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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롱도로롱 Aug 06. 2024

여름밤에 있었던 일

민물장어 이야기

벽에 금연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는 곳은 사실 재떨이나 다름없다. 그만큼 여기서 담배를 많이 피운다는 말일 테니까, 그것은 금지라고 말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흡연을 조장하고, 한숨이 필요한 사람들은 으레 그런 곳에서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모종의 동료의식을 느끼고 약간의 죄책감을 담배를 멋지게 털어내는 습관으로 잊어가며 꽁초를 더해 간다. 나는 그것들을 지나치며, 이제는 시니컬해질 대로 시니컬해진 젊은이들의 거리낌 없는, 어둡고 눅눅해져 젖은 꽁초와도 같은 사상 같은 것을 느낀다.


그런 골목을 지나다 보면 노인들 역시 볼 수 있다. 그들의 하루의 일과를 대충은 알법한 나이 지긋한 노인은 희미하게 노을이 지는 금빛의 양달을 피하려 아주 조금씩, 옆으로 앉을자리를 바꿔가며 그늘을 찾는다. 자신이 어릴 적에는 발명조차 되지 않았을 법한 유모차를 끌고 말이다. 그들에게 유모차는 아이를 싣고 다니는 물건이 아니라 아이처럼 홀로 걷는 것이 힘이 들어진 자신을 지탱해 주는 보행기이자, 가방인 것이다. 보고 있자니 부쩍 늙는 것이 두려워진다. 젊은 날도, 늙은 날도, 늙어가는 날들도 모두 공포와 두려움이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골목에서 마주할 때마다 피해 갈 수 없는 나이 듦에 씁쓸해하고 그들은 어쩌면 자신의 과거를 골목에서 마주할 때마다 돌아올 수 없는 과거에 씁쓸해하고, 어쩌면 그런 골목길에 꽁초가 쌓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현관문을 열면 더운 열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몰아치고, 나는 대단한 결심을 하지 않고서는 창밖에서 보기에는 너무도 아름다운 밖으로 나서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만큼 나서지 않으면 나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점점 나약해져 가고, 나의 몸과 정신에서 녹물이 새어 나오는 것 같은 불쾌함을 느껴 불안한 마음으로 열기를 헤쳐나가곤 한다. 오늘은 그런 날 중에 하나인 것이다.


나는 동네 카페에 앉아 지난여름에는 무슨 일을 했었는지 떠올리다, 내 인생에서 가장 낭만적으로 기억하는 여름밤에 대해 떠올렸다. 당시에는 결코 잊지 못하는 날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또 몇 번의 의미 있는 날들이 지나가면, 그만큼 과거는 빛을 잃고 장롱 속에 처박혀 있다 이렇게 우연찮게 계절 지난 옷 속에서 발견한 만 원권처럼 나타나곤 한다.


2022년의 여름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꽤나 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때는 더위보다 말도 안 되는 강수량으로 더욱 악명이 높았는데, 서울이 물에 잠겨, 21세기에 자신의 집에서 익사하는 비극적인 일도 나올 만큼 이상한 여름이었다. 나는 공부를 한창 열심히 했어야 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어쩐지 새벽까지 술을 마셨고, 내가 살고 있는 기숙사는 1시에 문을 닫고 5시는 되어야 문을 열어주기 때문에 새벽 내내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됐다. 평소 같으면 기숙사 앞에 있는 피시방에서 게임이나 하며 시간을 보냈겠지만, 오래간만에 밖에서 보내는 새벽이기도 하고, 술도 마셨겠다 낭만이란 말을 사랑하는 나는 따릉이를 음주운전으로 몰며 한강으로 기약 없이 나섰다. 몇 개의 우연이 겹쳤는데, 마침 국회의사당 쪽으로 가는 길은 막혀있었고 나는 난생처음 한강의 왼쪽으로 자전거를 몰고 갔다.


공터가 나왔다. 사람은 없고 주인을 기다리는 자동차만 몇 대 있는, 그야말로 空터였다. 나는 한참을 거기에 앉아, 시커먼 강물과 그 뒤로 밝게 빛나는 빌딩들을 보며, 이제는 한강이 서울사람들에게 미관 이상의 어떤 쓰임이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제는 저런 시커먼 물들을 다 메워 두고 높은 빌딩을 짓는 것이 더욱 '인간적'인 행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 오른쪽에서 희미하게 방울 소리가 들렸다. 무당이 흔드는 그런 방울소리 말이다. 강아지 목에 달린 방울보다 훨씬 요란하고 시끄러운 소리였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소리를 따라 한강 강변에 수풀로 향했다. 방울 소리는 점점 더 선명하게 들렸고, 새카만 하늘에 꿈틀거리는 그것을 발견했다. 요란한 방울소리에 맞춰 몸을 흔들던 그것은 장어였다. 방금 막 잡아 올려져 몸을 뒤트는 장어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낚아 올린 노인은 그것을 움켜잡고 바늘을 빼서, 페인트통처럼 보이는 곳에 넣었다. 방울은 낚시찌에 달려있던 것 같았다. 나는 방금 본 풍경이 얼마나 서울, 한강 이런 것과 어울리지 않는지를 느끼며 페인트 통을 살폈다. 명백하게 살아있는 장어가 통 안에 들어있었다. 나는 페인트통 옆에서 그 노인과 말없이 앉아있었다. 내가 장어를 구경하는 동안 노인은 말 한마디 걸지 않고, 미끼를 갈고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다시 낚싯대를 던졌다.  


먼저 말을 건 것은 내쪽이었다. 이런데에서도 장어가 잡히다니 신기하다는 식으로 물었다. 그 노인은 얼마 전 물이 많이 와서 하천이 범람했고 이럴 때 물가에서 장어가 많이 잡혀, 지금 한강변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장어를 낚기 위해 나와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터에 주인을 기다리는 자동차들이 떠올랐다. 나는 한참을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하다가,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 갑작스레 내 고민들과 불안함을 토로했다. 진로나 쓸데없는 우울, 젊어서 하는 고민 같은 것들이었다. 노인은 나름의 무슨 대답을 하다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한국의 근현대 소설에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당신께선 스무 살에 상경하여 생선을 리어카에 실어 파는 일을 했단다. 아현부터 충무로까지 도로에서 자동차와 경주하며 생선을 팔았단다. 그러다가 군대에 가야 하게 되자 전세금을 모두 빼서, 그 돈으로 군대를 빼려 했는데, 자신을 불쌍하게 여긴 병무청 직원이 그냥 면제를 시켜줬고 그 돈으로 노래방을 열어 매니저와 도우미들을 섭외해서 물장사를 했단다. 그러다가 거기서 결혼도 하게 되고, 감옥도 가게 되고, 출소를 해서는 정치깡패로 일을 하다가 또 동업자와 술집을 열고, 나중에는 그것도 잘 안되게 되어 자신의 형님의 추천으로 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하고, 그 길로 중국에 공장을 만들러 가게 되고, 큰돈을 벌뻔했으나 그러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지금은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한문단으로 짧게 요약했지만 그 안에는 믿기 힘든 우여곡절과 진짜 실화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세부적인 정보들, 오늘날의 시선에서 보면 썩 이해가 안 가는 일들까지 거의 4시간 동안 아주 씁쓸한 70년대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약간 영화 국제시장의 다크 한 버전? 뭐 그런 셈이다. 분명 과거만 들어서는 이 노인이 무서워져야겠지만 어쩐지 그런 기분은 별로 들지 않았다. 그저 별거 아니어 보이는 사람의 인생에도 이렇게 거친 단면이 있고, 빌딩아래 수풀에선 민물장어가 살고 있고 나는 그저 방울 소리 하나 때문에 평생 동안 모르고 살았을 이야기를 알게 된 것이 더욱 신기하고, 한편으론 낭만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와 헤어진건 7시가 거의 다 되어가서 해가 다 떠서, 검게 보이던 강이 회색빛으로 보일 때였다. 그는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열심히 살라고 하며 자신이 쓰던 라이터를 줬고, 그 라이터 덕분에 나는 꿈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그런 클리셰 같은 일도 있었다.


그날을 떠올리니 엄청나게 오래전 일인 것 같지만 고작 2년 전이라는 것이 신기하다. 아마 올여름에도 그 노인은 한강 어딘가에서 민물장어를 낚고 있을 것 같다. 다시 만나게 될 일은 없겠지만 희미한 그리움을 느낀다. 부쩍 우울해지는 요즘이다. 사람은 우울해질수록 머릿속엔 미래보단 과거가 가득 찬다. 과거의 행복과 더불어 과거의 후회가 같이 떠오른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때가 되면 눈을 감으나 뜨나 나를 괴롭히는 더위처럼, 후회도 마찬가지이다. 가을이 와 더위가 지나길 기다리듯, 그것도 그저 지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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