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파리 프로토콜
오슬로 협정으로 출범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당장 정부로서 기능할 행정적 경제적 기반과 역량이 전무했다. 어차피 이스라엘의 협조가 필요했다. 파리 프로토콜은 자치정부와 이스라엘이 서로 협력하는 방법과 책무를 규정한 약속이다.
1994년 이스라엘과 자치정부가 서명한 파리 프로토콜의 공식 명칭은 ‘경제 협력에 관한 의정서’(Paris Protocol ; Protocol on Economic Relations between the Government of the State of Israel and the 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 (PLO), representing the Palestinian people)다. 이 의정서는 오슬로 협정의 부속 문서로, 이스라엘-자치정부 간의 치안 협력, 경제 협력 등의 실질 관계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현재도 유효하다.
파리 프로토콜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특히 서안지구)에서 부가가치세, 관세 등을 대리 징수하여 자치정부에 월 단위로 송금한다. 자치정부는 자치 지역 내 치안을 유지하고, 이스라엘은 국경과 정착촌 보호를 책임진다, 양측의 치안 안보 기관은 정보를 공유하며 협력관계를 유지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상품 · 노동의 이동을 허용하고, 일정 분야에서 공동 시장 접근을 보장한다.
파리 프로토콜은 경제 및 재정 부분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상호 의존적인 관계로 구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존적 관계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되거나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파리 프로토콜의 경제 협력 규정에 따라 이스라엘이 세금으로 징수하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로 송금하는 재원은 자치정부 예산의 60%에 달한다. 이 예산은 주로 자치정부 공무원의 인건비와 운영비로 쓰인다. 이런 이유로 이 송금은 이스라엘이 자치정부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이스라엘은 송금액의 일부가 하마스 인사들에게 흘러간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이스라엘은 송금을 정지하거나 삭감하는 조치를 반복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송금 재개를 위해 자치정부의 인건비 지급 명부를 요구하기도 한다. 자치정부의 현실은 이 같은 이스라엘의 요구와 압박을 거부하기 힘들다.
오슬로 II 협정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1993년 오슬로 협정의 선언적 한계를 보완하여 세부적인 사항을 규정하고 이행 계획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1995년 9월 28일 클린턴 대통령의 중재로 이스라엘 이츠하크 라빈 총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 요르단 후세인 1세 국왕은 워싱턴 D.C. 근처 메릴랜드주에 있는 대통령 별장 와이 리버 플랜테이션(Wye River Plantation)에서 오슬로 II 협정에 서명했다.
협정은 1993년의 오슬로 협정(Oslo I Accord)의 틀 안에서 자치정부의 자치권을 보다 명확히 하고, 자치정부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할 방안을 제시했다.
오슬로 II 협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안지구를 A, B, C 구역으로 구분하여, A 구역은 자치정부가 행정과 보안 모두를 관리하고, B 구역은 행정은 자치정부가 보안은 이스라엘이 담당하며, C 구역은 이스라엘이 행정과 보안 모두를 통제한다. 양측은 해당 구역에서의 행정 보안 업무의 원활한 협조를 실무 협의체를 구성하여 운영한다. 아울러 자치정부는 입법회의 선거를 통해 자치정부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한다.
A 구역은 자치정부 행정수도인 라말라와 나블루스, 베들레헴, 제닌 등 주요 도시를 포함한다. 이는 서안지구의 18%에 해당하며 자치정부는 이스라엘인들의 출입을 통제할 수 있다.
B 구역은 A 구역 주요 도시의 외곽 지역으로 약 440개 이상의 아랍인 거주 마을을 포함하여 서안지구의 22%에 해당한다. 당시에는 이곳에 이스라엘 정착촌이 없었다.
C 구역은 B 구역의 외곽으로 서안지구의 약 60% 이상을 차지하며 이스라엘 정착촌과 군 시설이 집중되어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건축 및 개발은 이스라엘의 허가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 구역 개념은 파리 프로토콜에 따른 이스라엘-자치정부 간의 경제 협력관계의 지역 기준을 명확히 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 EU, 러시아, 노르웨이 등은 이 협정을 중동 평화의 큰 진전으로 평가하며 환영했다. 이스라엘과 자치정부 내 온건 세력은 협정이 팔레스타인의 자치를 확대하여 평화 공존의 길을 열었다며 지지했다. 이들은 자치정부가 A 구역과 B 구역에서 이스라엘의 개입 없이 독자적인 행정권을 행사하게 된 것을 협정의 실질적인 성과로 생각했다.
그러나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은 서안지구 대부분의 지역을 이스라엘의 통제권을 인정하는 C 구역으로 구분한 것은 자치권의 실효성을 부정한 것이라고 비난하며, 이를 수용한 자치정부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하마스 등 강경 무장세력은 이스라엘과의 협상 자체를 팔레스타인 아랍 민족에 대한 배신행위라며 무장투쟁을 보다 강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스라엘 정부도 내부 저항에 부딪혔다. 이스라엘 내 우파 급진 세력과 정착민들은 정부가 자치정부에 터무니없이 자치권을 인정하고 이스라엘의 영토를 양보하여 안보 위협을 가중시켰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협정에 서명한 라빈 총리의 입장이 구석으로 몰리는 분위기였다. 총리는 오슬로 협정을 살리고 자신이 입지도 살려야 한다는 결심으로 대국민 설득 작업에 나섰다.
1995년 11월 4일 밤 라빈 총리는 수도 텔아비브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중동 평화 정착 지지 군중대회’에 참석하여 연설했다.
그는 연설에서 “평화는 어려운 길이며, 적과의 대화는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반드시 가야만 할 길”이라고 강조했다. 또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두려움이 아닌 희망을, 체념이 아닌 의지를, 냉소가 아닌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라며 오슬로 협정에 지지를 호소했다.
연설을 마치고 차량으로 걸어가던 라빈 총리는 극우 유대 단체 소속의 청년 이갈 아미르의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총리는 병원으로 이송 중 사망했다. 그의 주머니에서는 이스라엘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는 ‘평화를 위한 노래(A Song for Peace)’ 말이 적힌 메모지가 피에 물든 채 발견됐다.
아미르는 법정에서 이스라엘 땅을 팔레스타인인에게 넘겨주는 오슬로 협정을 반대한다며, ‘유대 민족의 땅에 대한 사랑이 방아쇠를 당기게 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오슬로 II 협정으로 구체화된 이스라엘과 자치정부 간의 치안 협력은 아직도 유효하게 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당초 취지와는 달리 A, B, C 구역에 대한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양측 보안 기관 모두를 불신하게 되면서 또 다른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자치정부의 치안 능력을 신뢰하지 않고 자치정부 관할 구역으로도 군을 투입하여 작전을 전개하거나 테러 혐의를 이유로 팔레스타인인을 직접 체포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또한 자치정부 보안 기관이 공유하는 정보를 신뢰하지 않고 자치정부가 테러를 방조하거나 협력하고 있다고도 비난한다.
서안지구 주민들은 치안 협력이 자치정부를 ‘이스라엘의 협력자’로 변질시켰다며 양측 모두에 불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주민들은 자치정부가 이스라엘과의 치안 협력 관계를 악용하여 주민들의 기본권을 억압하고 있다고도 의심한다. 특히, 하마스가 이스라엘 못지않게 자치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 치안 협력 때문이라는 분석이 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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