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2004년 10월 말 벙커 안의 아라파트 수반의 병세가 악화되었다. 자치정부와 측근들은 그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지원해 주기를 호소했다. 이스라엘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아라파트 수반의 출국을 허용했다. 그러나 귀국은 보장할 수 없다는 조건을 붙였다.
아라파트 수반은 벙커에 갇힌 지 2년 반 만에 요르단이 제공한 헬기로 무카타를 떠나 암만으로 이송됐다. 요르단 병원은 아라파트 수반의 병세가 위중하여 더 이상 손을 쓰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프랑스 정부는 항공기를 보내 아라파트 수반을 파리 인근 클라마르 군 병원으로 후송했다. 2주간의 집중 치료에도 불구하고 아라파트 수반은 11월 11일 사망했습니다. 병원 측은 아라파트 수반의 사인이 파종성 혈관 내 응고 증후군으로 노환이 겹친 병사라고 발표했다.
같은 날 밤, 아라파트 수반의 시신은 프랑스에서 이집트 카이로로 운구되었다. 자치정부는 팔레스타인으로의 운구를 주장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집트는 그가 출생한 곳이다.
2004년 11월 12일 카이로 공항 인근 헬리오폴리스의 알-갈라아 군 병원에서 아라파트 수반의 장례식이 엄수되었다. 장례는 한때 그가 장교로 복무했던 이집트 군의 예우에 따라 군장(軍葬)으로 진행되었으며 이슬람 수니파 최고 기관인 알-아즈하르의 성직자 셰이크 모하마드 사이드 탄타위가 집례했다.
장례식에는 아라파트 수반의 부인 수하 여사, 자치정부 고위 관리, 이집트, 요르단, 예멘, 알제리, 브라질, 남아공, 인도네시아, 레바논 정상, 영국, 프랑스, 독일 외교장관 등이 참석했다. 미국은 윌리엄 번즈 국무부 차관보를 조문 대표로 파견했다. 이스라엘은 조문단을 보내지 않았다.
장례를 마친 아라파트 수반의 시신은 마차에 실려 알-마자 공군기지로 이동하여 이집트 군 헬기로 팔레스타인 라말라로 운구되었다. 자치정부는 청사 무카타 정원에 콘크리트 무덤을 마련하고 그의 시신을 임시로 안장했다. 팔레스타인이 독립 국가를 완성한 후에 성지 예루살렘으로 이장할 계획이었다.
CNN, BBC, Sky News 등 세계 주요 언론은 아라파트 수반의 시신이 프랑스에서 운구되어 장례식이 치러지는 전 과정을 생중계했다. 생전에 아라파트 수반을 비판해 온 이스라엘의 주요 방송사도 이례적으로 생중계에 참여했다.
아라파트 박물관
라말라 자치정부 청사(무카타) 아라파트 수반의 무덤 뒤편으로 소박한 규모의 아라파트 박물관(The Yasser Arafat Museum)이 있다. 아라파트 수반이 이스라엘군에 포위 당한 채 저항했던 지하 벙커 바로 그 자리다. 2016년 11월 9일 아라파트 사망 12주기를 기념하며 개관했다.
박물관은 야세르 아라파트 재단(Yasser Arafat Foundation)에 의해 건립되어 관리되고 있다. 야세르 아라파트 재단은 1994년 아라파트 수반이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 시몬 페레스 외교장관과 함께 공동 수상한 노벨 평화상 상금을 기반으로 설립되어 아라파트 수반의 조카인 나세르 알-쿠드와(Nasser al-Qudwa) 이사장이 운영 중이다.
나세르 알-쿠드와 이사장은 아라파트 수반의 이미지와는 달리 매우 조용하고 인자한 분위기를 가졌다. 그는 팔레스타인 무장투쟁의 지도자로서 아라파트의 유산을 관리하기보다는,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해법을 구해온 아라파트의 유산을 계승하고자 한다. 자치정부 초기 유엔 주재 팔레스타인 대표로 활동했다.
박물관은 1948년 대재앙(나크바)으로 시작된 팔레스타인 민족의 고난에 찬 현대사를 기록하고 있다. 아라파트 수반의 유품 등 8,000여 점의 기록물이 전시되어 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당시 그가 참호에서 외부 소식을 들었다는 트랜지스터라디오, 저항을 상징하는 케피야, 군복, 그 군복에 항상 차고 다녔다는 권총도 있다. 1974년 '한 손엔 총, 한 손엔 올리브 가지'로 평화를 호소한 유엔 총회 연설 사진도 있다. 그가 만들어낸 각종의 외교 문서와 이에 서명한 펜도 그대로 남아있다. 박물관 복도 계단 위에는 무장요원들에 의해 납치된 항공기가 사막 활주로에서 불타는 장면이 큼지막한 사진으로 걸려있다.
박물관 지하는 아라파트 수반이 저항했던 벙커 안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총탄 자국과 녹슨 총기들과 함께 야전 침대, 기도 용 카펫, 딸이 그렸다는 한 장의 그림은 아라파트 수반의 평범하지 못한 삶의 여정을 대변한다.
2012년 아라파트 수반의 무덤을 일시 개봉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는 아라파트 수반의 미망인 수하 아라파트 여사가 제기한 아라파트 수반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파리에 거주하는 수하 여사와 딸 자우라는 프랑스 법원에 아라파트 수반이 독살된 것으로 의심된다며 진상을 조사해 주기를 요청했다. 수하 여사는 독살의 증거로 스위스 로잔대학 방사선연구소의 시험 자료를 제시했다. 로잔대학 연구소는 수하 여사가 전달한 아라파트 수반의 옷가지와 칫솔, 두건 등의 유품을 분석하고, 이들에서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치의 폴로늄-210이 검출됐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프랑스 법원은 치안판사 3명을 라말라로 파견하여 아라파트 수반의 관을 일시 개봉하고, 시신에서 뼈, 조직 등과 무덤 안의 토양에서 샘플을 채취해 프랑스, 스위스, 러시아 전문 기관에 각각 분석을 의뢰했다.
스위스 방사선연구소는 유품들에서와 같이 샘플에서도 폴로늄-210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며 독살 의혹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프랑스 조사팀은 방사능 수치가 자연적인 수준이라고 발표하고, 러시아 조사팀은 조사 결과를 확정하지 않았다.
이후 수하 여사는 더 이상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고, 프랑스 법원도 추가 조사나 법적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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