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시간 포유류의 뇌 3초, 인간의 뇌 6초
신혼여행을 발리로 갔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한 번 갈아타야 했었다. 때는 여름. 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의 수도이지만, 공항은 시골 대합실 같았다. 사람은 많았고, 더웠고, 뭔가 질서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 당시 담배를 피우던 남편은 화장실에서 남들이 피우길래 따라 피웠는데 어디선가 누군가가 짠하고 나타나서 천 원인지, 2천 원인지를 내라고 했단다.
남편과 연애 기간이 길지 않았다. 게다가 결혼을 결정하고 집을 보러 가서 한 번 만에 결정을 하고는 한 달간 해외출장을 떠났었다. 말하자면 결혼 전에는 한 번도 싸울 기회가 없었다. 남편이 결혼을 위해 한 거라고는 자신의 한복과 양복을 맞추고 가봉을 하고, 신혼집을 구하러 딱 한 번 보러 가서 그 집으로 바로 결정한 거였다.
결혼 전 격렬하게 싸우기도 많이 한다던데 나는 혼자 다했다. 지금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신부 쪽에서 예단을 돈으로 신랑 쪽에 먼저 보낼 때는 안동에 혼자 가서 예비 시어머님께 예단을 전달하고 점심을 같이 먹고 서울로 돌아왔었다.
복잡한 공항에 덥고 사람도 많은데 갑자기 남편 인상이 안 좋아졌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남편의 표정에 덩달아 불안해졌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이 사람은 왜 갑자기 화가 났지? 그냥 조용히 기다리고 보니 다시 평온해지는 순간이 왔다.
“아까는 왜 그랬어? 내가 뭐 잘못했어?”
영문도 모르고 감정의 변화를 같이 겪었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불편해.”
그러다가 상황이 좋아지면 스스로 그 붎편함이 풀리고는 했다. 나는 그런가 보다 기다려 주면 됐다.
경상도 남자 아니랄까 봐 뿔뚝 성질이 있었다. 내가 보기엔 별일도 아닌데 화가 불쑥 올라오나 보다. 처음에는 얼마나 황당하던지. 내가 뭘 잘못해서 나에게 화가 난 줄 알았다. 그때도 그냥 기다려 준다. 한 30분이 지나면 조용히 내 옆에 와서 화해를 요청한다. 아까는 이만저만해서 화가 올라왔었다고 미안하다고 이해해 달라고..
나를 오해하는 것도 아니니 기다려 주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불편한 시간이 길어졌다면 힘들었겠지만 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테고 그 상황을 설명해 주고 먼저 풀려고 노력을 했으니 괜찮았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누군가와 마찰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내 입안에 혀도 가끔 깨물어지기도 하는데 다른 누군가와 트러블 없이 지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마찰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 나가느냐가 삶을 평온하게 살아가는 관건이 아닌가 싶다.
처음 황당했던 신혼여행길에서 내가 함께 화를 냈다면 어땠을까? 뿔뚝 성질을 낼 때마다 같이 흥분을 했다면? 별것도 아닌 일로 파국을 맞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기다림을 잘한 사람이 나였다면, 트러블 상황을 풀기 위해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꼬인 관계를 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남편이다. 싸움의 뒤끝에도 화해를 시도하는 편은 대부분 남편이다. 그 시도에 항상 고맙다.
결혼생활 26년 차를 맞이하는 지금은 남편의 불쑥불쑥 올라오는 성질도 거의 없어졌다. 스스로의 감정을 읽으며 알아가다 보니 그럴 일도 없어진 것은 아닐까 싶다.
관계의 회복..
스스로 힘들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의 힘도 필요하겠지만 30여 년을 남으로 살던 사람이 갑자기 가족이라는 틀에 맞춰가며 살기도 쉽지만은 않다.
사람은 안 좋은 감정을 느꼈을 때 반응하는데 6초의 시간이 있다고 했다. 3초 안에 걸러지지 않은 반응을 하는 것은 포유류의 뇌가 반응을 하는 거고 6초의 시간을 갖고 반응을 하는 것은 사람의 뇌라고 한다. 안 좋은 감정을 느낀 후 6초보다 더 많은 시간을 두고 반응을 한다면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을 거다.
좋지 않은 감정이 들 때 깊은 호흡을 하는 이유도 6초간의 시간을 갖기 위한 방법이라 생각된다. 나의 부정적 감정에도, 상대의 부정적 감정에도 즉각 맞대응 하기보다는 깊은 호흡을 갖고 반응을 한다면 10번 싸울 일이 1번으로 줄지 않을까? 나 스스로에게 감정적 소모로 실망할 일도 아마 10% 이내로 줄일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단 음식이 먹고 싶을 때도 깊은 호흡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함께 하기 싫은 뱃살과 이별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