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장벽 - 팔레스타인인의 기본권을 차단하다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by 다두



2002년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테러를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 측과 팔레스타인을 분리하는 소위 분리 장벽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장벽은 8m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으로 연장 길이 850km에 걸쳐 건설될 계획이었다. 장벽의 상단에는 철조망이 둘러치고, 주요 지점에는 장벽 위로 솟아 오른 감시탑이 세워졌다.


당초 계획한 분리 장벽은 2013년경 완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분리 장벽의 일부 구간을 보강하거나 연장하고, 새로운 지역에 장벽을 추가로 건설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만든 분리 장벽은 국경 보호 이상의 목적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물론이고 국제사회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분리 장벽은 당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구분한다는 명분과는 달리 서안지구 팔레스타인인 거주지 안으로도 깊숙이 들어와 설치되었다. 서안지구에 불법적으로 건설한 정착촌을 감싸는 형태로도 건설되었다. 장벽은 팔레스타인인들의 거주지와 거주지를 단절하고 또는 포위하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특히, 동예루살렘 지역에 분리장벽은 예루살렘을 베들레헴 등 서안지구 다른 주요 도시들과 차단하는 거대한 장애물이 되고 있다.


서안지구 주민들은 지척의 마을로 이동하기 위해서라도 이스라엘군의 감시초소를 통과하여 분리 장벽을 우회하는 소로(주로 이스라엘군의 작전도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군은 대테러 작전 등을 이유로 수시로 이 우회 도로마저 차단하고 있어 팔레스타인인들의 활동은 매우 제한적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유엔과 국제사회에 이스라엘의 분리 장벽 건설을 중단시켜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2004년 7월 9일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이스라엘의 분리 장벽이 국제법에 위반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유엔이 국제사법재판소에 분리 장벽에 관한 법적 판단을 요청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국제사법재판소는 분리 장벽이 팔레스타인 주민의 이동권, 재산권, 교육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분리 장벽은 이스라엘이 주장한 ‘안보 목적’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점령지인 팔레스타인 영토를 병합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간주했다. 이스라엘은 장벽 건설을 중단하고 철거해야 하며, 장벽 건설을 위해 팔레스타인 주민들로부터 몰수한 토지를 반환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판결은 국제사법재판소 15명의 판사 중 14명의 찬성으로 인용되었다. 미국이 추천한 판사만이 반대했다.


미국은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해 관할권 문제를 제기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 간의 분쟁은 정치적 문제로서 국제사법재판소가 관여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유엔이 국제사법재판소에 법적 판단을 요청한 것도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안은 안전보장이사회가 정치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서안지구의 분리 장벽 건설은 테러로부터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자위적 조치로서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미국의 주장에 대해 이 사건이 정치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는 하나 이것이 법적 판단에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며, 재판소의 판결은 정치적 사안을 판단한 것이 아니라 국제법의 원칙과 인권 침해 여부를 판단한 것으로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은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이스라엘의 정치적 · 윤리적 책무를 압박하는 메시지가 되었다. 특히, 국제사법재판소가 판결문에서 서안지구를 이스라엘의 ‘점령지’로 적시한 것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국제법적 판단의 근거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유엔총회는 이스라엘이 분리 장벽을 철거하고 피해자에게 배상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하고, 150 대 6이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채택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과 유엔 결의가 평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으로서 즉각 이행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분리 장벽 건설은 계속되었다.


유엔 인권이사회와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분리 장벽이 팔레스타인 주민의 생존권, 이동권, 자결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반복적으로 보고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분리 장벽 반대 활동과 저항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무기로 한 문화적 상징 활동은 국제사회로부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영국의 얼굴 없는 거리 예술가로 알려진 뱅크시(Banksy)는 2005년 서안지구를 방문하고 분리 장벽에 7점의 풍자 벽화를 남겼다. 그의 작품 ‘꽃을 던지는 사람’(Flower Thrower 또는 Love is in the Air)은 돌멩이 대신 꽃을 던지는 팔레스타인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세계인에게 팔레스타인의 평화의 메시지를 던졌다.


‘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on)는 하트 모양의 풍선을 날리는 팔레스타인 소녀를 그렸다. 그는 그림 옆 장벽에 ‘언제나 희망은 있다’라고 썼다.


‘당나귀 검문’이라는 제목의 작품도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스라엘로 넘어가는 당나귀를 이스라엘군이 검문하는 장면이다. 당나귀마저도 검문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점령의 부조리함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다. 이 작품은 벽째 통째로 잘려 국제 경매시장에 나올 만큼 주목을 받았다.


2017년 뱅크시는 베들레헴 분리 장벽을 방문하고 장벽을 마주하고 있는 오래된 팔레스타인 건물 벽에 ‘Walled off Hotel’이라는 간판과 창문 하나를 그렸다. Walled off Hotel은 뉴욕의 Waldorf 호텔과는 달리 ‘세계에서 가장 전망이 좋지 않은 호텔’로 명성을 얻었다.


반크시의 Walled off Hotel은 이름과는 달리 실제로 팔레스타인의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미술관으로 꾸며졌다. 이스라엘의 분리 장벽, 감시탑, 검문검색 등을 풍자한 많은 그림이 전시됐다. 미술관은 마주하고 있는 분리 장벽과 함께 현재도 많은 방문객과 문화 예술인이 방문하는 문화적 명소이자 평화의 체험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서안지구 작은 시골 마을 빌린(Bilin) 주민들은 2005년부터 매주 금요일 분리 장벽 건설에 저항하는 비폭력 시위를 벌여오고 있다. 주민들은 매주 금요 기도 후 올리브 가지를 들고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결정을 존중하라’, ‘서안지구의 모든 장벽을 허물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장벽 주위를 행진한다. 행진에는 국제 활동가들과 언론인들도 동참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에게는 빌린 마을 주민의 비폭력 시위가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었다. 시위대를 향해 고무탄과 최루탄을 발사하며 시위를 방해했다. 시위를 지지하는 활동가나 언론인, 그리고 인근의 관광객들도 최루탄 공격의 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다.


빌린의 15세 소년 메이윱은 장벽을 건설하고 있는 이스라엘 불도저에 돌을 던지다 이스라엘 경비원이 발사한 총을 맞고 쓰러졌다. 앰뷸런스는 바로 건설 중인 장벽에 막혀 3시간 동안이나 접근하지 못했다. 그는 결국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현장에 있던 외신 기자들에 의해 장벽 너머 국제사회로 널리 알려졌다.


빌린 주민 중의 한 사람인 에마드 버나트(Emad Burnat)는 막내아들의 성장을 기록하기 위해 가정용 카메라에 취미를 붙였다가 매주 금요 시위 현장을 촬영하게 되었다. 그가 촬영한 금요 시위 기록은 이스라엘 감독 가이 다비디(Guy Davidi)에 의해 ‘5 Broken Cameras’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편집되었다. ‘5 Broken Cameras’는 2013년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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