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7호선을 타고 청담을 지나 뚝섬에 도착하는 구간엔 다리를 지나게 된다. 어두웠던 지하철이 일순간 밝아지며 드넓은 한강이 보이는데 꽤나 장관이라 몇몇은 사진을 찍기도 하고 말없이 쳐다보기도 한다. 내가 서울에 처음 왔을 때는 당산역에 살았는데 거기도 이것과 마찬가지로 한강이 펼쳐지는 지하철역이었다. 서울에 처음 왔던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넓은 한강이 더 넓은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물고기들은 어떻게 사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갑자기 짜지는 물에 적응하며 살았으려나, 갑자기 지방 소도시에서 서울로 흘러들어버린 나처럼 말이다.
뚝섬에서 내려다 보이는 한강 한켠에 오리배들이 보였다. 유원지라는 말과 함께 나와야 할 것 같은 오리배가 뜬금없이 한켠에 떠있는 것이다. 오리배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면서도 꽤 낭만적인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유년기에 이렇다 할 대단히 행복한 기억은 없지만 동심, 유년기 이런 것에 많은 동경과 그리움을 느낀다. 현실의 고통이 모두 소거되어 버린 행복한 시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무지의 행복이라고 불러도 좋다. 물론 그때는 그때의 고통이 있었겠지만 말이다. 아무리 불량한 고등학생이라도 대여섯 살 때부터 나쁜 아이는 없다. 하얀 백지상태인 것이다.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누구는 모범생이 되고, 누구는 전과범이 되며, 누구는 겸손하고 누구는 건방지다. 나는 그들이 유년기의 자신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무언가 깨닫는 것이 없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다 나는 어른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래서 그날 오리배를 타기로 결심했다.
뚝섬에는 정원 박람회가 열렸다. 무슨 우주에서 온 것 같은 꽃들도 심어져 있고, 한편엔 천막마다 식물과 관련된 상품들을 판매하는 부스가 즐비했다. 날도 밝고 바람도 불고, 온 천지에 풀과 꽃이니 절로 행복해지는 것 같았다. 오리배는 의외로 비쌌다. 30분에 3만 원인가 그랬는데, 낭만이 워낙 값이 나가기 때문에 그런갑다 하고 배에 올랐다. 운영자분께서 힘드시면 버튼을 눌러 모터를 돌리시고, 낭만으로 하시려면 페달을 밟으라고 하셨다. 운동을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있기 때문에 페달도 돌리고 모터도 돌리니 오리배가 씽씽 갔다. 강물은 한 뼘 밑에서 흐르고 다리 사이론 해가 들어오고, 어린아이들이 타있는 오리배들이 떠다니는 걸 보면, ‘행복 뭐 별거 아니다’ 이런 건방진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란 건 어찌 됐든 호르몬으로 이뤄진 생물이기에 이렇게 날 좋은 날 해를 쬐면 행복해진다.
어려서도 못 타본(기억 안에서) 오리배를 어른이 되어 타봤다. 어린이가 될 수는 없지만 어른이 되면 어른의 고통이 있듯 어른의 행복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 행복은 쉽게 잊고 우울은 오래간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당연한 것이고, 당신 옆에 행복해 보이는 이들도 저마다의 전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힘들 때는 모두가 행복했던 유년기를 떠올려 보도록 하자. 저마다에 오리배에 어린 자신과 나란히 앉아 페달을 굴러보자. 잃어버린 것들을 찬찬히 떠올리다 보면 가슴아래 뭉클하게 행복이 지하철 창으로 들어오는 노을처럼 따뜻하게 빛날 것이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