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길을 걸을 때 두려움에 흔들리는 동공처럼

by 황성민


어제 내린 눈은 밤새 투명한 빙판이 되어

길 위에 내려앉은 고요를 얼려 버렸다


한 걸음 내딛는 일조차 심해를 걷듯 위태로워

앞선 이들의 발자국은 이미 깨진 거울 조각이다


무게중심을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바닥에 몸을 맡기는 일이 아니다


나를 지탱하던 세계가 순식간에 배신하는 일

어제의 평온이 가장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등 뒤를 노리는 서늘한 중력의 습격


흔들리는 내 눈동자 속에는

아직 밟지 않은 얼음의 균열이 미리 그려지고


굳게 맞잡은 두 손은

허공이라도 그새 붙잡고 싶은 비겁한 기도가 된다


넘어지지 않으려 애쓸수록

겨울은 더 매끄러운 침묵으로 간단히 대답하고


떨리는 동공 너머로 비쳐오는 것은

결국 나를 일으켜 세워야 할

차디찬 길 위의 나 자신뿐


저기, 가느다란 빛을 머금은 마른 길까지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기어가는 짐승처럼


나는 나의 두려움을 가장 예민한 감각으로 삼아

얼어붙은 생의 한복판을

가장 느린 보폭으로 건너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