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폴리스 평화회담 -두 국가 해법이 화장지에 그려지다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

by 다두



2007년 11월 미국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해군사관학교)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주선으로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와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마주 앉았다. 회의에는 유엔, EU, 아랍연맹, 러시아 등 50여 개국 대표와 관련 국제기구 대표들도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이에 따른 국경, 수도, 예루살렘 지위, 난민, 이스라엘의 안보 및 정착촌 등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핵심 쟁점에 관한 해법이 논의되었다.


참가국 대표들은 공동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과 자치정부가 '두 국가 해법'을 목표로 즉시 협상을 재개하여 2008년 말에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최종 지위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발표했다.


아나폴리스 평화 회담은 국제사회가 다자회의를 통해 처음으로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법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독립된 국가로서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두 국가 해법’을 제시하고 이를 공식화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현재도 국제사회 대다수의 국가는 두 국가 해법을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한 최선의 최종 해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올메르트 총리 – 압바스 수반 회담


아나폴리스 평화 회담에서 제시된 두 국가 해법이 바로 현실에 적용될 만한 극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2008년 9월 이스라엘 올메르트 총리와 자치정부 압바스 수반이 예루살렘에 있는 총리 관저에서 비밀리에 회동했다. 두 사람은 배석자나 보좌관도 없이 단독으로 만나 아나폴리스 평화 회담에서 제시된 두 국가 해법에 관한 이행 계획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올메르트 총리는 압바스 수반에게 장차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전제로 국경선, 영토, 수도 등에 관한 자신의 매우 구체적인 구상을 제안했다.


올메르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국가의 국경을 1967년(3차 중동전쟁) 이전의 국경선을 기준으로 하되 다만, 이스라엘이 서안지구에 이미 건설한 마알레 아두밈, 구슈 에치온 등의 정착촌 지역(서안지구 총면적의 6.3%)을 이스라엘 영토로 병합하고, 대신 이스라엘 영토의 5.8%를 팔레스타인 국가의 영토로 양도하겠다고 말했다. 일종의 영토 교환 방식을 제시한 것이다.


또한 올메르트 총리는 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 국가의 수도로 인정하되,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성지들은 바티칸, 미국, 요르단 등 관련국이 공동으로 관할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다만, 그는 난민 문제에 관해서는 다소 강경했는데, 1948년 이스라엘 국가 수립으로 이 지역을 떠난 팔레스타인인의 귀환은 일부 상징적 숫자를 제외하고는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여타의 난민들은 팔레스타인인 국가가 수용하거나 제3 국으로의 이주를 주선하자고 제안했다.


압바스 수반은 올메르트 총리의 이러한 제안이 이전의 어떤 제안보다 파격적이라는 점에서 깜짝 놀랐다. 1967년 이전의 국경선과 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 국가의 수도로 인정한다는 것은 그간 팔레스타인인들이 주장해 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성지 구시가를 국제 관리하에 두자는 제안도 비교적 현실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압바스 수반은 올메르트 총리의 제안을 당장 수용하지 못했다. 그는 올메르트 총리의 제안이 그간 이스라엘의 입장과는 너무 많이 다르다는 점에서 오히려 올메르트 총리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또한 내부적으로는 자신(서안지구)이 하마스(가자지구)와 분열되어 대립을 계속하고 있는 현실에서, 당장에는 팔레스타인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줄 자신의 결정에 절대다수의 지지를 얻어 낼 정치적 확신을 갖지 못했다.


두 사람의 회동은 몇 차례 더 이어지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2009년 이스라엘 총선에서 올메르트 총리가 패배하고 베냐민 네타야후 총리가 집권하면서 두 사람의 회동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했다.


압바스 총리는 올메르트의 제안에 대해 네타야후 총리와 대화를 이어가기를 희망했다. 네타야후 총리는 압바스 수반과 회담할 의사는 있으나 대화의 주제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입장을 고수했다. 올메르트 총리의 제안은 사실상 폐기되었다.


와중에 가자지구에서는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충돌이 고조되고 있었다. 압바스 수반과 네탄야후 총리의 회동은 실현되지 못했다.


훗날 압바스 총리는 올메르트 총리와의 협상이 무산된 것을 아쉬워하고, 그 배경을 흥미롭게 회고했다. 협상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를 토로한 것이기도 하다.


압바스 수반에 대한 올메르트 총리의 제안은 매우 긍정적이었나 순전히 구두 제안이었다. 올메르트 총리는 어떠한 문서나 자료도 준비하지 않고 자신의 구상이라는 국경안을 거침없이 얘기했다. 지도 같은 자료를 보여주기는 했으나 이를 압바스 수반에게 제공하거나 복사를 허용하지도 않았다. 압바스 수반은 총리의 제안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휴식 시간에 화장실 앉아 화장지에 팔레스타인 지도를 그리고 총리가 말한 내용을 표시했다.


회담이 끝나고 라말라 집무실로 돌아와 자신이 그린 화장지 지도를 펴놓고 참모들에게 올메르트 총리의 제안을 설명했다. 화장지 지도를 쳐다보던 참모들도 깜짝 놀랐다. 총리의 제안이 그간 이스라엘의 주장과 입장과는 다른 것으로 과연 이스라엘 정부와 국민들의 일반적인 의견이 반영된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모들은 압바스 수반이 총리의 설명을 잘못 알아들었거나, 수반의 화장지 지도는 총리의 제안이 아니라 압바스 수반이 자신의 구상을 그려 총리에게 제시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까지 했다.


올메르트가 제안한 화장지 지도는 결국 휴지통 속으로 버려지고 말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로서는 이스라엘의 고위 인사 중에도 이처럼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매우 희망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 두 국가 해법은 여전히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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