에 갔으면 좋겠수. 큭큭.>
<키스와 섹스가 없는 천국이라면 차라리 뜨거운 지옥이 낫지 않겠니. 어차피 우리는 지옥행이 확정난 인간들이지만.>
<언니. 이 담배 처음 보는 데 맛있네. 국산 아니지?>
<골루아즈. 이 년아. 알베르 카뮈가 피웠다던 골루아즈. 프랑스 담배잖아. 담배의 여신이지.>
<담배만 맛있으면 됐지 카뮈란 작자를 꼭 알아야 돼. 참나.>
<언니 덕분에 지식하나라도 얻었으면 고맙다고 할 것이지. 이 년은 꼭 사족을 붙인다니까.>
<어이쿠. 고맙수. 텅텅 빈 내 머가리에 뭐라도 하나 넣어줘서.>
우리는 카뮈처럼 외투의 깃을 턱 끝까지 올려 세우고 어깨를 웅크린 채로 담배를 피웠다. 암청색의 바다 같은 하늘은 푸르스름한 담배연기로 포말을 만들어 냈다. 나는 언젠가 담배를 피웠을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 엄마. 엄마가 좋아하던 천국엔 어둠이 없대. 그래서 달빛의 키스도 어둠 속의 포옹도 농밀한 암흑 속의 섹스도 없대. 난 천국이 싫어.
담배를 피우고 다시 빈소로 돌아가는 동안 내 입가에서는 이미 생이 끝나버린 자를 향한 보잘것없는 성문聲問들이 도열했다.
[이어서]
* 황인숙 <꿈> 인용
* 마광수 <나는 천당 가기 싫어>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