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총선 승리 – 자치정부에서 배제되다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by 다두



2006년 1월 25일 팔레스타인 입법의회(PLC; Palestinian Legislative Council) 의원 132명을 선출하는 총선이 실시되었다. 선거는 132명 의원 중 절반은 비례대표제로, 다른 절반은 지역구별 다수 득표제 방식으로 선출하는 방식이었다. 투표권은 가자지구, 서안지구, 동예루살렘 주민에게 주어졌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헌법과도 같은 기본법(Basic Law)에 따른 것이다.


선거 결과는 이변이었다. 급진 하마스가 다수 의석을 차지한 것이다. 무장 저항 조직으로만 활동했던 하마스는 ‘변화와 개혁’을 표방하며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정당으로 변신하여 총선에 참여한 것이다.


신생 하마스 정당은 132석 중 과반수를 훌쩍 뛰어넘는 74석을 차지했다, 선거 결과에 따라 다수당을 차지한 하마스의 지도자 이스마엘 하니야가 총리로 임명되었다. 집권 파타(Fatah)는 압도적으로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선거 전의 50석도 유지하지 못하고 45석을 얻어 제2당으로 추락했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파타의 패배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파타 정당은 1994년 자치정부 출범 이래 사실상 유일 정당의 개념으로 자치정부를 독점적으로 운영해 왔다. 초기 자치정부를 독립 국가로 발전시킨다는 사명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 만족의 관료주의적 분위기로 젖어갔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파타 주도의 자치정부에 피로감과 불신감을 드러내며 지도부가 무능하고 부패하다는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파타가 과연 그들의 숙원인 독립 국가를 수립하겠다는 의지가 있는지조차도 의문을 제기했다.


반면, 하마스는 ‘변화와 개혁’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대 이스라엘 투쟁을 강화하며 대중의 환영을 받았다. 자치정부가 소홀히 하고 있는 복지와 교육, 의료 활동을 통해 서민층의 폭넓은 지지를 확보했다. 팔레스타인 유권자들에게는 매력적인 대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하마스가 총선에서 승리하고 집권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하마스 주도의 자치정부는 테러 조직으로 변질될 것이라 우려한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하마스 주도의 자치정부와는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압바스 수반과 파타는 국제사회의 반 하마스 분위기에 편승하여 선거에 이긴 하마스가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도록 물리적인 방해를 계속했다. 총선에서 당선된 하마스 의원들을 체포하여 구금하고, 의회 청사로의 출입을 금지했다. 파타는 하마스가 여전히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장세력으로, 자치정부를 주도할 경우 그간의 평화 협상은 무산되고 독립 국가 수립은 요원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 대중의 민심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기득권을 내려놓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하마스는 이러한 파타의 행태를 친위 쿠데타로 간주했다.


파타와 하마스는 서로에게 대항할 자체적인 무장 조직을 강화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철수한 이래 지지기반을 다져 온 가자지구를 근거지로 알-카삼 여단과 집행군(Executive Force)을 조직했다. 파타는 기존의 수반 직속 보안군을 강화하고 가자지구의 다른 무장세력들을 보안군으로 흡수하고자 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파타의 보안군에게 군사훈련과 장비를 지원했다.


2007년 6월 10일 하마스는 가자지구에 있는 파타의 보안군과 수반 경호대를 공격했다. 보안군은 강력히 저항했으나 하마스의 알-카삼 여단과 집행군의 공세를 막지 못했다. 가자지구에 거주한 파타 지도자들은 서안지구로 도피하거나 하마스에 체포되어 구금됐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하마스와 파타의 무장세력이 충돌한 이 사건을 ‘가자 전투’라 부른다.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파타 세력을 내쫓고 이스마엘 하니야를 총리로 하는 독자적인 가자 정부를 구성했다. 압바스 수반의 자치정부는 서안지구에서 하마스 의원들을 배제하고 파타 의원들로만 의회를 구성하여 자치정부 운영을 계속해 갔다. 이로써 자치정부는 두 쪽으로 갈라졌다.


팔레스타인 입법의회는 정상적인 기능이 중단되고 사실상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었다. 하마스 의석이 비어있는 상황에서는 모든 회의는 기본법상 정족수 미달로 성사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후 자치정부는 모든 법령을 압바스 수반의 행정명령 형식 제정하고 시행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 되었다.


2006년 이후 현재까지 팔레스타인에서는 더 이상 임기 4년의 입법의원 선거가 치러지지 않고 있다. 임기 4년(한차례 연임 가능)의 수반 선거도 치러지지 않고 있다. 굳이 자치정부 기본법을 따진다면 현재의 자치정부 수반과 입법의회는 모두 임기가 종료되어 더 이상 법적 근거가 없다 할 수 있다. 압바스 수반에 의한 비상 통치 체제 정도로 간주될 수 있다.


물론 그간에 파타와 하마스는 다시 총선을 실시하여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통합하여 운영할 새로운 정부를 구성할 시도를 하기도 했다.


2009년 3월 파타와 하마스는 2010년에 일부 선거제도와 정치 체제를 개선하여 총선과 대선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유명무실한 입법의회를 대신하여 거국내각을 구성하고 선거제도를 정비하여 다시 총선을 치른다는 계획이었다. 이러한 절차는 이집트가 적극 중간 역할을 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준비 과정에서 파타와 하마스의 입장 차가 극명하게 달라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선거는 무산되었다.


2014년에도 파타와 하마스는 총선을 실시하자고 합의했으나 준비 과정에서 주요 쟁점에 대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무산됐다.


2021년 5월 압바스 수반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주민이 모두 참석하는 총선과 대선 일정까지 공고했다가 선거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돌연 ‘이스라엘의 방해로 동예루살렘에서 투표가 불가능하다’라는 이유로 선거를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선거를 치르기 어려운 사정이 이전의 하마스와의 입장 차이라는 설명과는 다소 달랐다. 팔레스타인 내부적으로는 압바스 수반의 선거 연기 결정이 파타의 지지율 하락과 하마스의 부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해석이 대세다.


현재까지도 하마스는 정상적인 정당으로서 자치정부에 참여하지 못한 채 무장세력으로서의 존재감만 앞세우고 있다. 가자지구 주민들은 같은 팔레스타인 주민임에도 불구하고 하마스의 통제하에 있다는 이유로 자치정부가 적극적인 관리와 보호를 하지 않거나 하지 못하고 있다. 서안지구 주민들은 압바스 수반과 자치정부의 민주적 정당성과 실질적 통치 기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는 2006년 이래 팔레스타인에서 민주적 선거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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