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파트 의장과 비동맹-제3세계와 연대를 강화하다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by 다두


팔레스타인 아랍인의 민족주의를 대표하는 PLO는 점차 국제사회로부터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민족해방운동의 대표적인 단체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는 아라파트 의장이 공을 들인 비동맹 외교의 성과라 할 수 있다.


비동맹 운동(NAM ; Non-Aligned Movement)은 1961년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대통령, 인도의 네루 총리,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 등이 주도한 국제 연대 운동이다. 이는 당시 냉전의 상황에서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초강대국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가진 제3세계 국가들이 자발적이고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아라파트 의장은 비동맹을 주도한 인도의 간디 총리,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대통령,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 쿠바의 카스트로 의장, 알제리의 브메디엔 대통령,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총리,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대통령 등과 회동하며 국제사회에 PLO의 대의를 전파하고 지지를 확대해 갔다.


1976년 비동맹은 PLO를 정식 회원국으로 참여시켰다. 이후 팔레스타인 문제는 비동맹의 핵심 의제로 다루어졌으며, 비동맹은 유엔 등 국제무대에 팔레스타인 문제를 제기하고 PLO의 입장을 지지했다. 많은 비동맹 회원국은 PLO에 대해 재정과 군사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79년 비동맹은 쿠바 아바나에서 개최된 제6차 정상 회의에서 PLO를 팔레스타인 아랍 민족의 유일하고 합법적인 대표 기구로 인정한다는 아바나 선언을 채택했다. PLO의 정체성과 정당성을 공식 인정한 것이다.


북한도 비동맹 외교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PLO와의 관계를 돈독히 했다. 1966년 북한은 PLO를 팔레스타인 민족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 기구임을 인정하고 정치적 연대와 외교적 협력관계를 시작했다. PLO 창설 2년 만에 이루어진 신속한 행보였다. 이후 북한은 이집트 주재 대사관이나 알제리 주재 대사관을 통해 PLO와 소통했으며, PLO는 1974년 평양에 상주 대표부를 개설했다.


당시 북한은 중국과 소련과의 관계에서 등거리 외교를 추구하는 한편, 반제국주의 비동맹 노선을 취하는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확대를 모색했다. 이는 북한이 냉전의 여파로 서방 국가와의 외교 관계가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 비동맹을 통한 제3세계와의 관계를 확대하여 한국과의 외교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정작 비동맹은 북한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데 신중했다.


비동맹은 북한이 미국을 배제한 자주노선을 표방함에 따라 잠재적 동반자로 인식하긴 했으나, 일부 비동맹 국가 내부의 반정부 세력에게 무기나 훈련을 제공한 사례가 알려지면서 북한의 진정성에 의혹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비동맹은 북한이 경제적 기반이 부족함에 따라 회원국으로서 실질적 기여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비동맹은 오히려 회원국에 대한 경제 원조, 방문 외교를 강화하며 실질 협력관계를 확대해 온 한국에 더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북한은 1975년이 돼서야 비로소 비동맹 회원국이 되었다. 1975년 8월 25일 페루 리마에서 열린 비동맹 외교장관회의는 북한이 신청한 회원국 가입 신청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같은 회의는 한국의 비동맹 회원국 가입 신청을 부결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한국 정부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아라파트 의장은 김일성의 초청으로 북한을 여러 번 방문했다.


1981년 방북했을 때 김일성은 아라파트 의장에게 공화국 영웅 칭호를 수여하며 우정을 과시했다.


1990년 5월 방북한 아라파트 의장은 김일성을 ‘가장 친한 형님’이라고 두둔하며 배를 한 척 지원해 주기를 요청했다. 김일성은 후에 ‘진달래’라고 이름 붙인 선박 한 척을 건조해 아라파트 의장에게 선물했다.


1993년 7월에는 아라파트 의장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자격으로 김일성을 방문했다. 아라파트 수반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에 지지를 요청했고, 김일성은 “끝까지 싸워보자”라며 호응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북한은 1970년~1980년대에 PLO에 박격포, 탄약 등을 지원하고 전투원을 훈련시킨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이는 당시 북한이 일부 비동맹 국가의 반제국주의를 표방하는 반군이나 무장세력에게 무기와 군사 훈련을 제공한 사실과 맥락을 같이했다.


1988년 PLO가 팔레스타인 독립을 선언하자 북한은 이를 바로 공식 인정하고 평양의 PLO 대표부를 대사관으로 격상했다.


1993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되자 북한은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관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비상주 대사관(주팔레스타인 대사관) 업무를 겸임토록 했으며, 평양의 PLO 대사관을 자치정부를 대표하는 외교공관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팔레스타인 대사관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양측의 직접적인 실질 협력관계는 제한적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아라파트 의장의 비동맹 외교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국제화하고 제3세계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장차 대유엔 외교의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비동맹은 현재 130여 개 국가가 참여하는, 유엔 다음으로 큰 규모의 국제기구로서, 국제사회의 각종 현안에서 연대를 과시하고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권익 보호, 반제국주의 원칙, 국제적 불균형 해소 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며, 유엔이나 국제기구의 관련 이슈에 대한 표결 등에서 서방 국가들과 경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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