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늘 밤에 걷는다

산책에 관하여

by 보림월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공기는 날 가슴뛰게 만든다.

고요한 공기가 머금고 있는 설레임을 향유하고 싶은 욕심은

어느새 나를 현관문 앞으로 다가서게 만든다.

운동화 끈을 꽉 매고 밖을 나서면,

서늘한 기운이 나를 반긴다.

드문드문 켜져 있는 가로등사이로 첫걸음을 뗀다.

헤드폰을 쓰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비로소 새벽의 주인공이 된다.


한걸음 두걸음 걷다보면 내 머리속에 소요들은 잠잠해지기 시작하고

떠들썩했던 마음속에 불한당들은 고요한 새벽공기 앞에서 자취를 감춘다.

나는 이 평온함이 좋다.낮에는 가져볼 수 없는 고요함.

내가 가진 행복들 중에서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값싼 행복이다.

나에게 있어 낮이 주는 활력은 새벽의 여유보다 생경하다.

생동감이란 화려한 움직임이 아니라 생명이 느껴지는 연약한 움직임에서 보여진다.

고요함에 묻혀 화려함을 찾아볼 수 없는 새벽을 좋아하는 이유다.


중간쯤 걸을때면 아직도 하루를 끝내지 못한 이들이 보인다.

술에 취해 걷는 사람,나처럼 산책을 하는 사람,점포의 문을 닫는 사람,택시를 잡는 사람,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하루를 보내는 시간,하루를 정리하는 시간

모두 바쁘게 사는 시간들이다.언제쯤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커피를 마시는 10분,점심밥을 먹는 1시간,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순간들,밤에 하는 산책,

삶이라는 건 아마 잠깐씩만 고개를 드는 여유 때문에 사는걸지도 모르겠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새벽이 가져다 준 여유는 나를 평온하게 만든다.

그 안정감속에서 해야할 일들을 갈무리 한다.

머리속의 소요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어느 순간 사라졌다.

해결책이 요원한 문제들은 가끔씩 고요한 새벽 공기에 묻혀버린다.

그래서 오늘도 난 밤에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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