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는 혁명을 한
프랑스 화가 엥그르의 1862년 작품이다. 나무판에 씌운 캔버스에 유채로 그렸다. 110 x 110 cm 크기로 루브르 박물관 드농관에 전시되어 있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엥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는 프랑스 고전주의의 정점을 찍은 화가로, 선의 완벽함과 고전적 이상미를 추구했다. 그는 고전적 서사와 예술의 질서를 지키려 했던 ‘선의 수호자’였다.
엥그르는 1780년 8월 29일 프랑스 몽토방에서 출생하고, 1867년 1월 14일 파리에서 사망했다.
그는 색보다 선(line)을 더 중요하게 여겼고, 선은 인체의 윤곽을 이상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의 누드화는 종종 신체 비율을 과장기도 했으나 이는 선의 흐름을 이용하여 관능미와 이상미를 부각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를 존경하며, 구도와 비례의 완벽함을 추구했다. 이는 외젠 들라크루아 같은 낭만주의 화가들과 대립하며 고전주의를 정통으로 하는 아카데미의 화풍을 옹호하는 노력의 하나였다.
고전주의(Classicism)는 단순히 ‘옛 것을 따르는 예술’이 아니라, 질서와 조화, 이성의 미학을 추구한 예술 철학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예술과 문학을 이상으로 삼아, 형식미와 규범, 절제된 감정 표현을 중시했다.
미술에서의 대표적인 고전주의 화가는 앵그르 이외에도 자크 루이 다비드와 조각에서의 카노바를 꼽는다. 이들은 고대 신화, 역사적 사건 속의 영웅적 인물을 마치 조각상처럼 이상화된 형태로 묘사했다.
문학과 연극에서는 라신, 코르네유, 몰리에르 등의 작품을 고전주의의 범주로 간주한다. 이들의 작품은 시간, 장소, 행동의 개연성을 중시하는 삼일치 법칙에 따라 구성되며, 비극과 희극을 구분하여 장르의 순수성을 강조하고, 인물의 행동은 권선징악적인 사회적 규범을 반영하고 있다.
음악에서의 고전주의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으로 대변한다. 이들의 음악은 소나타와 교향곡과 같이 정해진 틀 속에서 규칙적으로 구성되고, 멜로디와 화성을 조화롭게 구성하여 절제된 감정을 질서 있게 표현한다.
엥그르의 <터키탕>(Le Bain turc, 1862)은 그의 말년을 장식한 관능적이고 환상적인 누드화다. 이 작품은 단순한 목욕 장면이 아니라, 서양인의 호기심으로 이상화된 동양의 문화(오리엔탈리즘)를 그려낸 판타지라 할 수 있다.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에 대한 유럽의 학문적, 예술적 호기심과 이국적 상상’을 말한다. 당시 유럽인들은 유럽의 문화적 시선으로 동양(Orient)을 신비롭고 낯선 공간이라고 상상했다. 그 상상은 언어, 종교, 예술, 건축 등 자신들과는 다른 문화를 가진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에서 기인했으며, 이는 예술의 세계에서 색다른 소재와 주제로 활용되었다.
예술의 세계에서 동양의 이미지는 간혹 비밀스럽고 관음적이며 공포스러운 것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이는 당시 작가들이 대부분 남성으로서 동양 문화에 대한 이해가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터키탕>은 터키 하렘(이슬람 문화에서 여성들만의 공간)의 목욕탕을 열쇠 구멍을 통해 훔쳐보는 구도로 설계되었다. 열쇠 구멍 너머에는 나체 여성들이 원형으로 배치되어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악기, 향로, 과일, 꽃병 등 이국적 장식이 배경을 채우며 동양적 환상을 자극한다. 인물들은 뼈대가 없는 듯 유연하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표현되어, 현실보다 훨씬 이상화된 신화 속의 비너스와 유사한 관능미를 보인다.
색채는 창백한 피부 톤과 아이보리, 연한 회색, 갈색 등 절제된 팔레트로 구성되어, 관능적인 에로틱과 정제된 질서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 그림 속의 중심인물은 엥그르의 이전 작품〈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에서 그린 인물을 그대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다른 인물들도 그의 초상화나 크로키에 등장한 모델들과 거의 흡사하다. 마치 이전에 그가 그린 인물들을 가져와 합성한 듯한 인상을 준다.
엥그르는 이 작품에 라틴어로 자신의 당시 나이 82세를 ‘AETATIS LXXXII’라고 새겨 넣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을 출시하면서 “나는 여전히 서른 살 남자의 열정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다.
엥그르는 실제로 동양을 여행한 적이 없었으며, 이 그림은 문헌과 상상에 기반한 서양 남성의 관음적 시선을 환상적으로 그려냈다. 작품 속 여성들은 실제 중동의 여성이 아니라 백인 유럽 여성의 이상적인 몸매에 가깝다.
엥그르가 상상한 터키탕의 이미지는 영국의 귀족 부인 레이디 메리 워틀리 몬테규(Lady Mary Wortley Montagu)의 <터키 대사관 편지>(Turkish Embassy Letters)라는 기행문에서 차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몬테규는 터키(당시 오스만제국) 주재 영국 대사의 부인으로 2년여 동안 이스탄불에 체류하면서 하렘, 공중목욕탕, 여성들의 사생활 등 유럽 남성들의 상상의 세계에 있는 것들을 직접 경험하고 그 내용을 영국의 친구들과 가족에게 편지로 보냈다. 이 편지들은 문화적 문학적 가치를 평가받고 출간되어 유럽인의 동양에 대한 신비감을 보다 자극했다.
몬테규의 기록이 가치 있는 이유는, 그녀가 전한 동양의 문화가 서양과는 다르면서도 단순히 관능적이고 억압적이며 공포스럽다는 기존의 관념을 넘어서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여성의 섬세한 감성과 합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동양 여성의 삶과 문화가 근대적 수준의 깊이와 질서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하렘에 관해서도 이렇게 묘사했다. ‘그곳의 여성들은 모두 나체였지만, 그 모습은 전혀 음란하거나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태도는 자연스럽고 우아했으며, 서로를 돌보고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은 마치 한 가족 같았다.’
몬테규는 터키 여성들이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해 인두법(Variolation)을 사용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이를 영국에 소개하여 유럽 의학계의 예방접종법 개발을 자극하기도 했다.
인두법은 천연두에 걸린 사람의 고름이나 딱지를 건강한 사람에게 접종해 천연두를 가볍게 앓고 그 면역을 강화하는 방식이었다. 그녀는 이 방식을 자신의 아들과 딸에게 직접 시술하여 효과를 보고, 영국으로 돌아와 이를 소개했다.
이후 유럽의 오리엔탈리즘은 점차 서구 문명의 우월주의와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1798년 이집트를 원정한 나폴레옹은 160여 명의 과학자, 예술가, 학자들을 동행시켜 이집트의 문화와 역사, 자연을 조사하게 했다. 이들이 남긴 <이집트지>(Description de l'Égypte)는 서구가 동양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분류한 최초의 대규모 작업으로, 오리엔탈리즘의 지식 기반을 형성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 프랑스는 이집트를 ‘문명화되지 않은 땅’으로 규정하고, 프랑스식 자유와 공화주의를 이식하려는 계몽주의적 명분을 내세웠다. 이는 동양을 수동적, 비합리적, 미개한 것으로 가정하고, 반대로 서양은 능동적이고, 합리적이고 문명화된 주체라는 인식에서였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서 발굴된 로제타 석(Rosetta Stone)은 서양인들에게 동양 문명을 연구하는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기도 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은 이집트 델타 지역인 로제타(Rashid) 근처에서 요새를 보수하던 중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Hieroglyphs)가 기록된 바윗 덩이를 발견했다. 바위에는 상형문자 이외에도 같은 내용의 민중문자(Demotic)와 그리스어(Greek)가 새겨져 있었다. 로제타 석은 후에 프랑스의 언어학자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이 이를 해독하고, 이집트학(Egyptology)이라는 동양의 문명학을 탄생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로제타 석은 이집트에서 영국군이 프랑스군을 내쫓고 철수하면서 영국으로 가져가 현재는 런던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에 전시되어 있다. 이집트는 지속적으로 영국에 자국의 문화재인 로제타 석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으나 영국은 거부하고 있다.
프랑스의 화가 앙투안 장 그로(Antoine-Jean Gros)는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 중 전염병 환자들의 수용소를 방문하고 격려하는 모습을 <자파에서 페스트 환자를 병문안하는 나폴레옹>이라는 작품으로 남겼다. 이는 이집트를 원정한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을 빌려 동양의 고통과 프랑스의 인도주의를 대비시켜 제국주의적 오리엔탈리즘을 시각화한 것이다.
1978년 문화비평가로 유명한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는 그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오리엔탈리즘이란 ‘서구가 동양을 타자화(othering) 하고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낸 지식과 문화의 체계라고 정의했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외피 속에서 서구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옹호한 서구의 문학과 예술, 학문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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