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 평화 구상, 암만 협정-요르단과 연합을 모색하다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by 다두


레이건 평화 구상 (Reagan Plan)


1982년 9월 1일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TV 연설을 통해 소위 레이건 평화 구상을 발표했다. 이는 캠프 데이비드 협정으로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수교하여 중동 문제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혀가는 듯했지만 팔레스타인 문제는 여전히 방치된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여 PLO가 레바논에서 쫓겨나면서 팔레스타인 문제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는 현실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 것이었다.


레이건 평화 구상의 요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팔레스타인에게 자치권을 확대하여 요르단과 연합체를 구성토록 하고, 이스라엘은 유엔 결의 242호(6일 전쟁 후 수습 방안을 결의한 것)에 따라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정착촌 건설을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베긴 총리는 레이건 대통령의 제안을 단호히 거부했다. 총리는 레이건 대통령의 제안이 ‘새로운 뮌헨 협정’(1938년 유럽 국가들이 나치 독일의 압박으로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 지역을 독일에 양도함)이라고 비판하며, 서안지구 점령과 정착촌 건설은 이스라엘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포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PLO도 레이건 대통령의 제안을 비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레이건 대통령의 구상은 팔레스타인인 독립 국가 건설 저지하고 팔레스타인을 요르단에 양도하려는 불순한 음모라고 비난했다. PLO는 레이건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위한 신뢰할 수 있는 중재자가 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레이건 구상은 협상 테이블에 올려지지도 못한 채 백지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건 대통령은 중동문제의 핵심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한 첫 번째 미국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 특히 국제사회는 레이건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암만 협정(Amman Agreement)


1985년 2월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후세인 국왕과 아라파트 PLO 의장이 마주 앉아 협정문에 서명했다. 암만 협정(Amman Agreement)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팔레스타인과 요르단이 합병 대 독립이라는 누적된 갈등을 청산할 방법을 모색한 것으로,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크게 뒤바꿀만한 중대 사안이었다.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은 내용에 합의했다.


양측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대한 공동 관리 또는 연합체 방안을 모색한다.

미국과 소련 등 국제사회가 주도하는 중동 평화 회담에 공동으로 참여한다.

PLO는 국제 평화 회의의 틀 안에서 이스라엘과의 협상에 참여한다.


협정의 요지는 레이건 평화 구상과 크게 다르지 않게 팔레스타인의 자치권을 확보하고 요르단과 연합체를 구성한다는 것이었다.


협정에 서명한 아라파트 의장은 PLO 내부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PLO 강경파는 팔레스타인-요르단 연합체는 팔레스타인 아랍 민족의 권리를 요르단에게 양도하는 행위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수립 목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반면 요르단은 팔레스타인과의 연합체를 구성하면 동예루살렘 아랍 성지의 관리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고, 팔레스타인 아랍인이 후견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성과가 될 수 있다며 환영했다.


후세인 국왕의 종용에도 불구하고 난처한 입장에 처한 아라파트 의장은 후속 협상을 진행하기를 주저했다. 그는 내부의 강렬한 반대 의견을 설득하거나 무마할 만한 명분이나 정치력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협정은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약속하지 못한 채 문안으로만 표류했다.


1987년 2월 후세인 국왕은 아라파트 의장이 PLO의 내부 강경파를 통제하지 못하고 협상을 계속할 입장이 되지 못한다고 결론짓고 협정 파기를 선언했다. PLO와의 협력을 중단한다고도 발표했다.


후세인 국왕은 훗날 ‘아라파트는 매우 감정적으로 현실감이 부족한 인물’이라고 회고하며, 신뢰할 만한 지도자로서는 한계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암만 협정은 중도에 무산되긴 했지만, PLO가 이스라엘과의 협상 가능성을 처음으로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의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다. 국제사회는 PLO가 사실상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고, 무력 투쟁이 아닌 외교적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는 입장을 선언한 것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이는 오슬로 협정(1993년)에서 PLO가 이스라엘과 직접 협상에 나설 수 있는 명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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