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2000년 9월 팔레스타인인들은 또 한 번 이스라엘에 분노하며 봉기했다. 이번에는 예루살렘 문제가 발단이 되었다. 2차 인티파다 또는 알-아크사 인티파다라고도 부른다.
9월 28일 이스라엘의 우익 야당인 리쿠드당 당수 아리엘 샤론이 수백 명의 무장 경호원을 대동하고 아랍인의 성지 알-아크사 사원이 있는 예루살렘의 성전산을 방문했다. 그는 이스라엘 총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우익 유권자들에게 ‘예루살렘은 유대인의 성지이고 이스라엘의 수도’ 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샤론 당수의 행동이 자신들의 성지에 대한 도발 행위라고 크게 분노하며 성전산 일대에서 항의 시위를 진행했다. 이스라엘군은 고무탄과 최루탄을 사용해 시위를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부상자와 사망자가 발생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대규모 무장봉기가 시작되었다.
알-아크사 사원이 있는 성전산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모두에게 성지로 여겨지는 중요한 곳으로 그만큼 서로에게 민감한 곳이기도 하다.
1947년 유엔총회 결의 181호는 예루살렘을 유대인 지역도 아랍인 지역도 아닌 국제 관리 지역(corpus separatum)으로 별도 지정했다. 그러나 1948년 제1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서쪽(서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요르단은 성전산을 포함한 예루살렘 동쪽(동예루살렘)을 점령함에 따라 예루살렘은 동-서 예루살렘으로 분리되었다.
이후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까지 점령하고 예루살렘 전역을 통제하며 동예루살렘의 무슬림 성지 의미를 희석하고 유대 성지 개념을 확대해 갔다.
1980년 7월 30일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이 ‘완전하고 통합된 이스라엘의 수도’ 임을 선언하는 소위 예루살렘법을 통과시켰다. 이스라엘 정부는 예루살렘법에 따라 대통령실, 의회, 대법원 등 정부 주요 기관을 예루살렘에 소재토록 하고, 영토 주권 차원에서 예루살렘의 모든 성지를 관리하며, 이전의 유엔 결의에 따라 설치된 국제기구나 종교 단체의 역할을 인정치 않고 예루살렘에서 철수하도록 요구했다.
국제사회는 예루살렘법이 국제법에 배치된다고 판단했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결의안 제478호를 채택하여 예루살렘법이 무효임을 선언하고 회원국들에게 예루살렘에 대사관을 두지 말도록 권고했다. 미국은 안보리 결의에 기권했지만 텔아비브의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다.
이 같은 현실에서 이스라엘의 정치인 샤론이 동예루살렘 성전산을 방문한 것은 아랍인들에게는 도발적 행위로 비추어질 수밖에 없었다. 샤론의 성전산 방문 계획을 사전에 전해 들은 자치정부 아라파트 수반은 이스라엘 총리에게 샤론의 방문을 제지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다.
9월 30일 가자지구에서 발생한 12세 팔레스타인 소년 무함마드 알 두라 사망 사건은 2차 인티파다의 또 다른 불씨가 되었다.
무함마드는 아버지 자말과 함께 중고차 시장의 가게 문을 닫고 귀가 중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간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맞닥뜨리고 건물 벽 뒤로 몸을 숨겼는데, 수초 후 무함마드가 아버지 등 뒤에서 총격을 맞고 사망했다. 이 장면은 프랑스 2 TV에 의해 세계 전역에 그대로 촬영 방영됐다.
이스라엘군은 처음에는 총격을 인정했지만, 이후 자체 조사 결과를 통해 이스라엘군의 총격이 아닐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몇몇 언론인과 이스라엘 측 인사들은 이 영상이 조작되었거나 연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필립 케르사디 프랑스 언론감시단체 대표는 무함마드 알 두라는 죽지 않았거나, 영상은 연출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프랑스 2 TV와 찰스 앤드얼린 기자를 비판했다.
찰스 앤드얼린 기자는 현장에 있던 팔레스타인 카메라맨이 촬영했고 편집 없이 보도했다 고 주장했으며, 아버지 자말은 아들의 죽음이 사실이며 자신도 총상을 입었다고 반박했다.
프랑스 법원은 필립 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하고 유죄를 선고했다.
성지 예루살렘에 관한 관할권과 종교적 갈등으로 촉발한 2차 인티파다는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대, 군사적 억압, 경제적 고립 등에 항의하는 반이스라엘 폭동의 성격으로 확대되었다. 이스라엘군은 거리로 뛰쳐나온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해 표적 사격을 가하고 탱크로 몰아붙이거나 지역별로 나누어 집중적인 공습을 가했다.
무함마드 소년의 죽음은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의 무력 저항을 확산시켰다. 하마스와 이슬라믹 지하드 등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는 자살 폭탄 테러와 로켓 공격으로 이스라엘군에 대항했으며,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를 포위하고 중화기를 사용하여 민간인 시위대를 공격했다.
이스라엘군은 베들레헴을 포함한 서안지구 주요 도시를 점령하고 무장세력을 진압하는 한편, 핵심 인물 등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 작전을 전개했다.
이 같은 상황은 5년간이나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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