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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롱도로롱 Jun 09. 2023

안제마 자연과학 교회

기묘한 꿈 이야기

 그날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이어지는 오후 낮잠 타임을 갖고 있었다. 선풍기 바람을 쏘이며, 얇은 여름 이불의 감촉을 느끼고 있노라면, 잠은 연기처럼 찾아오고, 그렇게 자다 깨다 하는 짧은 잠을 자고 있노라면 재미있는 꿈을 꾸게 된다. 보통의 꿈이라면 매우 현실성도 없을뿐더러 내용조차 의미 없기 때문에 금방 휘발되고 말지만 오늘의 꿈은 이상하리만치 독특하고, 생경하게 남아 얼른 메모를 해 두었다. 또한 이 꿈이 신기한 점은 나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답을 꿈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즉 꿈이 내 의식 안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답변을 무의식에서 끌어 와 의문의 인물을 통해 말해주었다는 것이다.


 꿈에서 나는 사당역을 거닐고 있었다. 시간대는 밤이었던 것 같다. 이름만 사당역이지 사당역과는 아예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서로의 뺨을 때리며 즐거워하는 이상한 행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 꿈에서나 나올법한 행사장 뒤로 건물이 하나 보였는데, 그것이 '안제마 자연과학 교회'였다. 그 교회는 상층부는 붉은 벽돌식으로 되어있지만 하층부는 백색의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게다가 그 대리석에는 미라를 만드는 과정이 조각되어 있었다. 마치 이집트의 문화재처럼 말이다. 그리고 꼭대기 층에는 1968년에 개봉했던 '혹성탈출'의 캐릭터 같은 기묘하게 길쭉한 원숭이들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생경하게 풍경을 기억하는 이유는 꿈에서 조차 그 풍경이 '자연과학 교회'라는 이름과 너무도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미라를 만드는 과정은 내새의 복을 빈다든지, 부활한 후의 육체를 보전하기 위해서라든지 여하튼 굉장히 종교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고대인들 치곤 굉장히 과학적이고(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무슨무슨 약초의 무슨무슨 성분이 부패를 막는 등 과학 다큐에도 자주 등장했던 것 같기 때문이다. 꼭대기 층의 원숭이 역시 창조론과 진화론이라는 라이벌 구도의 두 이론이 던지는 오래된 화두를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자연과학 교회'라는 참신하고도 기묘한 이름을 가진 교회는 들어본 적도 없었지만, 그 외관이 나름의 설득력을 주고 있어서 꿈속의 나는 단숨에 매료되고 말았다. 다음으로 눈길이 가는 것은 '안제마'라는 이름이었다. 자영업자들이 자신의 가게에 이름을 붙이거나 의사들이 자신의 병원에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있어도, 교회 앞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다? 이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며, 어쩌면 해서는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도 자신 있게 이름 석자를 걸어놓은 교회에 이름조차 어쩐지 자꾸 부르면 부를수록 종교적인 어감이 느껴지는 사람이라 이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꿈속의 나는 지나가는 행인에게 이름에 대해 물었다.


"안제마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입니까?"


행인은 아마 이 교회의 신도처럼 보였는데, 안제마씨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안제마 씨는 생명과학과 물리학, 철학에도 박사 학위가 있으시고... 어쩌고 저쩌고..."


 들었을 때  자연과학 계열과, 철학 계열에 굉장히 높은 학위를 잔뜩 보유하고 있는, 과학자이자 신학자정도로 인상이 남았다. 아는 게 참 많은 사람이군. 하고 돌아서려는 찰나 누군가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는데, 나는 이게 필히 안제마씨라고 생각했다. 원래 꿈은 이렇게 영화처럼 돌아가기 때문이다.


"저는 무치와 다를 바 없습니다."


 뒤에 있는 사람은 묻지 않아도 안제마씨였다. 정확한 인상은 기억나지 않는데, 점차 인상을 기억하려고 할수록 그것은 내 무의식이 만든 그를 기억해 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에 와서 의식이 만들어내는 것이므로 생김새는 생략하겠다. 그저 똑똑해 보이는 사람 정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의 평범한 인상일 것이다. 무치라는 말은 또 무엇인가. 나는 써본 적 없는 말이다. 그저 '바보천치?', '무학도' 이런 말들이 섞여서 만들어낸 어휘일 듯싶은데, 듣기만 해도 무슨 뜻인지는 유추할 수 있었다. 어휘의 활용마저도 '안제마'란 이름에 걸맞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적어도 꿈속의 그는 남들은 하나도 갖기 어려운 박사 학위를 여러 개 가지고 있으며, 남도 똑똑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인물이었다. 객관적으로 보아 똑똑한 사람이 분명한데 어쩐지 무치라고 말하는 그는 겸양을 떤다기 보단 사실을 기술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박사 학위도 여러 개 가지고 계시다면서요?"


"그것은 인간이 알고 있는 지식들을 그저 잘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자연과 우주 전체의 지식들을 놓고 보면 티끌보다 작기 때문에 무치랑 별반 다를 바가 없죠."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었다. 적어도 의식을 가진 나라면 떠올려낼 수 없는 대답이다. 마치 분모가 무한대에 가까워질수록 분자가 아무리 커도 결국 0이 되어버리는, 고등학교 수학의 '극한'단원을 연상시키는 답변이다. 하지만 그것은 겸양이 아니라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이어 안제마 씨는 내가 묻지도 않은 것을 마치 나에게 필요한 대답을 내어주듯 말을 더했다.


"죄란 것도 그렇습니다. 아주 악랄한 살인범이나 선량한 시민이나 인류 전체로 보면 결국 티끌이고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수없이 많으니깐요. 우리는 그런 식으로 죄를 보아야 합니다."


 이는 과거에 모든 것을 용서해 주는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죄인에게는 너무 달콤한 제안이고, 피해자에겐 너무 잔인한 말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던 나의 물음에 대한 대답처럼 느껴졌다. 꿈 속에서 나는 그저 "아 예..."하고 돌아섰다. 뭔가 그에게 엄청나게 감동하거나 심취한 것이 아니라 그래도 꽤 설득력이 있네. 정도, 고개를 갸우뚱하기 전에 두세 번 끄덕일 수 있는 정도의 공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 후에는 갑자기 점심이 되어 사람들이 그 교회를 향해 돌은 던졌는데, 여기서 잠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깨자마자 얼른 휴대폰에 메모장을 켜 물음과 대답을 적었다. 아마 그렇지 않았더라면, '꽤 생경한 꿈을 꿨었는데... 뭐였더라.' 하며 휘발되었을 테지만 순발력과 기묘한 불안감 같은 것이 이 이야기를 꺼내주었다. 물론 공룡의 뼈를 보고 생김새를 예측하는 것만큼이나 정확성은 떨어질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지금의 나는 의식적이어서, 자꾸 의식이 더해지기 때문에 말이다. 이 꿈을 통해 무언가 무신론적인 나의 마음에 변화가 생겼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저 확실한 것은 내 무의식은 간혹 의식에선 생각지도 못한 답변을 내려준다는 것이다. 그것이 의식의 내용이 조합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자는 동안 창의성이 발현되어 떠올린 해답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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