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유리창 사이로 폭풍우와 내가 있다. 내 방의 캔들워머는 은은한 향을 내고 있고, 포근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주황빛 촛불 뒤로 거대해진 그림자가 웅크려 있다. 웅크린 그림자는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데 그것은 촛불이 흔들려서인지, 웅크린 사람이 흔들리기 때문인지 구분할 수 없다. 폭풍이 이따금씩 큰 소리를 낸다. 번쩍하면 몇 초 뒤에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난다. 하지만 얇은 유리창이 나누어 놓은 나의 세상엔 비도, 번개도 없고, 촛불이나 조금씩 흔들 수 있는 공기의 순환만 있을 뿐이다.
웅크린 것의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나 중문을 지난다. 같이 사는 사람이 없기에 중문은 늘 열려 있다. 중문을 지나 화장실에 온 나는 거울을 본다. 거울을 사이에 두고 눈이 새빨개진 나와 좀 전까지 그림자였던 것이 마주 보고 있다. 이 거울이 없으면 나는 평생 나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거울을 보지 못한 아이는 여러 명의 사진 중에서 자신을 고르지 못하겠지. 재미난 상상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볼품없는 나의 몸도, 얼굴도 모두 모르고 살았더라면, 나 또한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름다운 사람들처럼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난 이미 거울을 봐 버렸다.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는 아득히 먼 옛날, 운명을 알아버린 오이디푸스의 심정으로 봐 버린 것이다.
공상을 멈추고 화장실에 온 이유에 대해 떠올린다. 세수를 하고 이를 닦기 위해 화장실에 왔다. 이것은 잠을 준비하는 나만의 의식이다. 물론 나는 지독한 불면증을 앓고 있어 이런다고 잠은 오지 않겠지만 말이다. 먼저 물을 틀고 세안을 한다. 물이 따뜻해지기까지 기다려본 적은 없다. 차가운 물이 미지근해질 때쯤 수천 개의 거품이 바스라져 있는 손을 얼굴에 댄다. 미끄럽던 얼굴이 뽀득뽀득 씻기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느낌 없이는 왠지 침대에 누울 수가 없다. 세수가 끝나면 양치다. 양치란 것은 매우 거추장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구상에 모든 동물들 중에 양치를 하는 건 우리뿐이지 않은가. 아마 2023년 전에 태어난 하나님도 양치는 하지 않으셨을 텐데, 왜 우리는 매일 귀찮게 양치를 해야 하는가. 언제부터? 사실 치과의사들과 치약회사가 만들어낸 괴담 같은 게 아니었을까. 치과의사가 들으면 기겁할만한 상상을 하다 보니 양치가 끝이 났다.
폭풍우는 멈추지 않는다. 아직도 세차게 내리는 비가 땅에 튀기는 소리와 자동차 지붕에 튀기는 소리, 가끔씩 지나가는 자동차가 빗길을 가르는 소리도 들린다. 저 얇은 유리창을 통과하는 것은 이러한 소리들 뿐이다. 빗방울은 한 방울도 들이치지 못하고, 유리창에 부딪히다 아래로 흐른다. 나는 이제 캔들워머를 꺼야 한다. 캔들워머와 가까울수록 그림자는 점점 커진다. 캔들워머를 마주하니 다시금 커다란 그림자가 들썩인다. 아까보다도 더 강한 세기다. 이제는 촛불이 흔들리는 것이라고 의심할 수 없는 큰 움직임이다. 어깨를 들썩이는 이에게서 눈물이 떨어진다. 지구 반대편의 전쟁이라도 생각이 났을까. 이렇듯 그림자의 주인은 자그마한 일에도 눈물을 흘리곤 했다. 커다란 그림자는 들썩이다가 캔들워머가 꺼지는 순간 탁. 방의 그림자 속으로 숨었다.
이불 안은 방보다 훨씬 더 어둡다. 창문을 투과한 빛도 이불 안까지 오지는 못한다. 이불은 빛도 소리도 모두 먹는다.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소리도 이불 밖으론 나가지 않는다. 이불 안에서 벌어진 일은 자신만 알고 있는 것이다. 침대를 함께 쓰는 인형도 모르고, 자신을 낳아 준 부모도 모르고 말이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