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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롱도로롱 Aug 29. 2024

현실은 이상같지 않지만, 행복은 숨어 있나니.

하츄핑과 이것저것

#1

급식시간에 선생님들과 밥을 먹으며 "하츄핑"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어린 딸을 키우시는 분들이 많아서, 나는 시청해본적 없는 만화영화의 캐릭터와 그들의 굿즈때문에 쓰게 되는 돈, 금방 바뀌는 아이들의 관심사에 따라 한켠에 내던져지는 오래된 장난감 같은 것들을 들었다. 나는 그랬지...하는 마음과 함께 하츄핑 인형 같은것에 금방 행복해질 수 있는 아이들이 부러워졌다. 나도 아주 어렸을적엔 만원도 안되는 장난감에 일주일간 즐겁곤 했던것 같다. 걔중에 가장 큰 행복은 "닌텐도DS"였는데 초등학생이던 시절 '동물의 숲' 광고를 티비에서 처음 접하고 시험을 잘보면 닌텐도를 사달라고 졸랐던 것 같다. 이것저것해서 30만원 조금 안되는 돈을 들여 사왔는데, 그것을 처음 한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마트에서 집까지 컴컴한 길을 걸어 동물의 숲에 접속하니 마치 현실의 날씨처럼 눈이오고, 허름한 구멍가게에서 대출빚을 값으라는 너구리를 말이다. 그날 나는 행복했던것 같다, 아마 그 주, 그 연말 내내 행복했던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그보다 훨씬 큰돈을 써도 도무지 행복이란 놈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저 불행하지 않다 정도의 감정적 만족감만이 "이제 너는 어른이야"라고 말해주는 듯 하다.

또 언제 행복했는지 생각해보면 중학생시절 PSP를 사서 '몬스터 헌터'라는 게임을 밤마다 형과 했던것 같다. 그때는 한침대를 썼기 때문에 원활한 의사소통으로 밤늦게까지 컴컴한 방에서 화질 안좋은 게임기로 게임을 했었다. 분명 눈은 나빠졌을테지만, 그 시간 만큼은 즐거웠다. 나이가 들수록 행복의 값이 비싸지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콜릿 하나로 행복한 나이를 지나, 하츄핑 정도는 되어야 행복하다가, 좋은 차, 좋은 집 정도는 되어야 행복할때가 되어 가는 것일까? 분명 아닐테다. 대신 이제는 행복한 점을 찾아야 행복해질 수 있는 '행복의 기술'이 필요한 나이가 되어버린게 아닐까. 오늘 처럼 푸른 날씨에 좋은 노래를 들으며 그늘아래 앉아 있으면 느낄 수 있는 행복은 하츄핑 정도는 되지 않겠는가.


#2 

교장님이 퇴임을 하셨다. 아직은 나에게 있어 유일한 교장님이라 평소에 친하게 지내진 않았지만 헛헛한 마음이 든다. 교육학에서 초두효과라는 것이 있는데, 처음 본 것은 더욱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는 것이다. 첫학교, 첫사랑 이런 것 처럼 말이다. 처음은 어쩐지 모두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퇴임식이라 해봐야 회의실에서 교사들끼리 모여 꽃이나 전달하고, 한마디씩하고 박수갈채로 끝내는 분위기겠거니 생각했는데, 역시 교장이라는 직위때문인것인지, 주변에 사람이 많으신 성품 때문이신건지 몰라도 꽤나 거하게 치러진 듯 했다. 퇴임사 대신 당신께서 살아오셨던 것을 무려 PPT로 설명하셨는데, 늦어진 퇴근에 기분이 언짢으려다, 40년 선배의 마지막 수업이라고 생각하니 괜스레 뭉클한 마음이 들어 나름 경청했다.

역시나 드라마 같은 삶이다. 아주아주 똑똑한 사람의 아주아주 성공한 삶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갈무리해서 보면 중간중간 비극도 많을테지만 멀리서 보면 완연한 우상향의 삶처럼 보인다. 나스닥 지수의 월봉을 보는것 같달까. 우리도 지금이 너무도 힘들다면 삶을 조금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리라. 



#3

고3 2학기가 되면 학생들은 나무늘보가 되어 버린다. 가뜩이나 공부에 관심이 없는 애들도 많은 우리학교는 3학년 2학기가 되어버리자마자 공부에 관심이 있던 학생들도 가세하여 엎어져 버린다. 이것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역시 수시라는 전형은 3학년 1학기 까지의 성적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아마 대학도 입시 정책의 운영상 어쩔 수 없겠지만, 아이들을 보면 허탈해진다. 나도 빈 책상에 같이 엎드리고 싶어질 지경이다. 그나마 한명씩 깨워 옆에 좀 서서, 앞으로 뭐하고 살거냐 같은 것이나 물어보며, 그래도 나도 무언가 교육활동을 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자위를 하지만 한편으론 책상에 거북선처럼 송곳이라도 빼곡하게 박아 엎드리지 못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한다.

참 가여운 아이들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나 아예 관심 없는 아이나 모두 가엽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의 고통은 너무 잘 알고 있고, 아예 관심 없는 아이의 고통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내가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인정하고, 잠깐 깨어있는 동안이라도 즐겁고, 응원이 되도록 돕는일 뿐이다. 학생들은 내 글을 읽을 수 없겠지만 모두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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