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평화 로드맵-팔레스타인자치정부의 개혁을 주문하다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by 다두


2차 인티파다의 폭력 상황이 계속되었다.


2차 인티파다는 1차 인티파다 때의 비폭력 불복종 원칙과는 달리 폭력적 방법을 앞세워 진행되었으며, 날이 갈수록 폭력적 방법은 버스, 카페, 쇼핑몰 등에서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자살 폭탄 등과 같은 테러 행위로 격화되어 갔다. 당시는 9.11 사태 직후 국제사회가 테러와의 전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던 시기로, 팔레스타인에서의 폭력적 테러 상황은 세계인을 긴장시켰다.


특히 2002년 3월 27일 유대교의 명절 유월절 첫날에 발생한 자살 폭탄 사건은 이스라엘 국민과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이스라엘 북부 도시 네타냐의 파크호텔 식당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 소속 청년이 폭발물이 장착된 자신의 조끼를 폭발시켜 유월절 만찬에 참석 중인 민간인 30여 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 이상이 부상하였다. 현장은 천장이 무너지고 바닥에 핏물이 고일 정도로 참혹했으며, 불에 그을린 유모차와 식탁이 나뒹굴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군사적 대응을 선언했다. “미국이 탈레반을 공격한 것처럼 자위권을 행사한다”라고 발표하고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방어벽 작전’(Operation Defensive Shield) 개시하여 서안지구 주요 도시를 다시 점령하였다.


이스라엘군은 라말라 무카타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청사도 포위했다. 청사 안의 아라파트 수반은 외부로 이동하지 못하고 사실상 청사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아라파트 수반은 청사 내에서만 생활하며 외부 활동이 불가능했다. 통신, 식량, 전력은 공급되었으나 매우 제한적이었으며, 일부 외교적 접촉 이외의 외부인과의 접촉은 금지되었다.


이스라엘은 2차 인티파타의 배후로 아라파트 수반을 지목했으며, 샤론 총리는 아라파트 수반을 평화의 장애물로 규정했다.


아라파트 수반은 청사 내 지하 벙커에서 “나는 순교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다”라며 이스라엘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는 와중에도 국제 언론인을 초청하여 인터뷰하고, 외국 정부 인사 접견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저항이 정당함을 역설했다. 팔레스타인으로서는 무카타의 벙커가 팔레스타인 저항의 성지가 되었으며, 벙커 안에 갇힌 아라파트 수반은 그 자체가 팔레스타인 저항을 대변하는 정치적 메시지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의도와는 달리 아라파트 수반의 연금은 팔레스타인의 폭력적 저항 의지를 오히려 고무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2002년 6월 24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 장미 정원에서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해 연설했다.


부시 대통령은 연설에서 팔레스타인의 독립 국가 수립을 지지하나, 이는 팔레스타인의 민주적 개혁과 새로운 지도부의 탄생을 전제로 한다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의 팔레스타인 새로운 지도부 관련 언급은 폭력 사태를 저지하지 못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아라파트 수반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으로 해석되었다. 이는 미국과 EU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개혁안으로 이어졌다.


조지 테넷 CIA 국장, 윌리엄 번스 중동 특사 등이 이집트,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을 왕래하며 자치정부의 개혁 방안을 논의했다. 하비에르 솔라나 EU 외교 안보 대표도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협의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정치적으로 혁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이의 방법을 제시했다.


아라파트 수반에게 제시된 개혁안의 핵심은 자치정부가 총리직을 신설하여 아라파트 수반에게 집중된 권한의 일부를 분산하라는 것이었다.


아라파트 수반은 국제사회의 정치개혁 압박과 특히, 총리직 신설 요구에 강하게 반발했다. 아라파트 수반은 정치 개혁안이 자신의 권력을 약화시킬 의도인 것임을 즉각 간파했다. 국제사회의 압박이 강경하고 팔레스타인 내부적으로도 개혁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어 이를 거부하기에도 어려운 실정임을 인식했다. 더욱이 그는 이스라엘군에 의해 사실상 감금된 상황에서 수반직을 내놓으라는 요구가 들어오지 않은 것만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총리직 신설안을 수용하겠다고 발표했다.


2003년 4월 아라파트 수반은 자치정부 내 최대 정파인 파타(Fatah)의 지도자 마흐무드 압바스를 초대 총리로 임명하고 행정권의 일부를 이양했다. 그러나 치안 · 외교 · 재정 등 핵심 권한은 여전히 수반이 직접 행사하는 구조로 남겨두었다.


사실상 미국 등 서방 세계의 지지로 총리가 된 압바스 총리는 하마스, 이슬라믹 지하드 등 강경 무장세력과 대화를 이어가며 폭력 행위를 중단하고 정치 외교적 노력에 동참하기를 설득하며, 벙커에 갇혀 저항 투쟁을 응원하고 있는 아라파트 수반과의 차별화에 주력했다.



중동 평화 로드맵


한편, 부시 대통령은 EU, 유엔, 러시아를 참여시킨 중동 평화 4자 협의체(중동 Quartet)를 주도하며, 중동 평화 로드맵(Roadmap for Peace)을 작성했다. 중동 평화 로드맵은 이름이 ‘중동’이긴 하나 실제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결 방안에 집중한 문서였다. 중동의 핵심 문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라는 부시 대통령의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로드맵의 핵심은 2005년까지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수립을 목표로 하고 이에 대한 단계적 이행 방안을 제시한 것이었다.


1단계로 팔레스타인인이 폭력을 중단하고 자치정부의 정치개혁을 달성하고, 2단계로는 이스라엘이 정착촌 건설을 중단하며, 3단계로는 양측의 협상을 통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최종적인 지위를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2003년 6월 3일 부시 대통령은 이집트의 홍해 연안 도시 샤름 엘 셰이크로 날아가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국가 외교장관들과 회동하고 자신의 중동 평화 로드맵에 대한 지지를 요청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도 신임 압바스 총리의 내부 개혁 의지를 높이 평가하고 팔레스타인에 3억 5천만 달러의 재정 지원을 약속했다. 아리엘 샤론 총리도 압바스 총리의 비폭력 노력을 환영하며 900명의 팔레스타인 수감자 석방을 약속하고, 추가 석방도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집트와 요르단은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과 이스라엘과의 평화 공존을 지지하며, 로드맵 이행에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다음 날 6월 4일 부시 대통령은 요르단 남부 항구도시 아카바로 이동하여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 마흐무드 압바스 자치정부 총리와 별도로 회동하고, 전날 주변 국가의 동의와 지지를 얻은 중동 평화 로드맵을 제시하고 합의를 유도했다.


압바스 총리는 무장 인티파다 종식과 테러 근절 노력을 약속하며 평화적 협상 의지를 표명했다. 샤론 총리는 요르단강 서안의 불법 유대인 정착촌 철거와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에 대해 원칙적으로 동의했다. 부시 대통령은 양측의 결단을 ‘중대한 진전’으로 평가했다.


중동 평화 로드맵은 미국이 의도한 대로 팔레스타인 내부 정치 지형을 급변시켰다. 압바스 총리는 아라파트 수반을 제치고 국제사회가 원하는 신뢰할 수 있고 권한 있는 협상의 당사자가 되었다. 반면, 아라파트 수반의 고립감과 소외감은 국제사회와 압바스 총리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됐다.


아라파트 수반은 CNN 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군사행동을 이유로 들면서 ‘중동 평화 로드맵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아라파트 수반은 자신이 배제된 중동 평화 로드맵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압바스 총리의 협상 참여를 방해했다. 아라파트 수반과 압바스 총리 간의 갈등이 노골화되었다.


2003년 9월 자치정부 의회에서 압바스 총리는 ‘나를 선택하든지, 아니면 집으로 보내라’는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아라파트 수반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압바스 총리는 총리직을 수임한 지 5개월 만에 사임했다.


압바스 총리가 없는 중동 평화 로드맵도 출구를 찾기 어려운 미로로 빠져들었다. 당초 부시 대통령의 중동 평화 로드맵은 아라파트 수반이 아니라 압바스 총리를 전제로 진행된 것이었다.

아라파트 수반의 운명도 기울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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