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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롱도로롱 Apr 20. 2023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 뭔가요?

인간실격이요.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문학에 조금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첫 구절.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 실격의 첫 부분이다. 사실 이 부분은 이 소설의 구성 중 두 번째로 등장하는 수기의 첫 문장이며, 그전에 세 장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소설은 액자식 구성으로 작가인 화자의 이야기와 소설 속 주인공 "요조"의 수기,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이 수기를 얻게 된 계기에 대한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짧은 소설에서 "요죠"의 수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그것을 인간실격 본연의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인간실격의 내용이나 다자이 오사무의 담담한 어조에 대한 칭찬은 사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루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저 내가 왜 이 기분 나쁜 내용만 잔뜩 담은 소설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첫 번째 이유는 책에 담긴 철학이다. 남과 다른 자신을 혐오하고 그렇다고 남을 무척 긍정적으로 보거나 동경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세상이라는 커다란 규칙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신기하고, 그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자신을 마땅치 못하게 생각하고 그들과 융화되기 위해,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익살"이라고 하는 가식을 떠는 삶을 동정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 애인에게 '착한아이 콤플렉스'라고 불리던 나의 삶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남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설득의 과정에서 생길 마찰을 두려워해 가식적으로 사람을 대하던 나를 동정하게 만들고, 어쩐지 작중 화자인 '요조'를 이해하게 된다. 또한 자신의 가식을 부끄러워하는 요조의 이야기를 들으며 읽는 나조차도 나의 부끄러움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책을 읽는 동안에는 솔직하게 그것을 털어놓게 된다. 먼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낸 사람의 앞에선 상대방도 유약한 면을 드러낼 수 있기 마련이다. 이 점이 이 책을 읽을 때 진정으로 책과 소통하는 기분을 느끼는 이유일 것이다. 비단 내가 아니라도(정도는 다르겠지만) 누구나 모두 저마다의 가식을 갖고 살아간다. 이것은 홀로 살지 않는 '인간'인 이상 누구나 짊어져야 할 십자가고, 운명이다. 특히나 전 국민이 전범이 된 일본의 경우는 더욱이 부끄러움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 책이 널리 사랑받은 이유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둘째로는 요조의 생각이다. 소설의 화자인 요조가 하는 어둡지만 참신한 생각들은 나를 즐겁게 한다. 일례로 '과학의 공포'와 '죄의 반의어'에 대한 생각 등을 들 수 있다. 인간은 세상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내가 어떤 말을 할 때 상대방의 반응에 대한 공포가 대표적이다. 이는 사랑의 경우에선 고백의 성패나, 선물을 받은 상대방의 표정, 입을 맞추거나 손을 잡을 때, 혹은 잠자리를 보내고 나서도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는 순간의 공포는 인간인 이상 결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요조는 여기에 '과학의 공포'라는 참신한 비유를 든다. 우리 손에는 당장이라도 몸을 망가뜨릴 수 있는 수많은 병균이 존재하고 우리가 먹는 음식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구태여 그것을 떠올리지 않음으로써 그런 것들은 보이지도 않는 유령이 되어버린다. 인간에 대한 공포 역시도 굳이 떠올리지 않으면 유령처럼 만들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정확히는 설명을 못하겠지만 남의 반응을 기다리는 찰나의 순간 늘 안절부절못하며 공포감에 사로잡히는 사람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죄의 반의어를 떠올리는 부분이다. 악의 반의어는 선, 빛은 어둠, 사랑엔 증오가 있다. 하지만 죄에는 회개, 고백 등등 뭔가 상반되어 보이는 것이 없다고 한다. 나도 모쪼록 생각을 해봤으나 쉽게 떠오르는 예가 없었다. (무죄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법에 없어도 수없이 많은 죄속에 우리는 살고 있음을 떠올려보자.) 그나마 용서나 구원 같은 종교적인 것들을 붙였을 때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서술하지 않았지만 짧고 간결한 문체. 재치 있는 비유. 씁쓸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피로하지 않게 이끌어갈 수 있는 문장들도 당연 매력적이고 내게 지대한 영향을 준 만큼 좋아하는 이유이다. 책이 굉장히 짧고, 잘 읽히기에 많은 이들이 읽어줬으면 한다. 실제로 내가 친구의 생일에 주로 주는 책이기도 하다. 그것은 나와 같은 감정을 느껴줬으면 하는 나의 작은 바람이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인데 인간실격과 이 영화는 무섭도록 닮아있다. 인간실격을 영화로 풀어낸 것이 이것이나 다름없으니(익살꾼, 사진에 대한 묘사는 거의 오마주) 그것도 추천한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정원 연못가에 서서 고개를 왼쪽으로 삼십 도쯤 갸우뚱 기울이고 보기 흉하게 웃고 있다."

"정말이지 괴상한, 왠지 추하고 묘하게 욕지기를 느끼게 하는 표정의 사진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괴상한 표정의 소년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 인간실격 도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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