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의 시를 읽으며

by 오로롱도로롱


밥을 먹으며 티비에서 뉴스를 보거나 인터넷기사를클릭하면 어김없이 댓글창에선 검투사들의 싸움이 벌어진다. 보통 언급하고 있는 대통령의 이름으로 그들의 정치성향이 밝혀지며, 사실 주장도 근거도 빈약한 모욕에 가까운 말들이 많다. 마치 서로를 상종할 수 없는, 도무지 이해안되는 사람들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도대체 둘의 삶이 얼마나 다르면 이렇게 극단에 서게 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는 나같은 소시민도 그들의 격렬한 대결을 모든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을만큼 갈등이 당연한 문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가끔 정치인들의 수준 낮은 발언이 문제가 될 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도대체 고시까지 패스할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 왜 이렇게 바보같이 변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답은 몇 갈래로 갈라질 수 있는데, 첫째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자신의 정당, 즉 외부조건 때문에 발언을 하게 되는 것이며 둘째는 정치인이라는 지위, 정치계라는 위치에 놓이게 되면 사람이 바보같이 변한다는 가정이다.



뉴스를 보면 볼수록, 두 가능성 모두 일어나지만 두 번째 경우가 더욱 적합하지 싶다.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나의 공적을 치켜세운다. 하지만 나의 공적을 만드는 것보단 상대방의 흠을 찾는 것이 훨씬 쉽고 효과도 좋기 때문에 그런 전략을 쓰게 된다. 이런 상황에선 나와 적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중요해지며, 이분법적인 사고는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 이런 단순함은 촉망받던 젊은이도, 바보처럼 만들기에 충분하다.



요즘은 비단 정치계가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도 저런 문화가 생겨난 것 같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생각,집단, 상황 들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우리 편과 적을 구분하는 생활양식들 말이다. 립셋과 로칸이라는학자는 이를 '균열'이라고 표현했는데, 이제는 온 세상이 균열이라 이 사회는 깨진 유리조각 같다고 할 수 있다. 남성과 여성, 진보와 보수, 청년과 장년, 민트 초코 먹는 사람과 안 먹는 사람.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는 단순 명로 하지만 그만큼 갈등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이분법적으로 집단을 나누면 내가 속한 내단과 외집단이 분명해진다. 그리고 내집단에 대한 소속감은 외집단에 대한 적대감을 들게 하고, 그들의 사고와 언행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극우 성향을 가진 사람은 진보성향을 가진 이들이 입을 채 떼기도 전에 그들에게 온갖 욕설을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주장과 근거를 헤아리지 않는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급진적으로 진보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보수진영의 발언에 대해 부정의하다고 말하고, 그 근거는 헤아리지 않는다. 확증편향도 이런 이분법을 심화시키는 기제이기도 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일단 한번 내집단, 외집단으로 분류되기 시작하면 자신의 생각조차 통제된다는 것이다. 사회엔 수많은 사안들이 있다. 그리고 한 사안에서 진보적인 입장이라고 모든 사안에서 진보적일 필요는 당연히 없다. 예를 들어 복지정책엔 우호적이지만, 국방정책엔 강경하게 나가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소수자 문제엔 적극적으로 해결을 원하지만 탈원전에 대해선 반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이미 한 진영의 '완장'을 차게 된다면, 표현의 자유, 어쩌면 생각의 자유까지 잃을 수도 있게 된다.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는 하지만 무척이나 신속 간단하며, 적과 나를 구분하는 것은 생존에 크게 도움이 된다. 따라서 어쩌면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르나 다원주의 사회에는 전혀 맞지 않는 전략이다. 하지만 누구의 이해관계를 위해서인지 세상이 이를 부추기고, 이런 문화가 사회 전반에 퍼진 건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도 알게 모르게 어떤 진영에 속해 있을 것이고, 반대 진영의 주장을 들을 때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얼른 이를 인식하는 것이다. 억지로라도 자신과 반대되는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해보자. 사회의 사안들은 둘로 보면 둘이지만 셋으로 보면 셋, 백으로 보면 백으로 보이는 일들이 많다. 둘로 보면 갈등하던 것이 백으로 보면 타협하고 협상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또 중요한 것은 나와 다른 사람도 나와 평등한 구성원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과거 대통령의 탄핵과 함께 민주권 대통령의 영웅적 출현(?) 이후 보수정당을 보는 세간의 시선이 부정적으로 변했음을 느꼈다.부정적인 것이야 당연하겠다마는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모두 부정의한 사람으로 몰아세우고,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여기는 것에는 조금 안타까움이 들었다. 상대방도 나와 같은 사회 구성원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결코 협상의 자세를 가질 수 없다. 이는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다수결의 세부 원칙이기도 하다. 구성원은 질적으로 동일하다. 나라고 똑똑하고 남이라고 바보가 아니라 우리는 다른 입장을 가진 것뿐이다.



사실 이 글은 네이버 기사를 볼 때마다 댓글창에서 볼 수 있는 사이버 검투사들이 이런 이분법적인 문화가 만들어낸 괴물이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을 토대로 쓰였기 때문에 정치적인 균열이 주로 등장한 감이 있다. 실제로 성과 더불어 정치성향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균열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내집단, 외집단 나눠도 우리는 좋으나 싫으나 한 사회를 살아가는 운명공동체다. 결코 적이 아니다. 또한 같은 인간이기에 입장이 다를 뿐 노력하면 대부분 동의하지는 못해도 이해할 수는 있다. 또한 자신의 팔에 달린 수많은 완장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자랑스럽게 빛내주는 완장인지, 자신을 묶어두는 족쇄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도록 하자.



<긴 호흡/박노해>


직선으로 달려가지 말아라

극단으로 달려가지 말아라

사람의 길은 좌우로 굽이치며 흘러간다


지금 흐름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꾼 때

머지않아 맞은편으로 흐름이 바뀌리라

너무 불안하지도 말고 강퍅하지도 마라


오른쪽이건 왼쪽이건 방향을 바꿀 때

그 포용의 각도가 넓어야 하리니

힘찬 강물이 굽이쳐 방향을 바꿀 때는

강폭도 모래사장도 넓은 품이 되느니


시대 흐름이 격변할 때

그대 마음의 완장을 차지 마라

더 유장하고 깊어진 품으로

새 흐름을 품고 앞으로 나아가라


삶도 역사도 긴 호흡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저스틴 비버와 심준보의 공통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