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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롱도로롱 Sep 25. 2024

화를 내는 이유와 내지 않는 이유.


요즘 내가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있다. 그것은 ‘세상이 나를 억까(억지로 깐다.)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별것도 아닌 걸로 화를 내고, 구매한 음료엔 커다란 파리가 들어있고, 카페의 의자가 고장이 나서 앉자마자 뒤집어지거나 갑자기 추워지고, 갑자기 이갈이가 심해지고, 갑자기 만성피로가 생기는 그런 일들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화가 불쑥 올라왔다가 그것을 삭이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데, 그때 발생하는 독소(아마 무슨무슨 호르몬)가 임계점까지 와버렸다고 할 수 있다.


나는 화를 잘 내지 않는다. 그것은 화가 잘 나지 않는다와는 다르다. 화는 아주 잘 난다. 하지만 화를 내는 것이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내지 않는다. 화를 내는 목적에는 첫째로 ‘그냥 나니깐’, 둘째로 ‘상대방과의 논쟁에서 감정적 우위를 갖기 위해’, 셋째로 ‘제 3자에게 만만하지 않은 인상을 주기 위해’ 등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응당 이런 이유들은 어떤 상황에선 효과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화를 안내는 큰 이유는 화를 내고 나서 그 상대방과의 서먹하고 서늘해지는 관계가 너무도 싫기 때문이다. 그것은 갈등 상황보다도 나에게 더 큰 고통이다. 때문에 나는 사람들이 화를 낼 때,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기분이 나쁘기에, 그 후에 다가올 냉전상태를 차치하고라도 화를 내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갖곤 한다. 게다가 화를 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이다. 가령 내가 아끼는 물건을 누군가가 잃어버려서 화를 냈다고 생각해 보자. 화를 내면 무엇이 바뀌는가. 잃어버린 물건은 돌아오지 않을 테다. 혹자는 다시 빌려줬을 때, 더 관리를 잘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너무 나중의 일이다. 게다가 화를 내서 더 관리를 잘하고 화를 안내면 관리를 안 하고라고 생각해 보면 그냥 그 사람한테 물건을 안 맡기는 편이 좋다. 마지막으로 화를 낼만큼 명확하게 잘잘못이 나눠진 일들은 많지 않다는 이유가 있다. 범죄가 아니라면 ‘이것이 화를 낼만한 일인가?’ 싶은 일의 기준은 개인차가 너무 크다.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갑과 을의 입장 사이의 스펙트럼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 사이의 일은 더욱 그렇다. 연인이나 친구 사이에 발생하는 연락의 문제 따위도 둘 사이의 스펙트럼에 따라 잘잘못이 갈린다. 정리하자면, 화를 잘 내지 않는 이유는 ‘후처리가 싫어서’, ‘변하는 게 없어서’, ‘화낼 일인지 명확하지 않아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화를 낸다. 물론 화를 내서 내가 변하거나 상황이 변한 적은 거의 없다. 그냥 서로 기분만 상하고 끝이다. 상대방은 좀 후련했으려나? 하는 의문은 들지만 아직 내 기대 속에 있는 ‘응당 사람이라면 이럴 것이다’하는 마음은 나에게 화를 낸 자들도 날 볼 때마다 썩 불편한 마음이 들고, ‘괜히 그랬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으리라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의 서술을 보면 나는 마치 화라는 것을 완전히 통달한 현자같이 말하며 다른 사람들을 화를 참지 못하는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폄하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도 지향점을 말하는 것뿐이지 나도 화를 낸 적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게다가 요새는 이런 나의 신념이 흔들리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참느라 발생하는 고통이다. ‘저 사람도 이런저런 이유로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같은 정당화로 주로 화를 삭여왔는데, 이제는 불쑥 ‘그런데 나는 참았는데, 저 사람은 왜 안 참지?’하는 마음이 들고 있다. 경제를 조금 배운 사람이라면 ‘용의자의 딜레마’라는 상황을 게임이론을 배우며 접해봤을 것이다. 대충 용의자 두 명이 잡혀 들어가면 둘 다 자백을 하는 편이 이득이라는 얘긴데, 둘이 싸우게 되면 화를 일단 내는 편이 우월한 전략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명이라도 화를 내면 어차피 ‘냉전’ 상태는 발생할 테니 말이다.


어쩌면 이젠 화를 내고 싶지만 안 내고 사는 게 너무 익숙해져서 제대로 기깔나게 화내는 법을 잊어서 화를 못 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사실 때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 나를 명명백백하게 화내게 만들 일을 해줄 때를 말이다. 그때는 탱화에 나오는 야차처럼 무서운 표정과 기깔나는 단어들을 사용하여 화내는 연습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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