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회 - 와이키키 브라더스

by 오로롱도로롱

나는 홀로 카페나 술집에서 영화를 보는 걸 취미로 하고 있다. 최근엔 바빠서 자주 그러지 못했는데, 오늘은 마침 쉬는 날이기도 하고 바빴던 일들도 얼추 정리가 되어서 영화를 봤다.

오늘의 영화는 (두구두구)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

나는 뭔가 차분한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기왕이면 옛날 영화를 보고 싶고, 밴드 나오는 영화도 좋아해서 골라봤다. 게다가 나의 고향 '충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들어서 언젠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주 큰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아주 백점만점에 백점을 주고 싶을 정도로 재밌었고, 이제는 대배우가 된 분들의 초창기 모습도 굉장히 신선했다. 아래는 약간의 줄거리 요약과 영화를 보면 들었던 잡생각을 두서없이 써보도록 하겠으니, 영화를 보고 읽어 보셔도 되고, 안 보고 읽으셔도 된다.


대략의 줄거리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라는 유랑 밴드가 있는데 상황이 썩 좋지 않다. 노래방이 생겨서 이런 밴드세션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돌고 돌아 이들은 충주 수안보에 있는 '와이키키 나이트'에서 밴드를 한다.

밴드의 리더 격 되는 '성우'의 충주는 고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연하게 고등학교 밴드부 친구들을 만나 과거를 회상한다. 성우의 아역은 무려 박해일. 처음 밴드를 하며 즐거웠던 추억과 첫사랑을 떠올린다. 한 친구는 약사가 되었고, 다른 두 친구는 각각 환경운동가, 시청 건축과 직원이 되는데 뒤에 둘은 수안보 온천 개발을 두고 갈등한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잠시 안정을 찾는 듯하다가도 여전히 상황은 좋지 않다. 멤버들은 사고 치고, 짤리고 흩어진다. 성우는 첫사랑 인희를 다시 재회하는데 인희 역시 상황은 좋지 않다. (걍 다들 힘들다.) 그 뒤로도 그저 힘들고, 그 안에서 조금의 희망을 보고, 다시 힘들고 그런 반복이다. 성우는 홀로 남아 노래방 반주가로 나체 중년들의 유희를 돕다가 어렸을 시절 찬란한 과거를 생각하며 기타를 친다. 부르는 노래는 <아파트> 끝에는 인희와 키보드를 맡은 정석, 셋이서 여수로 떠나 또 다른 밴드를 하며 마친다.

영화의 색감이 참 좋다. 필름카메라로 찍은 듯한 색감이다. 2000년대 초반이 아니라 70년대 작품이라 해도 믿을 정도. 충주의 풍경은 어딘가 익숙하긴 하지만 정확히 어딘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쩐지 그리워지는 면이 있다. 아무래도 밴드 노래다 보니 옛날 노래들도 많이 나온다. 특히 송골매의 '세상만사'라는 노래가 인상적이었는데, 그걸 들었을 때도 어쩐지 그리움 같은 감정이 느껴진다. 여러분도 예전 노래들 가령 김광석이나 김현식, 이문세의 노래를 들으면 '그리움'비슷한 감정이 솔솔 피어나지 않는가. 나는 그것이 참 신기하다. 경험해 본 적 없는 과거에 대한 향수가 고작 99년생(빠른)에게 왜 드는 것일까. 언젠가 썼던 것 같지만 나는 유년에 대한 기억이 썩 없다. 아주 파편적이다. 중고등학교 때 기억은 물론 있지만 그닥 즐거운 기억은 아니다. 늘 시험과 씨름하고, 피로와 스트레스로 점철된 삶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영화에서 찬란한 학창 시절이 나오면 그리워지곤 한다. 학습된 그리움일지도 모른다. 가끔 내가 일하는 학교에서도 아주 행복해 보이는 학생들(정말 아주 가끔)을 보면 그립기도 부럽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그리움'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정이어서 그런 유년찬가적인 영화나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경험해 본 적 없는 것에 대한 향수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다들 한번 고민해 보자.


또 하나는 세상의 슬픈 진실이다. 우리는 대부분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모두 특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단지 남들보다 잘나고 싶다는 것이 아니다. 모두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싶어 하지 않고, 특별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그것은 어렸을 때는 뾰족하게 빛나다가, 어른이 되고, 세상을 알수록 닳고 닳아서 평범한 자신에 대해 체념 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사람이라도 조금이라도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순간이 오면, 그때의 그런 마음이 피어오른다. 나는 그런 공간 중 하나가 '노래방'이라고 생각한다. 노래를 잘하든 못하든 여럿이 노래방을 가면,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가수, 나머지 사람은 관객이 된다. 그들은 좋든 싫든 나의 노래를 듣고, 박수를 치고, 비참한 실력이라도 치켜세워주기도 한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멤버들은 어쩌면 돈이 아니라 그런 특별한 자신에 대한 욕구 때문에 이러한 유랑생화를 지속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음악'이나 '돈'을 쫒을 것이었으면 진즉 관뒀어야 한다. 하지만 슬프게도 영화의 등장인물은 모두 평범하거나 혹은 평범에서 약간 아래다. 그런 인간들이 카바레(나이트클럽?)에 와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춘다. 그럼 그 순간만은 평범한 자신을 잊고 잠시동안 특별한 인간이 될 수 있다. 아마 그리곤 다음날 다시 회사에 가고, 장사를 하며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갈 것이다. 얼마나 가엾은가. 우린 모두 백조가 되고 싶은 미운 오리들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것을 드러내면서 오히려 우리를 위로한다. 당신만 미운 오리가 아니라 모두가 미운 오리이며, 당신의 좌절, 슬픔도 평범한 것이니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아무튼 난 그래 느꼈다.

박해일 씨가 세상만사를 잠깐 부르는 장면이 가장 좋았다. 박해일도 좋은데 노래 가사가 좋았다.

"세상만사 모든 일이 뜻대로야 되겠소만 그런대로 한 세상 이러 구러 살아가오" 이런 가사다. 전국을 유랑하며 이렇다 한 미래도 보장되지 않고, 늘 불안과 싸워도 행복한 순간은 있다. 평범하게 사는 우리들도 가끔은 특별해지는 순간이 온다. 자신이 권태와 불안과 싸우는 중이라면 아마 당신 반경 100m에 있는 인간들은 애나 어른이나 다 비슷한 싸움을 하고 있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거다. 세상만사가 다 그런 거니 말이다.

*이동진씨 필력이 기가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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