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을 찾아 이탈리아를 뒤졌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1480–1490년경 호두나무 패널에 템페라와 유화로 그렸다. 103 × 75 cm 크기로 바티칸 미술관 회화관에 있다.
작품은 레오나르도 남긴 몇 안 되는 미완성 회화로, 완성된 부분과 함께 미처 그려지지 않은 밑그림이 그대로 남아있어, 그의 작업 방식과 작업 과정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성 제롬은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불가타(Vulgate)의 저자로, 서방 교회의 4대 교부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382년 교황 다마수스 1세의 요청으로 기존의 여러 라틴어 번역본 신학을 수정 편집하고 구약의 대부분을 히브리어 원전에서 라틴어로 번역하여 출간했다. 이는 일반 대중들도 성경을 쉽게 읽을 수 있게 하여 이를 불가타(라틴어로 널리 쓰이는 판본이라는 뜻)라고 불렀으며, 중세 교회는 이를 성경의 표준본으로 삼았다.
불가타는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가톨릭교회의 공식 라틴어 성경으로 확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세인의 지적 기반을 만들고 예술과 문학 분야에도 크게 기여했다.
성 제롬은 불가타의 출간으로 교회의 기초를 세우고 고행과 수행을 통해 신앙을 실천한 인물로 인정받아 교부의 지위에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교부(敎父)는 초기 교회에서 신앙과 교리에서 특별한 지식과 권위를 인정받은 최고의 신학자에게 주어진 특별한 칭호였다. 이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정립하고 이단을 분별하며 신앙의 기초를 세운 인물들로 신학자이자 성직자이기도 했다.
교부가 되기 위해서는 그의 신앙이 교회의 정통(orthodoxy)에 부합하고 삶 자체가 모범적으로 성덕(holiness)을 실천해야 했으며, 이에 교회의 승인(ecclesiastical approval)을 얻어야 했다.
성 제롬 이외에도 서방 교회의 교부로 인정받은 사람은, 밀라노의 주교로서 아우구스티누스를 회심시키고 교회의 권위를 황제보다 우위에 두게 한 성 암브로시오, <고백론>과 <신국론>의 저자로서 서방 신학의 기초를 세운 성 아우구스티누스, 교황권을 강화하고 전례를 개혁한 성 그레고리우스 대교황 등이 있다.
제롬은 지금의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아 지역 인근의 스트리돈(Stridon)에서 비교적 부유하고 지위가 있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런 가정환경 덕분에 그는 어린 시절부터 로마에서 유학할 수 있었다.
그는 로마에서 문학과 수사학, 그리고 철학을 공부했다. 그는 방대한 고전을 읽기 위해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익혔으며, 읽은 고전들은 그대로 필사하여 자신의 도서관을 만들 정도로 학문에 몰두했다. 와중에도 그는 연극과 사교를 즐기며 세속적 희로애락을 충분히 경험했다.
로마 생활이 지겨워진 그는 보다 넓은 세계를 체험할 목적으로 정착지를 정하지 않은 채 홀로 지적 여행에 나섰다.
그는 독일의 트리어(Trier)에서 성 힐라리우스의 저작을 필사하며 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이후 이탈리아 북부의 아퀼레이아(Aquileia)로 이동하여 본격적으로 신학을 공부했다. 이후 소아시아 시리아 안티오키아 등지를 여행하며 수도자들과 교류하고 그들의 삶에 공감하여 광야로의 고행의 길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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