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도 스승 할 수 있어.

스승의 날 주간 글쓰기

by 오로롱도로롱


날이 눈에 띄게 더워졌다. 하천에 듬성듬성 양귀비와 금계국이 올라오고, 산책하는 사람들의 옷도 짧아졌다. 5월은 놀기 좋은 달이다. 일 년에 몇 없는 덥진 않은데, 또 춥지도 않고 바람이 살랑 불어오면 좀 쌀쌀한가 싶다가도 햇빛을 받으면 금방 따땃해지는 그런 날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미리 아신 우리 선조(부처님도)님들은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5월에 세팅해 두고, 하나 더 껴서 '스승의 날'을 5월에 더했다. 어린이도 어버이도 아니지만, 나름 스승이라고 5월이 되면 나를 챙겨주는 누군가가 생기는 것은 보람되고 행복한 일이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남자 고등학교에서 스승의 날은 사실 보통의 하루와 별반 다르지 않다. 칠판에 요란한 그림을 그리고, 자기네들끼리 천 원씩 모아서 산 케이크나 좋아하는 선생님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건 기대하기 어렵다. 그저 몇몇 다정한 남학생들이 축하한다고 말하고(무엇을...?), 또 몇몇 섬세한 친구들(상위 1%에겐남)이 짧은 글귀에 가까운 편지를 주는 정도이다. 17~19세 남성들의 행동들을 보고 있자면 '성차'라는 것이 사실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들이 허무맹랑하게 느껴진다.


첫 발령을 받았을 때, 내 친구들 중 일부는 공학에도 가고, 누구는 여고에서 잠시 교사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이 3월이 되면 벚꽃나무 아래에서 반 친구들과 찍은 단체사진을 프로필사진으로 해두고, 5월이 되면 스승의 날이라고 적힌 칠판 앞에서 찍은 단체사진을, 졸업시즌이 되면 졸업생과 찍은 사진 등등으로 변모해 가는 것을 보며 내심 부러움을 느낀 적도 있다. 교사는 저임금 아이돌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나는 무언가 학생들이 주는 관심과 사랑을 보람으로 하기엔 어려운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나 역시 꽤나 무미건조한 사람이므로 그런 멋진 관심을 받아도 그만큼 돌려주지 못하는 것이고, 어쩌면 지금 다니는 학교처럼 학생과 교사가 서로 어떠한 사랑의 채권과 채무도 없는 관계가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해는 어쩐지 가슴 찡한 편지를 받았다. 상대방은 방통고에서 작년에 담임을 맡았었던 학생인데 나보다 약 45살 정도 많으시다. 내용은 본인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어 행복하다는 것, 그러한 학교에 내가 있어 더욱 힘이 난다는 것과 올해는 담임을 안 하게 되어 아쉽지만 그래도 같은 공간에 있어 위안이 된다는 것이었다. 문자만 보면 무척이나 어른스러운 17세 여고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무언가 수줍음과 생기가 느껴지는 글이었다. 역시 이런 보람으로 사람들이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의 관심도 이렇듯 큰 관심으로 돌아오는 경험을 통해 더욱 관심을 쏟게 되는 것 말이다. 그래서 나도 나에게 아주 미미한 관심만 주는 남학생들에게 큰 관심을 주다 보면, 이에 감격한 친구들이 더욱 다정한 사람으로 자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보면서 말이다.


스승이란 말은 무겁다면 한없이 무겁고 가볍다면 한없이 가볍다. 친구 중 하나는 자신의 말 하나가 이 학생의 인생을 바꾸고, 성격을 바꿀까 무척이나 걱정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친구에게 스승은 무척 무거운 말이다. 먼바다를 가는 배의 방향타를 잡고 있는 것처럼 조금만 옆으로 돌려도, 인도로 갈게 미국으로 가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스승이 그렇게 무겁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스승이 나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 친구, 챗gpt, 영화의 주인공, 자기 자신까지 전부 스승이다. 학생은 사람 한 명이 바꾸는 게 아니라 세상이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학교에서의 스승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내가 학생 때 배웠으면 좋겠던 것들을 가르치고, 후회되는 것들을 피하게 하는 게 내 역할이라 생각한다.


여러분들은 기억에 남는 스승이 있는가. 비단 교사가 아니라도 말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 한분과 고등학교 때 한분, 군대에서 한분정도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를 제외하곤 대부분 우울한 시기에 나에게 힘을 준 분들이다. 뭘 배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 우울을 이겨낼 수 있도록 같이 도와주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여러분들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스승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랬을 것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남이 말해주면 더 즐겁지 않을까? 5월이 된 김에 가만히 생각했을 때 스승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보자, 교사가 아니어도 좋다, 당신에게 참 많이 배우고 위로받았다고 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6살 방송통신고등학교 교사로 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