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4

by 김로윤

7.

팻말 같은 건 없었다. 녹슨 철문과 낮게 이어진 담장 안쪽으로 허접한 컨테이너 건물들이 보였다. 소사동 산동네에 위치한 마리아의 집은 제법 넓은 마당이 있지만 억눌린 듯 답답해 보였다. 요양원 뒤쪽으로 잡목으로 빽빽하게 뒤엉킨 숲이 육중하게 둘러쳐져 있었다. 굳이 감추려고 하지도 않고 완전히 드러내지도 않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스스로 위협을 발산하며 고립되는 공간처럼 보였다. 자신을 도와달라는 순화의 연락에 내 발걸음이 빨라진 것은 단순히 그녀의 부탁 때문만은 아니었다. 은애가 위험하다고, 그곳에서 은애를 탈출시켜야 은애가 살 수 있을 거라는 순화의 말은 나를 더욱 다급하게 만들었다.

<그 여자 조선족 아니야? 그쪽애들 얼마나 살벌한데 괜히 갔다가 납치당해서 장기 다 털리는 거 아니야? 아니면 바다건너로 팔려나갈 수도 있어. 갑자기 연락해서 무슨 그런 말을 해 그 여자는.>

덕영의 말꼬리를 물며 태랑이 나에게 물었다.

<언니. 그 여자 얼마큼 믿어? 조심해. 소금이랑 설탕은 색깔이 같아.>

<방송 키면 괜찮아. 무슨 일 생기면 구독자들이 대신 신고해 줄 테니까.>

<어머. 좋은 생각이네. 거기가 진짜 악당들 소굴이라면 방송도 대박 날 테고. 태랑언니 우리 같이 하자 이거 콘텐츠 좋은데.>

<친구를 데리고 나와야 돼. 그곳에서.>

<오케이. 방송 키고 라이브로 보여주자고. 몹쓸 것들이 거기 숨어서 무슨 작당모의를 하는지 모두 폭로해 버리는 거야.>

보안요원들의 경계가 느슨해지는 시간이 그때쯤이라는 순화의 말에 우리는 새벽에 마리아의 집을 찾아갔다. 순화가 말한 대로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막상 도착해 보니 그곳은 일부러 버려진 곳처럼 보였다. 창백한 달빛을 머금은 두꺼운 콘크리트 벽이 차가운 숨결을 내뿜고 있었고 우리는 뭔지 모를 위압감을 느꼈다.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은 담장의 끝에 위치하고 있었다. 덕영과 태랑은 방송을 킨 휴대전화를 들고 내 뒤를 조심히 따라왔다. 순화가 알려준 대로 나는 계단을 내려가서 고양이 울음소리를 냈다. 베니어로 만든 문이 틈을 벌렸다. 그 사이로 순화가 얼굴을 내밀었다. 검지를 입술 사이로 가져간 제스처를 보고 우리는 숨을 죽인 채 몸을 웅크렸다. 좁고 기다란 복도 천장에는 붉은빛을 발하는 전구가 달려있어서 그곳은 음습하고 칙칙한 매음굴처럼 보였다. 모든 병균의 온상지 같은 복도의 양 옆으로는 좁은 고시원에 달려있을 법한 여러 개의 나무문이 닫혀있었다. 복도 끝에 다다랐을 때 순화는 왼쪽 문을 열었다. 그 좁은 방안에 은애가 정신을 잃고 누워있었다. 얇은 파자마차림의 은애의 얼굴은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다. 곧 순화가 입을 열었다.

<유산했음다. 어찌나 피를 흘렸는지 모름다. 원장은 병원에 절대 아이 보낼 검다.>

덕영과 태랑이 가까이 다가와서 휴대전화를 비추었다. 채팅창에서는 원장을 향한 온갖 야유와 욕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된 거예요?>

<원장 그 쌔스개 같은 새끼가 말을 아이 듣는다고 발길질을 하지 않았겠슴까. 간나새끼 어찌나 잘 휘두르는지.>

<보안 요원 있다면서요? 왜 아무도 말리지 않았어요?>

<그 보안요원이라는 거이 원장 똘마니들임다. 포주였는지 깡패였는지 나도 여기서 뭐가 어이 돌아가는지 알 길이 없슴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밥 해주고 이렇게 아픈 아들 생기면 간호해 주는 거 뿐임다. 전번에 만났을 때 있잖슴까. 그때 미강 씨랑 은애 양이랑 아는 사이라고 해서 내 얼른 연락한검다. 지금 병원 아이 데려가면 죽을지도 모름다.>

<아이 아빠가 있을 거 아녜요?>

<그 원장 아새끼임다. 나도 어이 된 사정인지 도통 몰르겠슴다.>

나는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은애에게 입힌 뒤에 그녀를 등에 업고 방에서 나왔다. 땀으로 흠뻑 젖은 은애의 몸에서 시큼한 냄새가 풍겨졌다. 졸업 사진을 쥐어주었던 그날 우리의 머리 위에서 흩날렸던 눈송이들처럼 은애의 몸은 한없이 가벼웠다. 붉고 좁은 복도를 지나 계단 입구에 다다랐을 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너네 뭐야. 누구야.>

건장한 사내 여럿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새끼들 빨리 잡아.>

건장한 사내들이 잽싸게 달려올 만큼 복도는 넓지 않았다. 우리에게 접근할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있을 것 같았다. 태랑이 내 뒤로 넘어가며 말했다. 뒤를 돌아봤을 땐 태랑이 내 앞을 가로막고 서있었다.

<언니. 빨리 그 언니 데리고 병원에 가. 여긴 우리가 알아서 할게. 방송으로 다 폭로하는 거야. 여러분들. 여기 진짜 악마새끼들이 살고 있어요. 우리한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경찰에 신고해 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계단을 올라서기 시작했다. 등뒤에서 덕영의 음성이 들려왔다.

<언니. 그 말 진짜 맞지? 나한테도 진짜 별조각이 들어가 있는 거 맞지? 꺄악. 이 새끼들아 오지 마. 오지 마.>

그들의 음성을 뒤로한 채 나는 계단을 올라가 그곳을 빠져나왔다. 동이 트는 듯 저 멀리서 주홍빛 광휘가 밀려오고 있었다. 찬바람에 정신이 들었는지 은애를 엎고 있는 등에서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미강이니? 어떻게 왔니. 근데 우리 어디가?>

<말하지 마. 병원부터 갈 거야. 그러니까 얌전하게 있어.>

<아니야. 그전에 가야 할 때가 있어. 너에게 줘야 될 물건이 그곳에 있어. 거기로 가자. 지금 아니면 평생 못 갈지도 몰라.>

<너 지금 병원에 가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어.>

<죽는 거는 안 두려워. 그 물건을 영영 너에게 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더 두려워. 우리가 이렇게 가까이 붙어있는 거 진짜 오랜만이다. 근데 그거 아니? 난 떠났을 때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어.>

나에게는 미처 닿지 못했던 빛바랜 성토. 그것은 그녀가 내 몸에 들려준 이야기. 그녀의 몸에서 내 몸으로 건너온 이야기. 허벅지에 흘러내린 피의 이야기. 심장이 뿜어낸 얼음의 이야기. 당신이 그녀의 몸에 새긴, 나의 이야기. 이제는 모조리 소멸되어 버린 누군가의 오만한 혀가 함부로 내뱉은 우리의 이야기.

<택시를 타면 금방 갈 수 있어. 이곳에서 멀지 않아. 그다음에 병원을 가자.>

멀지 않은 곳이라는 은애의 말에 나는 이차선 도로 중앙으로 내려가 다가오는 차들에게 모두 손짓을 했다. 앱을 켜서 택시를 부를 수 있을 만 곳이 못되었다. 산동네 끝자락에 위치한 인적이 드문 좁은 도로였고 겨울철 빙판이 잘 형성되는 곳이라 택시기사들이 꺼려하는 도로였다. 이곳만 무사히 내려가면 택시를 호출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마을버스의 정류장을 발견했다. 새벽 5시가 지났으니 첫차가 다닐 터였다. 우리가 정류장으로 몸을 옮겼을 때 언덕 아래에서 노란색 마을버스가 우릴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버스를 타고 언덕을 내려가서 택시를 타자. 그게 가장 빠를 거야.>

은애는 오한이 몸을 휘감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며 겨우 고개만 끄덕였다. 은애의 입술은 점점 메말라가며 보랏빛으로 물들어갔다. 낯빛은 푸르스름할 정도 창백했고 눈은 반쯤 감긴 상태로 초점이 흐려지고 있었다.

버스가 우리 앞에 정차하자 나는 은애를 등에 업고 버스에 올라탔다. 승객들은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 뿐이었다. 그들은 우리의 행색을 보고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버스 앞문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올라설 때 버스 안에 있던 승객들이 우리의 승차를 도와주었다.

<새댁이 아픈가 보네. 얼굴 좀 봐. 빨리 병원 데리고 가야겠네.>

버스기사는 아무 말 없이 우리가 자리에 착석하는 걸 확인한 후에 천천히 운행을 시작했다. 경사가 높은 언덕을 올라가느라 버스는 굉음을 내며 심하게 요동을 쳤다. 이 언덕만 넘어서 내리막길로 10분 정도 가면 큰 도로가 나타날 것이었다. 은애는 내 어깨를 툭치며 핸드폰을 꺼내라는 시늉을 했다.

<이거 방송으로 찍어줘. 우리가 지금 함께하는 여정을 말이야.>

방송을 켜야만 했다. 아직 마리아의 집에 남아있을 덕영과 태랑 그리고 순화의 신변을 위해서라도 방송을 킬 수밖에 없었다. 휴대폰으로 라이브 방송을 시작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채팅창으로 많은 양의 슈퍼챗이 쏟아졌다. 덕영과 태랑의 안부를 묻자 사람들은 갑자기 방송이 꺼져버려서 영문을 알 수 없게 되었다는 채팅이 올라왔다. 구독자 중 한 명이 경찰에 신고를 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했다.

버스가 언덕을 넘어서 내리막길에 접어든 순간 버스 안에서는 심한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은애는 정신을 잃었는지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나는 은애의 발밑을 쳐다보았다. 은애의 바지 밑단에서 붉은색의 분비물 덩어리 같은 것들이 떨어져 내렸다.

<어휴. 이거 오로를 쏟아내나 보네. 새댁. 정신 차려봐요.>

<누가 119에 신고 좀 해줘 봐요. 이러다 사람 잡겠네.>

<거, 자리에서 일어나지 마시고 다 앉아계세요. 위험하니까.>

버스기사의 차분한 음성에 몇 안 되는 승객들은 자리에 앉아 우리를 지켜보았다. 은애는 통증이 심한지 식은땀을 흘리며 신음했다.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10여분 동안 은애는 여러 번 혼절했다. 내리막이 끝났을 때 은애의 다리에서는 투명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귓가에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채팅창에 여러 명이 조롱하며 버스에서 오줌을 싼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만해. 이 씨발놈들아.>

나는 카메라를 쳐다보며 아래입술을 깨물고 나지막이 말했다. 은애는 또 의식을 잃고 고개를 떨구었다.

더 이상은 무리였다. 엠뷸런스를 불러야만 했다. 버스가 정차하자 승객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은애를 부축했고 조심스럽게 하차를 도와주었다. 버스기사는 아무 말 없이 긴 마대걸레로 우리가 앉았던 자리를 닦아내고 있었다. 다행히 엠뷸런스는 버스가 정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 앰뷸런스를 타고 응급실을 향하는 동안에도 은애의 하혈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몇 번이나 의식을 잃었고 병원을 향해 가는 거리는 도무지 좁혀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송침대에 누워있는 은애의 손톱이 보랏빛으로 익어가는 것을 망연히 바라볼 뿐이었다. 조개껍질처럼 반들거리던 그녀의 손톱에 집요하게 들러붙는 죽음의 색을 문질러 지워내려 애썼지만 좀처럼 지워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죽음의 그림자는 가장자리에서부터 전이되기 시작했다.


8.

뉴스에서는 경기도 어느 지역의 복지센터 원장인 이 모 씨가 장애인들을 상대로 한 성매매 알선 및 상습적인 성폭력으로 입건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해당 관계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문제의 복지센터 지하실에서 여장을 한 남성이 시신으로 발견되어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버스는 요철을 넘을 때마다 심하게 요동쳤다. 나는 유골함을 꼭 끌어안은 채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은애를 처음 떠나보낸 날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는 지금도 하늘에서는 눈이 내렸다. 유골함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가벼운 무게로, 따듯한 온도를 유지한 채 내 손에 들려있었다. 소각로 직원은 나에게 같이 태울 물건이 없냐고 물었다. 나는 가방에서 낡은 졸업앨범을 꺼내 좁은 창 틈새로 넘겨주었다. 졸업앨범에서 도려내었던 내 사진과 구겨진 편지 한 통을 끼워둔 채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 기름지고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는 직원은 손에 들린 졸업앨범과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고는 곧 붉은색 레버를 잡아당겼다. 둔탁한 기계음이 울리며 천장 아래에 달린 검은색 모니터에 은애의 이름이 무심하게 떠올랐다.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든 건 사망선고를 말하는 의료진의 메마른 목소리가 아니라 누군가 불쑥 내민 종이 쪼가리에서 낡은 향수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응급실 직원은 은애의 사망선고를 들은 뒤 허망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나에게 다가와 때 묻은 사진을 건네주었다.

<고인의 주머니 속에서 나온 거예요. 뒤에 무어라 적혀있네요.>

색이 바랜, 닳고 닳아 더 이상 누구의 얼굴인지도 식별하기 힘든 사진이었다. 사진 속 인물이 나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사진을 건네받는 순간 내 손에 잡히기 싫어하는 것처럼 사진은 바닥으로 미끄러지듯 떨어졌다. 뒤집힌 사진에 은애의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이제 엄마를 용서해 줘. 너 자신도.>

너무 무거운 그 사진은 한동안 차가운 바닥을 서성거렸다. 나는 그 무거워진 사진을 줍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 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흘러내린 눈물이 사진을 모두 적실 때까지. 그제야 사진은 좀 가벼워진 것 같았다. 세월의 흔적과 소리 없는 눈물로 여백을 채워버린 사진은 넝마가 되어 내 손에 쥐어졌다.

태랑은 머리를 심하게 다쳐 일주일 만에 의식을 찾았다. 눈을 뜨자마자 덕영을 찾는 태랑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려왔다. 나는 그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어둠으로 물든 창문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덕영의 가족들은 덕영의 빈소를 찾지 않았다. 이태원 벨벳 바나나에서 같이 일했던 트랜스젠더 동료 두 세명 정도가 조문을 왔을 뿐, 방명록에는 공백뿐이었다. 덕영의 발인날 태랑은 덕영이 썼던 검은색 베일을 쓰고 소각로의 모니터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밖에서는 여전히 소리 없이 눈이 쌓여갔다.

<그 년. 지금쯤 별이 되었겠지? 썩을 년. 좋은 데 갈 거면 나도 좀 같이 데려가지. 지 혼자만 홀랑 가버리고. 예끼 이년아. 지옥행이 확정난 인간들이라지만, 너무 밝아서 천당이 싫댔지만. 이왕이면 저승에선 양지바른 곳에서 걸어. 거기선 언니들 말 좀 잘 듣고.>

태랑과 나는 마지막 남은 골루아즈 한 개비를 나누어서 피웠다. 푸르스름한 연기가 잿빛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송이 사이사이를 헤집고 허공으로 올라갔다. 고개를 모로 꺾고 허공만 응시하던 태랑의 입에서는 시인지 노랫말인지 모를 문장들이 흘러나왔다.

<*생각한다. 육십 년대. 더 후의 마이 제너레이션.

그때에도 훅 불면

눈이 돌아가는 무엇이 있었을까?

견딜 만한 고통이 나의 온몸을 휘감아도

태평성대야. 여긴 모두 잘 지내.

우린 모두 화평하다구.

견딜 만하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뭐.>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센 눈발은 여전히 잿빛 하늘로 빨려 올라가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벌어졌던 그동안의 일들을 모조리 앗아가듯이.

부천역은 그야말로 썰렁해졌다. 온갖 소동과 갖은 소란으로 몸살을 앓던 부천역이었지만 시민들과 상인들의 잦은 토로가 결국 공권력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정부와 시청의 개입은 부천역에서 종횡무진하던 여러 BJ 들을 말끔하게 몰아냈다. 개인방송 금지, 깨끗한 부천역이라는 천편일률적인 문구가 인쇄된 대형 현수막들이 역사 곳곳에 걸려있었다. 순화가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부천역을 찾았을 때 살갗을 스치던 바람은 제법 온화했다.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는 그녀의 하얀 얼굴이 입고 있는 붉은색 스웨터 덕분에 녹지 않은 눈 속에서 핀 동백꽃처럼 보였다.

<어째. 이제 옴까.>

순화의 낯선 사투리가 어쩐지 정겹게 느껴질 따름이다.

<다음 달에 옌지로 돌아감다. 정리해야 될 게 많아서리. 지금 아니면 아이 볼 거 같아서 말임다.>

<한국에서 돈도 많이 벌어 돌아가네요. 금의환향이 따로 없겠어. 옆에 남자 하나만 딱 있으면 금상첨화인데.>

<모든 게 완벽할 순 없지 않겠어요.>

순화가 더듬더듬 태랑의 표준어를 따라 하며 말했다. 나와 태랑은 그런 순화가 너무 귀여워 익살맞게 웃었다.

완연한 봄이 아직 오지 않은 터라 우린 근처 카페를 찾아 자리를 잡았다. 카페에서는 부천역 앞에 누워있는 너른 들판과도 같은 초록빛 잔디밭이 보였다. 군데군데 녹지 않은 눈이 쌓여 있지만 선명한 초록빛은 충분히 생기 있어 보였다. 우리 셋은 그동안에 근황을 얘기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터놓고 나누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순화는 말없이 한동안 창밖을 내다보았다. 나는 순화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좇았다. 잔디밭 색깔과 대조되는 하얗고 작은 무엇이 어룽 어룽거렸다. 자세히 보니 흰나비였다. 그것이 흰나비라는 것을 알아채자 순화의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졌다. 태랑의 음성에 놀란 기색이 묻어났다.

<어머. 저거 흰나비네. 신기하다. 아직 날씨가 추운데 벌써 나비가 돌아다니네.>

<떠나기 전 흰나비를 보았으니 이곳에선 여한이 없겠슴다.>

<흰나비가 왜?>

<고향에서는 봄이 오기 전 흰나비를 보면 그 해에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함다. 그래서 처녀들은 나들이만 가면 온통 흰나비를 찾으러 다님다. 근데 내가 찾지 않았어도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흰나비가 찾아왔으니 어째 좋지 않을 수가 있겠슴까.>

<어머. 그렇네 우리가 찾지 않았잖아. 쟤가 우리를 찾아온 거지. 하하하.>

<나랑 같이 옌지에 가지 않겠슴까. 마음 맞는 셋이면 여기보다는 더 행복할 거 같슴다.>

자신의 고향에 같이 가자는 순화의 말이 귓가에 그윽하게 들려온다. 나는 그녀의 말에 답하지 않고 오랫동안 흰나비를 지켜본다. 몽상하며 유영하는 그 작은 날갯짓을. 작은 날개가 그려 넣는. 영원히 소멸되지 않을 것 같은 아득한 궤적을.


[끝]


*컴퓨터 통신 하이텔 내의 문학 소그룹 '쉬파흐'(go sg85)에 올려진 박세라 님(ID : SARAH008)의 시 MY GENERATION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