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코를 먹다

by 오로롱도로롱

길을 잃으면 유행가의 유쾌한 가사를 생각하곤 한다. ‘길을 잃었다 따단다, 따단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길을 잃었다는 말 안에는 ‘목적지’로 향하는 길을 걷는 중이라는 잠정적인 결론이 숨어있는데 지금 나는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았으므로 길을 잃었다고 말할 수가 없는 상태다. 나는 최근 이런 느낌을 자주 받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지만 어디든 가야 한다는 압박 같은 것 말이다. 무언가 대단한 일인 것 같지만 나는 지금 별로 배도 고프지 않은 상태에서 어디서 저녁을 때워야 하는지 고민하던 중 발걸음을 쉽사리 떼지 못하고 있다. 햄버거를 먹을까 싶어 맥도널드로 천천히 걷다가 막상 맥도널드 앞에 서면 키오스크에 서있는 사람들과, 어질러진 가게 안 휴지통, 소스가 지저분하게 묻어있는 비닐과 그 비닐을 잡은 손에 찐득하게 묻는 불고기 버거의 소스를 생각한다. 그러면 금방 식욕은 떨어지고, 햄버거는 다음으로 미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어디로 가야 할까. 이어폰에서는 록음악이 나오고 있다. 영어를 꽤나 할 줄 알지만 팝송의 가사는, 더욱이 록음악의 가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어느 날은 그래도 노래를 듣는데 가사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가사를 검색해 보면 무척 웅장했던 음악의 가사가 옹졸하다는 것을 알고 실망하는 일도 있었다. 나는 그 이후로는 가사를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다. 애초에 가사가 없는 클래식 음악처럼 생각하는 중이다. 서부의 총잡이 같은 게 생각이 나는 음악이 시작되고 있다. 가사가 2분 동안이나 없는 노래를 들으며 도심을 걷는다. 총잡이도 사람인지라 매일 점심, 저녁을 어디서 먹을지 고민했을 것 같다. 이건 우리가 멋지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런 걸 보면 사람이란 건 결국은 먹고 자고 싸기 위해 움직이는 로봇일 뿐이라는 건방진 상상을 하게 된다. 두 번째로 도착한 곳은 국밥집 문 앞이다. 으레 ‘국밥 같다’라는 말은 그다지 좋지도, 그다지 나쁘지도 않지만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점이 매력이라는 뜻이다. 자기의 소개팅 상대가 자기에 대해서 주선자에게 ‘국밥 같다’라는 말을 쓰면 어떨까. 칭찬으로 한 말일지도 모르나 은근하게 신경쓰일정도로 기분이 나쁠 거 같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나쁘지는 않지만 좋지도 않다는 뜻이니 말이다. 국밥은 여름에 먹기는 너무 더운 음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겨울에는 종종 생각나긴 하지만 30도가 넘어 옷을 다 벗고 다니고 싶을 정도인 오늘날에 국밥을 먹는 건 썩 좋지 못한 선택임이 틀림없다. 여름엔 국밥도 국밥 같지도 못하구나 한다.




햄버거집과 국밥집을 모두 지나치니 이젠 정말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식당이 이렇게나 많은데 고작 밥 한 끼 때울 곳이 없다니. 인간은 본능적으로 맛있는 곳이 아니면 식욕이 생기지 않는 것일까. 알고 보니 내가 미식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일 것일까. 내가 맛있다는 식당에 데려가면 사람들이 별로 만족하지 않는 것을 보아 후자는 아닐 것이다. 슬슬 땀이 신경 쓰일 만큼 더워질 때쯤 타코집이 눈에 보였다. 사방으로 창문이 모두 활짝 열려 있어 타코집이 아니라 매표소 같은 인상을 준다. 주인이 타코에 굉장히 진심인 건지 멕시코 하면 떠오르는 것들, 이를 테면 요란한 무늬의 기타나 해골, 노란색과 초록색, 붉은색 줄무늬로 칠해진 담요 같은 게 온사방에 널려있다. 혼란과 무질서가 입을 모아 ‘타코’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특이하게 타코와 데낄라를 세트로 파는 집이다. 낮부터 술을 마시면 아직 남은 과제가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지금은 무언가 일상에 충격을 주지 않으면 이대로 영원히 굳어버릴 거만큼 권태로운 상태라 그것으로 주문했다. 골목에서 은은하게 들어오는 담배냄새마저 방금 입을 모아 얘기한 ‘타코’와 일맥상통한다. 멕시코에 가본 적은 없지만 멕시코에 길거리에도 왜인지 담배냄새가 날 것 같다. 멕시코인이 들으면 기분 나쁠 수 있겠지만 나쁘게 말한 것이 아니라, 그런 마초적인 분위기 말이다. 서부의 총잡이를 떠올리면 한족으로 꼬나문 시가와 카우보이 모자를 떠올리듯 말이다. 타코를 자주 먹어본 적은 없어서 맛있는 타코인지 맛없는 타코인지 구분할 수 없다. 타코보다는 타코와사비를 좋아하기 때문에, 좀처럼 타코집에 누가 가자고 해도 따라가 본 기억 이 없다. 하지만 이 집 타코는 꽤나 맛있었다. 소스가 줄줄 흐르는 게 흠이긴 하지만 그것 역시 ‘타코’라고 할만하다. 데낄라잔에는 소금이 칠해져 있고, 그 위에 레몬 슬라이스가 하나 올라와 있다. 샷 잔이기 때문에 쭉 먹고 레몬을 빨아먹는 게 데낄라를 마시라는 것 정도는 28살 정도 먹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렇게 먹어본 건 오늘이 처음이지만 말이다.



타코를 다 먹고 데낄라를 들이켜니 무언가 따뜻한 게 들어오는 게 느껴진다. 열아홉 살에 처음 술을 배울 때, 어머님이 빈속에 소주 한잔을 먹는 것이 별미라고 했던 게 생각났다. 그날은 참 행복했는데, 지금은 혼자 행복한 방법을 찾아야 할 나이가 되었다. 세상이 핑핑 돌만큼 취하진 않지만 약간 졸음이 오며 나른해지는 정도까지 취한다. 목적 없이 걷다 보면 이와 같은 좋은 우연을 마주할 때도 있는 법이다. 계산을 하러 가니 사장은 왜 이렇게 빨리 먹었냐며 말을 건다. ‘그야 혼자 왔으니까요’라고 대답하긴 무례한 거 같아 타코가 참 맛있다고 칭찬을 건넸다. 칭찬이 익숙한지 특별히 기뻐 보이는 내색은 안 하셨다. 그쪽도 나와 같이 수줍음이 많은 사람인가 보다 하고 넘길 수 있을 정도다. 배는 부르지 않다. 애초에 배가 고프지도 않았으니 상관없지만, 이제는 다시 과제를 하기 위해 카페로 가야 한다. 목적지가 있지만 가기는 싫다. 목적이 없는 사람과 하기 싫은 목적이 있는 사람 중 누가 더 슬픈 사람일까. 한 시간 사이에 둘 다 느껴본 사람임에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그래도 목적이 없는 거보단 싫은 목적이라도 있는 사람은 언젠가는 목적을 이룰 테니 더 행복한 게 아닐까 싶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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