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와 코즈믹 호러.

by 오로롱도로롱


요즘따라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가을을 탄다기엔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한여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날씨였기 때문에, 오히려 ‘사춘기’가 왔다고 하는 편이 좋다. 나는 기억에 사춘기랄 것이 크게 오지 않았었다. 반항심이 들고, 온몸에 화와 털이 자라나며, 이성에의 엄청난 관심이 생기는 그런 증상은 썩 오지 않았다. 아마 그런 마음이 들다가도 당장에 공부해야 하는 것들과 고민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자연스레 한편으로 밀려났으리라. 그리고 얼추 바쁜 것이 끝나고, 인생에서 무언가 ‘쫓을 거리’가 사라진 오늘날 다시 사춘기는 원금과 이자를 받으러 온 사채업자처럼 현관문을 부수고 찾아온 것이다.


사춘기가 와버린 나는 아득히 먼 곳에서 느껴지는 은근한 불안과 공포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것은 어찌할 수 없어 보여 더욱이 나를 우울하게 하고 슬프게 한다. 이런 불안과 공포는 10대가 사춘기 때 느끼는 것과는 아주 다른데, 10대의 경우는 ‘몰라서’ 생기는 불안이라면 나의 경우는 ‘알아서’ 생기는 불안이라는 점이 그 차이다.

가령 무섭게 치솟는 서울시의 부동산을 보자. 나는 언젠가는 부모의 손에서 영영 벗어나 자신만의 소득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미 일부 그렇게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결혼을 하고 집을 사는 것은 다른 일이다. 집값은 나날이 오르고 있고, 내가 당장 내일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아마 더욱 올라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명하게도 언젠가는 가격이 어떻든 나도 내가 누울 집을 사야 한다. 나는 나의 임금 상승률과 미래 기대수익을 거의 정확하게 알고 있다.(사실 유튜브에 치면 나온다.) 때문에 나의 미래는 예견된 비극(?), 대출이다, 뭐다 그런 것으로 점철되어야 한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손쉽게 이런 미래에 대한 공포다.


하나를 더 들어보자면, 국민연금 같은 것도 아주 예견된 공포라고 할 수 있다. 일할 사람은 줄고, 부양해야 할 사람은 늘어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일하는 사람이 더 돈을 내고 부양받을 사람은 덜 받는 수밖에 없다. 세부적인 것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결국엔 이렇게 되어 갈 것이라는 것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아마 나와 내 또래 모두 소득의 더 많은 부분을 지불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덜 받으며 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연금의 수혜를 받는 나이가 점점 늦춰져 그전에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이것 역시 또 하나의 공포다.


이런 공포는 너무도 자명하지만, 커다란 것이어서 내가 어디에 숨든 피할 수 없다. 마치 시간의 흐름, 죽음 같은 것이다. 그런 공포를 코즈믹 호러라고도 부른단다. 구글 검색 이미지론 엄청 커다란 괴물 같은 것들이 나오는데, 사실 그런 건 인류의 눈부신 발전으로 손쉽게 없앨 수 있을 것 같아 별로 코즈믹 호러라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사춘기의 나는 이런 공포에 떨며, 한편으론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한다. 죽을 걱정을 하느니 사는 것에 집중하는 편히 훨씬 행복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코즈믹 호러를 없애는 방법은 그것을 잊어버리는 것뿐이다. 세상은 원래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당장 눈앞에 있는 행복을 찾으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쾌락주의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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