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결론부터 말하자면 술은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싸움에서 졌다느니 그런 유치한 말들로 포장하기는 싫다.
나도 그냥 평범한 인간이기에 망각을 저지르고 나태해지는 것뿐이다.
결국엔 그냥 술이라는 놈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그러니까 의식주와도 같은 필수 요소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1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으나 스스로에게 소중한 것을 찾기까지 1년이라는 세월을 써버렸다는 건 별로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한동안의 금주로 나의 주량은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3병을 마셔야 얻을 수 있었던 그 느낌. 봄날의 따스한 햇빛을 듬뿍 빨아들인 바람에 속절없이 흐드러지는 벚꽃처럼 이름모를 어디론가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의 취기는 이제 1병만으로도 느낄 수 있게 되었으니 힘차게 허공을 가르는 부메랑을 내던졌던 손으로 다시 받아내는 것처럼 되돌아온 음주생활에 아주 충실하게 만족하는 중이다.
한 병에 360ml 한 병에 1500원.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의 모든 것들은 서울 노른자 땅의 주상복합 빌딩처럼 자신의 몸값을 올리고 있는 와중에도 이 녀석만은 그래도 자신의 분수를 알고 겸손하게 제값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여서 참으로 기특하다.
세상살이의 올곧지 못함에 부대껴오는 나날들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저 소주 한 병이면 충분하고, 머릿속에는 살아내야 할 시간들의 명세서가 영화자막처럼 주르르 흘러가며 다시 우울해질 때에도 결국 나를 위로하는 건 1500원짜리 병입 액체와의 유희뿐임을 잘 알고 있기에 아마도 술은 끊지는 못할 것 같다.
나쁜 습관이 날 죽일 순 있어도 좋은 습관이 날 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로는 굳이 좋은 습관을 만들어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출구를 잃어버린 나방이 안타깝게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는 것처럼 아등바등 살고 싶지는 않은가 보다.
그렇게 보면 내맡겨지고 길들여지는 일에 익숙해진 자들에게는 못 견딜 일이라곤 별로 없어 보인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가파른 질곡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거라곤 술에 취해 떨리는 눈꺼풀 사이로 보이는 불안정한 미래를 향해 비틀거리며 한 걸음 두 걸음 걸어 들어가는 일뿐이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정해진 속도로.
아마도 산다는 건 시곗바늘이 정시를 가리키면 귀에 거슬리는 알람을 울리는 것처럼 어느 정도 거슬릴 만큼은 정해진 것도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