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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와니 Aug 01. 2024

동시성 연인

단편소설



수빈은 앞에 보이는 빌딩을 보며 우리가 있는 여기와 저기 중에 어느 쪽이 더 높은지 물었다. 나는 당연히 우리가 있는 곳이 훨씬 더 높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휴대전화에 검색창을 띄웠다. 우리는 나들이를 생각하면서, 63빌딩과 남산타워 중에 어느 쪽으로 갈지 고민했었다. 둘 다 근처에 있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었다. 그래서 한 번쯤 가봐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하던 곳이기도 했다. 남산이 괜찮겠다고 한 건 나였다. 그때가 10월 중순쯤이었고 해서, 남들 다 가는 단풍구경도 못 가는 판에 거기라도 가자고 했던 것이다. 63빌딩은 지하 3층, 지상 60층, 해발 274미터. 남산타워는 236.7미터에 남산의 해발높이 243미터를 합하면 479.7미터. 수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저건 뭐지?”

수빈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 낙엽 모양의 빌딩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말로만 듣던 L사의 월드타워였다. 나는 다시 검색창으로 건물의 높이를 알아보았다. 555미터. 수빈의 표정이 일순 흐려지다가 금세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러다 갑자기 내 손목을 잡더니 돌아서서 뒤편에 있는 사탕 가게로 들어갔다. 수빈은 나에게 먹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했다. 나는 잘 모른다고, 괜찮다고 했다. 그래도 수빈은 그냥 몇 개만 골라보라고 내 등을 떠밀었다. 하는 수 없이 대충 손가락으로 이거, 이거, 이거, 라고 가리켰다. 수빈은 익숙한 듯 팔레트에 내가 고른 젤리를 하나씩 꺼내 담았고, 거기에다 자기가 고른 것들을 얹어 계산대로 가져갔다. 수빈과 나는 젤리를 하나씩 입안에 넣으며 다시 창가로 가 섰다.

전망대는 예상보다 허망했다. 시멘트 건물들이 펼쳐진 삭막한 도시가 내려다보일 뿐이었다. 옆에서 누군가 낮에 보니 별 거 없네, 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수빈도 그 말을 들었던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입장료가 아까운 생각이 들어 좀 더 머무를까도 싶었지만, 그 외 머물러 있을 만한 이유가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 안내원이 운행 시간 30초였습니다, 라고 안내했다. 안내원의 말에 관람객 중에 한 명이, 올라갈 때 30초, 내려올 때 30초, 1분에 만 원이 날아간 셈이네, 라고 우스개를 했다.

전망대에서 내려온 후 우리는 바로 옆 하트 의자가 있는 자물쇠길로 갔다. 방부목재로 울타리를 치고 바닥을 깔아놓은 길이었다. 울타리에는, 연인들이 이름이 적힌 자물쇠들이 쌍으로 엮여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두 개의 하트 의자가 있었다. 가운데 부분이 아래로 꺾여 있어 양편에 앉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로 기울어지게 해놓은 의자였다.

연인들이 하트 의자 주변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수빈은 하트의자에는 관심이 없는지 자물쇠들만 유심히 살폈다. 나는 주변을 건성으로 훑어보고 있었는데 동남아인으로 보이는 커플이 휴대전화를 내밀며 사진을 부탁했다. 그들은 하트의자에 앉아 서로의 두 팔을 이용해 하트모양을 만들었다. 그들이 만든 하트가 온전한 모양이 되지 않아 좀 도와줄까 했지만 그대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기를 그들에게 돌려주고서 나는 수빈에게로 다가가 뭘 그렇게 살피냐고 물었다. 수빈은 혹시 아는 사람 있나 해서, 라고 말했다. 나는 수빈에게 뉴욕에서 톰을 찾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수빈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계속해서 자물쇠들을 유심히 살폈다. 나는 그런 수빈을 좀 따분한 기분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데 수빈이 큰소리로 찾았다, 라고 외쳤다. 가까이 가서 보니 자물쇠에 ‘진우와 희진’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는 사람들이냐고 내가 물었더니 진우라는 애만, 이라고 수빈이 말했다. 네가 아는 그 진우 맞냐고 물으려다 어리석은 질문 같아 웃음으로 대신했다. 수빈도 따라 웃었다.

“혹시 고등학교 근처에 한자로 크게 이름이 쓰인 공장이 하나 있지 않았어?”

수빈이 물었다.

있었다. 건물 꼭대기에 又進이라고 쓰여 있었다. 무엇을 생산하는 공장인지는 모르지만 버스를 타고 오갈 때면 그 글자가 자주 눈에 들어왔다. 그때마다 저 글자를 우진이라고 읽어야할지 진우라고 읽어야할지 늘 헷갈렸다. 글자 우측에 작은 글자들이 적혀 있어 왠지 우측에서부터 읽어야 할 것처럼 느껴졌다. 수빈은 자기는 정말 그 글자를 진우라고 읽었다고 했다. 같은 이름을 가진, 교회를 같이 다니던 친구가 있었다고 했다.

“어쩌면 같은 길을 동시에 걸어갔을 수도 있었겠네. 서로를 모른 채. 생각하면 할수록 참 신기하다. 이러다 우리 셰익스피어랑 세르반테스처럼 같은 날 동시에 죽는 거 아냐?”

수빈은 이렇게 말하고 나선 대뜸 내게 좋아하는 색깔이 뭐냐고 물으며 이런 제안을 해왔다.

“누가 먼저 말하면 상대가 거짓으로 얘기할 수도 있으니까, 우리 동시에 말해볼까. 하나, 둘, 셋 하면?”

수빈이 하나, 둘, 셋을 천천히 또박또박 셌다. 우리 둘은 동시에 파랑, 이라고 외쳤다.

수빈과 나는 서로 통하는 점이 많았다. 혈액형이 A형으로 같았고, 그녀는 약간 왼쪽에, 나는 약간 오른쪽이지만 목에 점이 하나 있었다. 이름도 비슷했다. 그녀는 수빈, 나는 유빈. 무슨 음악을 좋아하냐는 물음에 그녀는 의외로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했다. 아침마다 바흐의 오보에협주곡을 듣는다고. 나도 잠자리에서 이불을 턱밑까지 덮고는 바흐를 들었다. 몇 해 전에 영화 채널에서 본 양들의 침묵에서 흘러나오던 골든 베르크가 인상 깊어 계속 듣고 있었다. 내 말에 그녀 또한 의외라고 했다. 그녀와 나는 같은 나이에 생일이 둘 다 3월이었다. 나는 3월 19일에 그녀는 정확히 일주일 뒤 3월 26일에 태어났다. 우리는 둘 다 수원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것도 학교가 서로 보일 정도로 가까이에 있는 고등학교였다. 가까운 나머지 그녀가 다닌 학교와 내가 다닌 학교 사이에는 반사놀이라는 게 행해졌다. 교실 창문에 서서 거울을 비추면 상대 학교에서도 거울로 신호를 보내오는 놀이였다. 특히 고3이 되면 수험생활로 지친 마음을 그것으로나마 달래곤 했다. 한 번은 누가 제대로 신호를 보내보자고 집에 있던 벽걸이 큰 거울을 가져온 적이 있었는데, 그걸 창밖으로 떨어뜨리는 바람에 징계를 맞은 적도 있었다. 수빈에게 그 놀이를 아냐고 물으니, 자기네 학교에서는 그걸 안드로메다라고 불렀다고 했다. 왜 그렇게 불렀냐는 내 물음에 수빈은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불렀다고만 말했다. 내가 다닌 학교에서는 특별한 명칭은 없었다. 좋아하는 스포츠는 야구. 좋아하는 야구팀은 곰을 마스코트로 하는 팀이었다. 둘 다 그렇게 열성팬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랬다.

그렇다고 그녀와 내가 서로 어긋나는 것이 없는 건 아니었다. 우선 태어난 곳이 달랐다. 그녀는 군산, 나는 속초가 고향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처럼 서로 어긋나는 사실 속에서도 동시성을 찾아냈다.

“자기는 가장 서쪽에서 태어났고, 나는 가장 동쪽에서 태어났어.”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만나면서부터 이 주 정도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손에 컵밥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수빈과 나는 같은 곳에서 컵밥을 사 먹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컵밥으로 점심을 때운다는 것은 하나도 신기한 일이 아니었지만, 골목 곳곳에 즐비한 수많은 식당 중에 컵밥을 사는 곳이 같다는 것은 예삿일은 아니었다. 신기한 나머지 곧바로 그 식당으로 갔을 때 주인아주머니가 우리 둘 다를 알아보았다. 내가 웃으며 한 번은 마주쳤을 법도 한데, 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아주머니가 들었는지 학생은 12시가 좀 지나서 오고 아가씨는 2시쯤 온다고, 먼저 나서서 일러 주었다. 강의 시간이 서로 달라서였다. 나는 10시 형법강의를 끝내고 점심을 먹었고, 수빈은 오전 교육학강의와 11시 전공강의를 한꺼번에 끝내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 중 정말 놀라웠던 것은 수빈과 내 전화번호 뒷자리였다. 내 번호는 7419, 수빈은 9637이다. 나는 지금도 이 두 전화번호 속에 숨겨진 비밀을 캐낸 수빈의 투시력이 놀랍기만 하다. 신대륙이라고 발견한 것처럼 흥분하며 수빈은 이 두 전화번호에 어떤 의미가 숨어 있는지를 내게 질문해 왔다. 난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도통 알아낼 수가 없었다. 통화버튼에서 이 번호대로 따라가면 ∞가 된다는 사실을. 수빈은 그 사실을 내게 알려주고 나서 오랫동안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심지어 둘 다 오랫동안 사귀던 애인과 최근에 헤어진 상태였다. 수빈은 두 달 전 5년간 만나온 남자친구에게서 이별의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대학 3학년 때 만난 캠퍼스 커플이었는데, 남자친구는 졸업하는 해에 임용고시에 합격해 어엿한 정교사로 근무하고 있지만 자신은 이번이 4수 째라고 했다. 졸업하고도 3년을 만나준 남자친구에게 오히려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괜히 욕심 부리는 것 같아 마음의 짐이 됐었는데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좋은 남자니까 좋은 여자를 만날 거라고 했다.

나 또한 얼마 전 초등학교 때부터 알았고, 대학졸업 후에 동창 모임이 인연이 되어 사귀게 된 여자 친구와 헤어진 상태였다. 친구는 대학졸업과 동시에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고향 속초에서 시청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시작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때는 금방이라도 경찰이 될 거라 믿었고, 그러면 넉넉하지는 않아도 화목한 가정을 꾸려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수험기간이 3년 넘게 이어졌고, 언젠가부터 친구의 목소리에서 권태로움이 느껴졌고, 어느 날 나는 그만하자는 맘에도 없는 말을 술김에 먼저 내뱉어버렸던 것이다. 한 편으로는 잡아줄 거라 믿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서로 반드시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 같은 것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한 부족이 적들의 침입으로 멸종됐는데 남녀 두 아이만 살아남았다. 두 아이는 침입자들이 데려 갔고 어떻게 하다 보니 아주 먼 곳에서 떨어져 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낯선 곳 아주 많은 인파 속에서 자기와 똑같은 독특한 매듭법으로 짠 팔찌를 하고 있는 상대와 만난 것이다. 그 팔찌는 누구의 가르침도 없이 여러 색깔의 끈으로 자기가 직접 만든 것인데.


*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완연한 여름이 시작될 즈음 오랜만에 집에 갔다가 고시텔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였다. 그날 나는 깜박 졸다가 그만 두 정거장을 더 지나치고 말았다. 부랴부랴 자리에서 일어나 하차구로 몰려든 사람들 뒤로 서 있었는데 막 버스에 오른 한 여자가 앉을 곳을 살피다 내가 앉았던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나는 버스에서 내리고서도 한참을 사라지는 버스 뒤꽁무니를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었다. 베아트리체 첸치를 본 스탕달이 실제로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라지는 버스 꽁무니를 보며 멍하니 서 있었던 내 모습과 흡사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렇게 버스가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고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멍한 상태로 서 있었다. 그러다 순간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전해져왔다.

“가방!”

하지만 버스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반대편으로 건너가 버스를 탈까 하다가 그냥 걸어서 가기로 했다.

느린 걸음으로 걸으며 나는 가방이 돌아올까 돌아오지 않을까를 타진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방이 돌아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일단 그쪽에서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가방 속에는 4월 23일 책의 날에 샀지만 한 달이 넘도록 대여섯 장밖에 읽지 못한 소설책과 몇 년간 메모장처럼 쓰고 있는 노트 한 권, 그리고 집에 가서도 쉬이 잠 못 들까봐 망설이다가 챙긴 수면안대가 고작이었다. 그곳 어디에도 나에 관한 그 어떤 정보도 적혀 있지 않았고, 누가 봐도 귀중품이라고 여길 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차라리 휴대전화라도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돌아올 가능성을 애써 타진해보았다.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가능성은 여전히 제로였다. 그때 잠깐 운명이란 것을 떠올렸다. 특별한 이유가 필요치 않는, 가능성이 없어도 가능한 세계……, 어쩌면 버스에 놓고 내린 가방은 신데렐라 이야기 속 유리 구두 같은 운명적인 만남을 위해 미리 준비된 소품일지도 모른다. 물론 발 치수 하나만으로 온 나라의 여자들 중 한 여자를 찾는 것이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운명이라면 가능하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3일이 지나고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는 내가 잘못 내렸던 정류장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고시텔에서부터 그곳까지 나는 3일 전과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우연히도 밤하늘에는 보름달이 떠 있었다. 우주가 탄생한 이래 달과 지구와의 거리는 한 치도 변함이 없었겠지만 그날따라 손에 닿을 듯 허공에 걸려 있었다. 좋은 예감이 들었다. 달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던 반원과 다른 반원이 그날 우연히 만나 완전한 원을 이룬 것만 같았다.

수빈이 말한 찻집은 정류장에서 주택가 골목으로, 그곳에서도 더 좁은 골목 안 한 편에 있었다. 초라한 간판에는 ‘참새와 농부’라는 이름이 누군가 무심히 휘갈겨 쓴 것처럼 적혀 있었다. 내가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지만 그녀가 이미 와 있었다. 고시원에 들어갔다가 나오기 애매한 시간이라 미리 왔다고 했다. 수원에 있는 학교에서 한 학기 기간제 교사를 하다가 임용고시가 다가와 그만두고 공부에 전념한다고 했다. 하지만 가계에 보탬이 되어야하는 형편이라, 일을 아예 안 할 수는 없어서 인근 보습학원에서 시간제로 중학생을 가르친다고 했다. 말을 마친 그녀는 피곤을 증명이라도 하듯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하품을 했다. 그녀의 하품을 보고 있자니 나도 하품이 절로 나왔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동시에 웃었다.

“사실 그날 저도 고시원에서 깜박 졸았어요. 그래서 평소에 타는 버스를 놓치고 말았죠. 그렇지 않았으면…….”

말을 마친 다음 수빈은 또 다시 하품을 했다.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새벽에 자주 잠이 깬다고 했다.  

바쁜 와중에도 수빈과 나는 서로 연락을 취했다. 저녁식사 후 휴식을 취할 겸해서 중간지점에 있는 놀이터나 학교 운동장을 산책하다 헤어지곤 했다. 그때마다 서로 비슷한 점을 발견했다. 우리는 심지어 두 번째 발가락이 똑같이 더 길었다.

귀뚜라미 소리가 막 들려오기 시작하던 어느 날, 우리는 여느 때처럼 저녁식사 후에 만나 학교 운동장 한 쪽 구석 벤치에 앉아 있었다. 수빈이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스위스의 한 노년의 심리학자가 취리히에서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 익사하는 무서운 장면이 눈앞을 스쳐갔다. 순간 온몸이 떨리고 등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남자는 집에 돌아와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애지중지하던 귀여운 손주가 집 앞 호수에서 거의 빠져 죽을 뻔했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마친 수빈이 빈 운동장에 눈을 둔 채로 말을 이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아빠랑 사이가 많이 안 좋았어. 지금 생각해보면 별 이유도 없는데. 근데 하루는 꿈에 아빠가 나온 거야. 난 꿈을 잘 꾸지 않는데. 그날 꿈은 너무도 생생했지. 아빠의 얼굴을 보며, 아빠와 마주한 것도 오랜만이네,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근데 아빠가 대뜸 나한테 택시비가 모자라니 천원만 있으면 좀 꿔달라고 하는 거야. 꿈에. 아빠 뒤로는 낯선 남녀 두 명이 서 있었고.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 하루가 다 지나도 말 한 마디 나누지 않는 사이인데 왜 나한테 와서 그러는지, 그리고 용돈을 주지는 못할망정 왜 되레 나한테 꿔달라고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 뒤에 서 있는 사람들도 그렇고. 근데 그날 아빠의 얼굴이……, 아빠의 얼굴이 너무 간절해 보였어. 그동안 내가 아빠한테 너무 차갑게 굴었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 아빠가 몹시 처량하고 불쌍하게 느껴지더라고. 그래서……, 천원을 건넸지. 아빠에게.”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수빈은 예의 그 운동장만 바라보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수빈의 옆얼굴은 반달처럼 어렴풋했다. 그때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반달이 쓸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옆에 어두운 자기 반쪽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수빈은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젊은 커플이 인근 공용주차장에서 차 안에 쓰러져 있는 아빠를 발견했다. 새벽에 번개탄을 피워놓고 그랬던 모양이었다. 그날 3교시 후 쉬는 시간에 담임교사에게서 아버지의 부고를 들었다. 그날 아침 엄마는 불길한 생각에 아빠에게 연락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마냥 기다리고만 있었는데 10시가 좀 지나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엄마는 손이 떨려 휴대전화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지금도 엄마는 전화벨 소리에 경증을 일으킨다. 지금껏 엄마에게 그날 꿈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마친 수빈은 길게 한숨을 내쉰 후 내게 물었다.

“그날, 천원을 건네지 않았다면 아빠가 돌아가시지 않았을까?”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수빈의 기분을 달래줄 양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웹상에서 우연히 접하게 된 영상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왼손투수 랜디 존슨에 관한 것이었는데, 2001년 3월 25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시범경기 중에 랜디 존슨이 던진 공에 날아가던 비둘기가 맞는 장면이었다. 영상을 보자마자 수빈은 어머, 하는 탄성과 함께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라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상은 마치 포격에 맞아 공중 폭발하는 전투기를 연상시킬 만큼 충격적이었다. 블로그에는 그때 벤치에 앉아 있던 각 팀 선수들이 경기 도중 싸움이라도 일어난 줄 알고 벤치클리어링을 하려다 무안한 표정으로 도로 들어갔다는 것과 날아가는 비둘기가 투수의 공에 맞을 확률이 190억분의 1 정도라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또 하나는 프리미어리그의 축구선수 애슐리 영에 관한 것이었는데, 2014/15년 스완지 시티와의 시즌 개막 경기 도중 하늘에서 떨어진 새똥이 소리치던 그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비둘기 폭파 영상과는 반대로 수빈은 영상을 보자마자 깔깔깔 소리 내며 웃었다. 멈추지 않고 계속 웃어대는 바람에 나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블로그는 정작 본인은 새똥이 아니었다고 우긴 다는 것과 새똥이 입 속으로 들어갈 확률이 3억분의 1 정도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축구공이 데굴데굴 굴러와 그녀의 오른쪽 발을 툭 치고는 저만치 굴러가 멈추었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고개를 이러 저리 돌리며 사방을 살폈다. 사위는 연한 커피색 같은 어둠뿐 어떤 인기척도 없었다. 운동장은 우리가 올 때부터 텅 비어 있었고 그렇다고 주변에서 공을 차는 소리가 들린 것도 아니었다. 수빈과 나는 신기하다는 듯 서로를 쳐다보았다. 나는 공이 어둠 속 어딘가에서 툭 튀어나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둠 편에선 우리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지만 우리는 어둠 속 그 무엇도 분간할 수 없는, 그런 어둠 속에서.

우리는 멍하니 공을 보고 있었는데, 조금 이따가 한 남자아이가 멀리에서부터 두리번거리며 우리를 향해 걸어오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멈칫, 멈추었다. 그것을 본 수빈이 벤치에서 일어나 공을 손으로 집어 남자아이에게 힘껏 던졌다. 공을 받은 아이가 수빈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는 공을 들고 뒤돌아 다시 달려갔다. 아이는 금세 어둠 속으로 공과 함께 사라졌다. 그때 이파리 두어 개가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더니 바람에 데구루루 굴러가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수빈이 말했다.

“벌써 가을이네.”

나는 휴대전화 액정을 들여다보았다. 8월 30일. 나는 아직 여름인데, 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여름은 6월부터 8월까지라고. 가을은 9월부터라고. 나는 수빈에게 아직은 여름이라고 말하려다 말하지 않았다. 수빈은 계속 아이가 사라져간 쪽을 바라보며 서 있었고 나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런 문장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뒷모습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그러면서 방금 지나간 모든 장면들이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이 들면서 가슴 한 편이 먹먹해져 옴을 느꼈다. 한지에 먹이 번지듯. 수빈이 손을 탁, 탁, 탁 털며 벤치로 돌아와 앉았다.


*


전망대에서 조금 내려와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서 마시며 어떻게 돌아갈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수빈은 버스를 타고 온 길을 걸어서 내려가 보자고 했다. 명색이 등산인데 걸어야 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걸어서 내려가는 사람이 몇 있어 그 사람들을 따라갔다. 10분쯤 걸어가는데 우리가 타고 온 순환버스가 우리를 지나쳐 갔다. 그것은 마치 몸집이 큰 산짐승처럼 보였다. 그런데 버스 안에 앉아 있는 승객 중에 익숙한 얼굴 하나가 눈에 띄었다. 버스를 타고 올라올 때부터 마주쳤던 여자였는데, 전망대에서도, 승강기 안에서도, 자물쇠길에서도, 돌아다니는 내내 마주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산길을 돌아 사라지는 버스를 보며 나는 이내 같은 시간과 공간 안에 같이 있었으니 별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내려가다가 수빈과 나는 중간에 마련된 쉼터 벤치에 앉아 쉬기로 했다. 서양인 두 명과 한국인으로 보이는 한 명이 앉아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땅에 떨어져 으깨진 은행에서 고약한 냄새가 풍겨왔다. 외국에도 은행이 있고, 은행이 땅에 떨어져 이처럼 고약한 냄새를 풍길까 하는 생각을 하며 혼자 속으로 웃었다.

“여기에서 한동안 아르바이트를 했었어. 어느 백화점 어린이 코너에서.”

수빈이 먹다 남았던 젤리를 봉지에서 하나 꺼내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리고는 자기도 한 개를 입안에 놓고 자신의 발끝을 빤히 쳐다보며 음미하듯 천천히 씹었다.

“일을 한 지 한 달쯤 되던 어느 날이었는데, 방금 젤리를 사고 갔던 남자 손님이 돌아와서는 무게를 다시 달아보라는 거야. 심장이 쿵쿵 거리고 손이 바들바들 떨려서 어쩔 줄 몰랐지. 오더가 있었어. 무게를 달 때 살짝 손으로 누르라고. 티 안 나게. 나쁜 짓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나만 못한다고 할 수도 없었고. 그곳이 다른 데보다 시급이 괜찮았거든. 근데 손님의 아내가 그걸 목격했던 모양이더라고. 가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터무니없이 비싼 것 같고 아니다 싶었던 거지. 내가 어쩔 줄을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있으니까 그런 나를 보며 욕을 하더라고. 씨발 년아, 뭐하고 있냐고! 빨리 해보라고, 씨발 년아! 이렇게. 그리고 다른 손님들에게 큰소리로 말하는 거야. 여기 순 사기꾼이니까 사지 말라고. 누가 보고를 했는지 매니저가 급히 달려와 사태를 수습하긴 했는데 매니저가 나더러 손님께 머리 숙여 사과를 하라고 하더라고. 지시한 건 자기면서 나더러. 그래도 어떻게, 내가 힘이 있나, 시키는 대로 사과를 했지. 근데 너무 분이 받쳐서 화장실에 가서 울고 있는데 매니저가 그곳까지 와서는 영수증을 보이면서 1,500원 차이를 지적하더라고. 티 안 나게 적당히 했어야지 너무 과했다고.”

수빈은 봉지에서 마지막 젤리를 꺼내 나에게 권했다. 나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수빈은 젤리를 입 속에 넣고 방금 전처럼 천천히 씹었다.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어. 사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잘 살았는데. 아빠가 오랜 지인의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그때 충격으로 아빠가 그렇게 된 거고. 유명가구회사에서 30년 근속하다 명퇴하여, 퇴직금으로 가구점을 냈는데 나름 잘 됐어. 그래서 그 일이 있기까지 3년 동안은 항상 웃음꽃이 폈는데……. 나도 공부를 꽤 잘 했어. 그리고 어릴 적부터 미술에 소질이 있었거든. 유학까지 꿈꿨는데…… 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 뭐. 며칠을 학교도 안 가고 펑펑 울었어. 근데 어쩌겠어, 어쩔 수 없지. 엄마가 착실히 공부해서 사범대 나와서 교사하는 게 안정적이지 않겠냐고 울면서 말씀하시는데 어쩔 수 없었지.”

“또 무슨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녀의 표정이 우울해보여 말을 돌릴 심사로 내가 물었다.

“찻집에서도 일하고, 편의점에서도 일하고, 고깃집에서도…….”

말을 하는 수빈의 눈시울이 가볍게 떨렸다.

고깃집에서 일할 때였더랬다. 8시 타임이었는데 한 번은 어떻게 하다 보니 저녁을 거르고 갔는데 일을 하다 보니 너무 배가 고팠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테이블을 정리하다 불판 위에 남겨진 삼겹살 하나를 집어 먹었다. 그것도 다 타고 말라비틀어진. 그런데 그 모습을 사장에게 딱 걸려버렸던 것이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데 정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그것 때문이었는지 그날 급채를 하는 바람에 일을 못하게 되었다. 주말이라 엄청 바쁜 날이었는데. 다음날 갔더니 그동안 수고했다고 사장이 봉투를 내밀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까지 못 견디게 배가 고픈 건 아니었는데. 말을 마친 수빈은 나를 보며 방긋 웃어 보였다.

언젠가 나는 그런 아르바이트생을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쯤이었을 것이다. 그날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집주변 삼겹살집으로 외식을 나갔다. 아마 주변에서 가장 저렴한 식당이었을 것이다. 퇴직금으로 차린 치킨집이 매상이 예상에 미치지 못했고, 얼마간의 빚도 지게 된 후로 한 동안 가족외식은 없었던 터였다. 우리 가족이 적당한 자리를 잡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려고 오더니 우리 가족을 보고는 삼겹살 4인분 드릴까요? 라고 물었다. 아빠, 엄마, 여동생, 그리고 나까지 4인이니까 그렇게 물어본 것이었다. 그런데 아빠와 엄마가 서로를 쳐다볼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얼른 네, 라고 대답하자 엄마가 급히 아니, 3인분만 주세요, 라고 정정했다. 종업원은 멋쩍은 표정을 지며 알겠습니다, 라고 말하더니 돌아서서는 여기 삼겹살 3인분요, 라고 크게 외치는 것이었다. 나는 왠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식당의 손님들이 일제히 우리 가족을 쳐다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종업원이 손님이 막 떠난 옆 테이블을 치우면서 남은 삼겹살을 집어먹는 것이었다. 우리 쪽을 힐끗힐끗 거리면서. 나는 속으로 그것이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웬일인지 당당한 건 그 종업원 쪽이었고, 오히려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건 우리 가족이었다. 그 다음날 두 분이 이혼 사실을 밝혔다. 실제 이혼은 아니라고 했다. 위장이혼이었다. 많은 빚은 아니었지만 만일에 대비하여 살고 있는 집을 엄마 명의로 돌려놓았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던 수빈이 물을 달라고 했다. 젤리를 먹었던지 물이 내킨다고. 나는 가방에서 생수병을 꺼내 수빈에게 건넸다. 물을 몇 모금 마신 수빈이 휴대전화를 보더니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또 444야. 이것 봐.”

그녀가 내미는 휴대전화 액정에는 4:44 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숫자들은 현재시각이라기보다 이미 지나온 아주 오래전 어느 시점처럼 서늘하게 느껴졌다.

“난 시간을 확인할 때마다 444 아니면 1111이야.”

“그거 죽을 사 아냐? 1111도 합치면 4잖아, 죽을 사.”

수빈이 도끼눈을 하고 나를 째려보았다. 그러다 금세 풀이 죽은 표정을 했다.

“맞아, 죽을 사. 그래서 내 인생이 잘 안 풀리나 봐.”

실은 나도 시간을 확인할 때마다 11:11과 자주 마주쳤다. 하지만 풀이 죽은 표정을 하고 있는 수빈에게 왠지 나도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런 것은 서로 동일하지 않는 게 낫다 싶어서였다. 수빈이 생수병을 돌려주며 그만 일어나자고 했다.

“근데 왜 민머리야? 만날 때마다 물어보려고 했는데.”

수빈이 가방을 고쳐 매며 물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손수 머리를 깎았다. 뭐 특별한 이유가 있진 않았다. 있다면,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른다는 것이 내겐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늘 더벅머리를 하고 다니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것도 귀찮기는 마찬가지였다. 매일 감아야하고, 빗어야하고. 또 언젠가 본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이 바리캉으로 직접 머리를 깎는 모습이 멋져 보이기도 해서, 그런다고 했다.

“실은 나도 직접 깎는데…….”

수빈은 하고 있던 말꼬리머리를 풀며 말했다. 머리를 풀어헤친 그녀의 모습을 나는 그때 처음 보았다. 묶고 있던 머리를 풀었을 뿐인데 그녀에게 저런 모습이 숨어 있었나 싶게도 수빈은 다른 여자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고 다녔다. 늘 한결같았다. 나도 그녀에게 그 이유에 대해 물어보려 했었다. 그런데 머리를 묶고 다니는데 뭐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싶어 묻지 않았다. 더욱이 내가 반한 것이 그녀의 그런 단정한 모습이었기 때문이기도 해서, 그랬다.

“아무렴 어때, 내가 멋 부릴 땐가 뭐.”

말하면서 수빈은 머리를 묶기 위해 머리카락을 뒤로 그러모았다. 모은 머리카락이 머리끈 사이를 몇 번 오고가더니 수빈은 금세 내가 알던 사람으로 돌아왔다. 수빈은, 어때? 하며 얼굴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그때 나는 그녀와 평생을 함께해도 좋겠다고 잠시 생각했다.

“내가 그 가방을 돌려준 진짜 이유 알아?”

나는 또 우리를 지나쳐 가는 순환버스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수빈이 뜬금없이 물었다.

메모장이자 일기장으로 쓰던 노트에는 총 세 개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더랬다. 하나는 블루투스 마우스와 키보드가 필요한데 조금이라도 싸게 살 생각으로 중고시장 사이트를 뒤지다가 적어놓은 것이었고, 또 하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출처를 알 수 없는 것이었고, 마지막 하나는 헤어진 전 여자 친구의 전화번호였다. 홧김에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있던 것을 삭제했었다가 다시 그리운 마음에 여기저기 뒤진 끝에 찾아내 한 귀퉁이에 적어놓았던 것이다. 우리가 처음 만난 ‘참새와 농부’에서 수빈이 내게 가방을 건네며 말했었다. 네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꼭 돌려주기를 바란다고, 여자 친구가 당부하더라고.

나는 노트에 전 여자 친구의 전화번화가 적혀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더욱이 수빈이 그것을 통해 나에게 연락이 닿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내가 대답이 없자 수빈이 말을 이었다. 특별히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은 투였다.

“버스에 가방이 있길래 가는 동안 열어봤지. 핸드폰도 없고, 언뜻 보기에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겠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하지 하다가 그냥 자리에 놓고 내리려고 했어. 근데……, 수면안대. 그게 내 마음을 잠깐 흔들더라.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그 마음이 진정이 안 되더라고. 그래서 직접 돌려줘야지 했지. 나도 그즈음 잠을 잘 못 잤거든.”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난 후부터였을 것이다. 갑자기 전에 없던 증상이 찾아왔다. 베개를 베기만 하면 골아 떨어졌었는데, 그때 이후로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 책을 볼 때는 꾸벅꾸벅 졸다가도 잠자리에 들기만 하면 다시 머리가 맑아졌다. 그래서 이런 저런 방법을 취하는 중에 수면안대를 하나 구입했던 것이었다.

“그날 잠자리에 들었는데 또 잠이 잘 안 오더라고. 근데 문득 가방 안에 수면안대가 떠오르는 거야. 장난삼아 껴 받지. 남의 거라 꺼림직하기도 했고 냄새가 좀 나긴 했지만, 잠에서 깨니 아침이더라고. 정말 깜짝 놀랐어 나도.”

우리는 남산도서관 정류장에서 순환버스를 탔다. 충분히 걸어서 서울역까지 갈 수도 있었지만 우리가 막 정류장을 지나칠 무렵 버스가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


서울역에서 우리가 사는 고시촌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가는 도중, 수빈이 무작정 가는 데까지 가볼까 하고 내게 제안을 해왔다. 정말 뜬금없다고 생각됐지만 시간을 보니 저녁 시간도 좀 이른 것 같고 버스 안에서의 데이트도 괜찮을 성싶어 나도 좋다고 했다.

버스는 우리가 사는 고시촌을 지나 스물다섯 번의 정류를 거쳐 마지막 정류소에 섰다. 기사 아저씨가 가만히 앉아 있는 우리를 보며 안 내리실 거냐고 소리쳤다. 우리의 의도는 정말 끝에까지 가보는 것이었다. 차고지까지. 수빈과 나는 어쩌지 하며 망설이다 그냥 그곳에서 내렸다.

날은 이미 어스름이 내려와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주변엔 주유소 하나가 있었고, 저만치 한 눈에도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아파트 단지가 습지처럼 축축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 외에는 이렇다 할 특별한 것 없는 곳이었다. 수빈과 나는 약속이나 한 듯이 버스가 달려온 길을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길에는 가로등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길게 서 있었다. 가로등 때문인지 우리의 보행이 마치 무한 반복 시퀀스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걸어도 한 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그렇게 한참을 걸어 몇 정거장을 지나쳤다. 도중에 나는 수빈에게 까마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릴 적 내가 살던 바닷가 근처에 거무튀튀한 바위덩어리로 이루어진 동산이 있었는데, 거기 까마귀들이 날아와 쉬곤 했는데, 그래서 그 동산을 까마귀동산이라고 불렀다고. 내가 왜 까마귀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 신기하게도 어디선가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까마귀 울음소리 맞지? 어딨지? 잘못 들었나? 라고 서로가 서로에게 물으며 우리는 그 울음의 출처를 찾아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어두워서 그런지 아무리 둘러봐도 까마귀는 보이지 않았다.

“잘못 들었나 봐. 이 도심에 무슨 까마귀가 있겠어?”

수빈이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는 그녀가 왜 그렇게 길게 한숨을 쉬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물어보려는 그때, 바로 우리 머리 위에서 아주 또렷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렸다. 수빈과 나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신기하게도 거기, 새 한 마리가 있었다. 전깃줄에 홀로 앉아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 그렇게 둘러볼 때는 분명 없었는데도 말이다.

“저거 까마귀 맞지?”

수빈이 물었다.

물음에 대답이라도 하듯 새는 까악, 까악, 두 번 울었다. 나는 그 울음소리가 중요한 무언가를 상기시켜주는 소리처럼 느껴졌고, 순간 중요한 약속이라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그런 건 있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머리 위를 올려다보던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동시에 무슨 말을 하려다 멈췄다. 그런 서로의 모습에 우린 또 동시에 웃었다. 하지만 그때의 웃음은 왠지 쓸쓸했고 쓸쓸한 만큼 또 금세 입가에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새도 푸덕푸덕 몇 번 날갯짓을 하더니 방금 전까지 자기가 바라보던 그쪽으로 금세 날아가 버렸다. 원래 어디에도 없었던 것처럼.

버스를 타고 우리는 고시촌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머무는 고시원으로 도착할 때쯤 빗방울이 차창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둘 다 가방에 우산이 있었다. 수빈은 나들이 간다고 일기예보를 들었다고 했다. 나는 예전에 쓰고는 깜박하고 꺼내놓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녀의 고시원 근처에서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했다. 처음하는 제대로 된 데이트인데 근사한 데라고 가자고 했지만 수빈은 한사코 괜찮다며 분식집으로 나를 떠밀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빗방울은 더 굵어져 있었다. 길은 우산을 쓰고 오가는 행인들로 붐볐다. 그녀를 고시원으로 바라다 주는 길에 서로의 우산이 때때로 부딪혔다.

고시원 문 앞에서 수빈이 돌아서서 나에게 잘 가라고 했다. 두 번 말했다. 잘 가라고. 나는 수빈에게 잠깐만 그곳에 서 있으라고 말한 뒤 오던 길을 되돌아 달렸다. 걸어오면서 잡화점에 걸려 있던 수면안대를 선물해주고 싶어서였다. 보자마자 살까 고민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오천 원이었다.   

수빈은 매우 기뻐했다.

“이런 선물은 처음이야. 근데…….”

수빈은 하던 말을 멈추고 수면안대를 껴 보았다. 그리고 술래잡기할 때처럼 양팔을 앞으로 뻗어 허공을 더듬는 시늉을 했다. 무언가가 손끝에 닿기를 간절히 바라듯. 그때 그녀의 두 손을 잡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지금도 가끔 그때 왜 내가 그녀의 손을 잡지 않았는지 왜 잡지 못했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이런 결론에 이른다. 그것은 잡지 않은 것도 잡지 못한 것도 아니라고. 특별한 이유가 있어 그런 건 아니라고. 그냥 그렇게 된 거라고.

수빈을 바래다주고 나는 처음 그녀를 버스 안에서 본 그날처럼 걸어서 고시텔로 돌아오고 있었다. 걸어가는데 편의점 안에서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청년 하나가 컵라면을 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청년은 젓가락으로 면을 듬뿍 집더니 한 입에 다 넣고는 몇 번 씹지도 않고 삼켰다. 저녁식사를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심한 공복감과 함께 식욕이 몰려왔다. 나는 그가 컵라면을 다 먹을 때까지 그를 지켜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시험일이 가까워오면서 우리는 서로 만날 기회를 좀처럼 잡지 못했다. 한쪽이 시간을 겨우 내면 한쪽이 특강이나 스터디가 잡혀 있었다. 우리는 서로 힘내라는 문자를 주고받았다.

해를 넘기고 그런 연락도 뜸해질 즈음 그녀에게서 임용고시에 합격했다는 문자가 왔다. 나는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답장을 보냈다. 문자를 보내며 나는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 축하 메시지에 한참 이따가 그녀에게서 또 답장이 왔다. 다 네 덕분이야, 라고. 메시지를 가만 보고 있으려니, 그때 이미 수빈은 수면안대를 가지고 있었을 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해에도 나는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 고민 끝에 길이 아닌가보다는 생각이 들어 준비하던 것을 말끔히 포기했다. 그 후로 여기 저기 닥치는 대로 입사 원서를 냈는데 정수기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비정규직이었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올해로 벌써 3년째가 되어가고 있다.

수빈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미리 준비되어 있었던 일처럼 어떤 이별의 통보도 없이. 수빈과 헤어지고 난 후 딱 한 번 그녀를 다시 만난 적이 있다. 헤어진 지 2년쯤 지난, 날은 비가 올 것처럼 흐린데 빗방울은 아직 떨어지지 않던 그런 어느 날이었다. 지하철역 수많은 인파속에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서로가 깜짝 놀랐으니까.

수빈은 많이 변해 있었다. 머리도 옅은 갈색으로 염색을 했고 전처럼 묶지 않고 있었다. 화장도 전보다 짙었다. 하지만 그녀의 변화에 대한 내 느낌은 그녀의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뭐랄까, 나와는 다른 길을 가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수빈은 나를 보자마자 내게 이렇게 말했다.

“머리는 여전하네.”

나는 수빈과 헤어지고 난 직후부터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기른다기보다 자르지 않았다는 게 더 맞을 듯하다. 머리카락이 귀를 덮을 정도까지 놔두었다가 좀 더 자라면 가위로 쳐내는 식이었다. 그때 잠깐 수빈을 떠올리곤 했다. 그러다 그녀를 우연히 만나기 며칠 전 다시 처박아 두었던 바리캉을 꺼냈다. 특별한 이유랄 건 없었다. 그런데 수빈이 나를 보자마자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머리는 여전하네, 라고.

그날 나는 잠자리에 들어 골든 베르크를 들었다. 그때서야 나는 수빈과 헤어지고 난 후부터 그 음악을 듣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악을 들으며 나는 그녀와의 만남과 이별을 찬찬히 되돌려 보았다. 하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질문만 무성해지고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단, 아주 우연만은 아닌 듯싶었다.

그날 나는 버스에 가방을 놓고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과식으로 식곤과 피곤이 겹쳐 졸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이유는, 그 날 내가 들고 나간 가방은 평소에 책을 잔뜩 넣고 다니는 백 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집으로 가는 길이라 홀가분한 마음에서 그랬는지 D사의 크로스백을 매고 나갔던 것인데, 내내 익숙지 않았고 그래서 매는 대신 손에 들고 다녔다. 그렇다고 무언가 손에 들고 다닌 적도 없었기에 크로스백을 들고 나온 것에 대해 내내 후회스러워 했었다.

나는 최근에 나와 비슷한 세대에 이름에 ‘빈’자를 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누군가 내게 말해주었다. 내가 태어날 즈음 이름에 ‘빈’ 자를 쓰는 게 유행이었다고. 생일이 둘 다 3월인 이유도 있었다. 결혼을 가장 많이 하는 달이 5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을 어디선가 주워들었다. 까마귀가 몇 년 사이에 도시 인근에 많이 출몰한다는 것이었다. 까마귀는 원래 까치와 서식지가 동일한데, 그동안 까치의 세력에 밀려 서식지가 산으로 옮겨졌다가, 점차 세력이 커지면서 다시 민가로 내려오는 추세라고. 또한 한국인 중에 A형 혈액형이 가장 많다는 것과 세계인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다름 아닌 파랑이라는 것도. 그런데 내가 찾아본 바로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작곡가는 바흐가 아니었다. 1위는 베토벤이었다. 바흐는 아깝게도 2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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