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최고의 팝스타이자, 영상에 수억 개의 좋아요와 수억 개의 싫어요를 가진 양가적인 남자. 당시 미국 초통령을 담당했던 저스틴 비버.
20세기 끄트머리에 태어나서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는 염세적인 남자. 당시 한국에서 그저 초등학교를 다녔던 심준보.
공통점이라곤 남자라는 것뿐인 둘은 어떤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다. 안타깝게도 좋은 쪽은 아니지만 말이다.
저스틴 비버를 지금 네이버에 검색하면 나오는 기사들은 대부분 그의 '희귀병' 소식이다. '람세이헌트'라는 아주 생소한 질병에 걸려버려서 얼굴 반쪽이 마비되어버린 상태다. 때문에 월드투어도 취소하고, 집에서 투병 중이라는 기사가 있는데 아직 다 나았다고 하진 않는 것으로 보아 고생 중인 것 같다.
안타깝게도 공통점은 저 람세이헌트 이야기다. 나 역시 과거에 '람세이헌트'에 걸려 투병을 했던 기억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대학에 들어가게 된 17년도였는데 우연인지 기적인지 여름방학이 시작하는 날 발병하여 입원 치료를 하고 방학이 끝날 때쯤엔 거의 회복되었기 때문에 실제로 얼굴 반쪽을 못 움직이는 내 모습을 본 사람은 많지 않다.
마비라는 것은 정말 신기한 현상이다. 우리는 우리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의외로 우리 신경은 조금만 끊어져도 맥없이 제기능을 잃는다. 람세히헌트는 귀에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침투해 생기는 병인데, 귀밑으로 얼굴 신경다발이 지나기 때문에 여기 길목만 끊겨도 얼굴 반쪽이 통으로 날아간다. 치료랄 것도 없는데, 그저 재생되기만을 기다리고, 얼굴이 굳지 않도록 침을 통해 자극을 하곤 했다.
이 한 달은 아마 인생에서 가장 우울한 한 달이었을 것이다. 학생 땐 내내 공부만 하다가 이제 좀 세상에 나서보나 했더니 얼굴 반쪽이 마비된 상태라니. 사실 입이 돌아간다는 표현이 안면마비의 관용적 표현인데, 말을 하면 발음도 어눌해진다. 귀도 물에 들어간 것 같은 소리가 나고, 맛도 반쪽은 느끼지 못한다. 물론 나으면 좋겠지만 완치율도 20퍼센트 정도였고, 관련 지식을 알아보려 하면 광고만 잔뜩 나왔다.
당시 나는 두 가지 선택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하나는 오페라의 유령 가면을 사서 쓰고 다니는 극한의 콘셉트충의 삶. 하나는 죽으면 그만이야~ 와 같은 태도였다. 그래도 죽을 용기는 없었기에 종종 고가의 가면을 검색해 보긴 했었다. 다행스럽게도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얼굴은 돌아왔고, 지금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묘하게 오른쪽 눈에서만 눈물이 나는 후유증 빼고는 해결이 되었다.
하지만 흉터처럼 이 사건은 내 정신에 남았다. 무언가 인간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고, 신을 믿지 않는 나는 탓할 곳도 없다. 건강관리가 딱히 부족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어느 날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도졌고, 하필 귀였던 것뿐이다. 세상은 이렇듯 부조리하게 흘러가고 나는 운명처럼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다행히 회복되었지만 회복된 것도 역시 운이었다. 내가 다니던 한방병원에선 몇십 년째 침을 맞는 사람도 있었고, 그들이라고 나보다 덜 간절했던 것도 아니다. 더욱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게 되는 대목이다. 모든 비극에 초연한 자세를 가지는 것만이 일상의 평화를 찾는 길이다. 자전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죽음, 비극, 병 같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은 의식하지 않는 편이 좋다.
또한 당시에 대학 합격증이 인생 최고 아웃풋이던 나는 얼굴 반쪽이 마비된 상태로 끝없는 벨런스 게임을 했다. 가령 "대학 자퇴하고 얼굴 돌아오기 vs 다니면서 낫길 기다리기"처럼 말이다. 아마 정말 신이 나타나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자퇴를 골랐을 것이다. (심지어 팔 한쪽 없기 vs 안면마비 이런 것도 고민했다.) 이것의 교훈은 우리가 쌓아 올린 모든 것들도 이유 없는 비극 앞에선 사르르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가뜩이나 염세주의자였던 내가 더욱이 염세주의자가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말했듯 우리는 결국 살아 내어야 하고, 비극을 견뎌야 한다. 나는 그래서 지금의 삶이 나의 두 번째 삶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낫지 않았더라면 삶은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세 번째 삶, 네 번째 삶 역시 언제든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당신도, 피해 갈 수 없는 N번째 삶은 언제나 이유 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니 말이다.
나의 영혼의 친구 저스틴 비버 씨의 쾌유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