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혼자만의 시간.

엄마가 된 후, 처음으로 집에 혼자 머물 시간.

by 저먼해

결혼생활 26년 차, 엄마 경력 23년 차.

큰 아이를 낳고도 2년 반, 독일에 오기 전까지 직장 생활을 했으니 주부로 산 지 21년 차다.

독일에 와서는 내 손이 가지 않으면 매 끼니 해결이 되지 않았다. 저녁상은 단출한데 설거지는 매번 어찌나 많은지.. 자잘한 식기류는 식기세척기에 맡기지만 냄비, 프라이팬 등. 집에 있는 식기류가 다 나와 있나 싶을 때도 있다.

독일의 개수대는 또 왜 이렇게 작은지.. 큰 그릇 하나 씻으려면 온 동네 물이 다 튄다.

우아하게 먹고, '맛있게 잘 먹었어요.'라고 말하며 나가고 싶을 때가 많다. 한국이라면 가능하겠지만..

독일의 식당에 일단 기대감이 별로 없다. 외식은 뭘 먹고 싶어서 나가 먹는다기보다는 밥하기 싫을 때 끼니를 때우는 용도라고 하는 편이 맞는 듯하다.



여행을 다녀오면 다시 밥을 할 기운이 생기곤 했다 여행 기간 한식을 못 먹기도 했고, 집밥이 그리워서 일지도 모르겠다. 블로그 글이 곧 700개가 쌓이는데 매일 뭘 쓰나 글감이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20년 밥을 해도 매일 뭘 해 먹을까 고민스럽기는 매한가지다.



나 혼자 집을 비우고 여행을 갔을 때는 있었지만, 식구들이 여행을 다 떠나고 나 혼자 집에 있기는 처음이다. 나도 같이 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며칠 있으면 출장 갔던 남편이 돌아 올 거다.



식구는 넷 밖에 안 되지만 각자 식성이 달라 아빠가 출장을 가면 카레를 한다. 맏딸이 없을 땐 수제비나 칼국수를 먹는다. 막내가 없을 땐 해물이 식탁에 등장한다. 지금은 막내와 둘이라 막내가 좋아하는 메뉴가 식탁을 채운다. 샐러드, 햄버그스테이크, 카토펠퓨레, 감자볶음, 김치찌게...



그럼, 나 혼자 있을 땐 뭘 먹을까?

날 위한 음식으로는 그동안 뭘 했었지?

생각이 안 난다. 차라리 대충 먹고 요리 하지 않는 편을 택했었다. 나를 위한 음식보다는 음식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며칠을 혼자 집에 있을 생각을 하니(4일), 여행 계획을 세워 놓고 설레는 그 마음과 다르지 않다.

뭘 먹을까? 식구들의 입맛을 고려하고 때로는 요구사항에 따라 음식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번엔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으로 남는다. 결혼 전에는 당연했던 그 시간들이 25년이 지난 지금. 낯설고 설레기까지 한다. 집으로 나홀로 여행 하는 느낌이랄까!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일이 되기도 한다. 며칠 혼자 있다고 여행 기분을 느끼는데 매일이 혼자라면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매일의 평범한 일상이라 빛나는 시간을 흐릿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그동안 흔치 않았던 시간을 통과해보면 또 다른 느낌과 마주할 수도 있겠지. 새로움이 주는 자극은 분명히 있는 듯하다.

평범한 하루를 특별하게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겼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자원은 시간일테니. 밋밋해 그날이 그날같지 않고 매일이 소중한 그날이기를 희망해 본다.

DA2956FD-F46B-465E-9ED3-BF6BB5343B1C.heic 2025년 2월 프랑스 안시에서